지금, 그리고 그때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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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저메이카킨케이드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지금그리고그때




Part1. 지금 그리고 그때를 보라

'지금 그리고 그때를 보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책 제목 <See Now Then>과도 같다.


책 첫 장면엔

주인공 미시즈 스위트가 사는 동네의

이웃, 호메로스의 장례식이 나온다.

그가 잡은 사슴 중 가장 큰 사슴을 활로 쏴 잡았지만,

차에 사슴을 싣다가 그는 넘어져 죽고 말았다.

호메로스의 죽음은

맨 뒤에 '버림받음'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기억에 떠올랐던 장면이었다.

가장 큰 사슴을 잡았으면 뭐 하나?

죽으면 끝인걸?

그리고 이미 죽은 이들이 마당에 심은 작약,

미시즈 스위트도 작약을 심는다.

그곳에 모든 일은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이자 그때다.


그때와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때는 그 당시엔 지금이면서,

지금은 그때가 되기도 한다.

그때의 일은 지금의 일에 영향을 주고,

그때의 일은 지금과 같기도 하다.

그때와 지금을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 소설에 쏟아냈다.


Part2. 딸, 아내 그리고 엄마


미시즈 스위트는 가족과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셜리 잭슨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미시즈 스위트는

엄마의 딸이면서

미스터 스위트의 아내다.

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와

아들, 어린 헤라클레스의 엄마이기도 히다.


초반부터

미스터 스위트는 미시즈 스위트를

증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오랜 결혼 생활 끝에

아내에게 질려버린 시선이

정말이지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 못지않게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이 둘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걸까?

남편은 아내가

왜 저렇게까지 혐오스러운 건데?

자신을 향한 남편의 속내를

아내도 과연 알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다.


한때 자신의 생명을 다해

엄마의 젖을 빨았던 아이들은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기꺼이 사랑을 내어놓았었다.

지금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안 보이면 난리다.

엄마의 개인적인 일(글쓰기, 정원일 등)을

조금도 참지 못하고 날뛴다.


지금, 그리고 그때...

자신을 대했던 엄마가 있다.

딸에게 기꺼이 사랑을 요구한 엄마,

나이를 속여 학교를 보낸 엄마,

나를 배에 태워 내보낸 엄마,

그 엄마는 죽었지만,

그때의 엄마가 지금도 내게 있다.


끝으로 치달을수록

남편의 폭력적 언행은 더해간다.

인격모독, 폭언 그리고 비웃음,

당당한 외도 폭로까지,,,


그녀는 아파하며

또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도 아이들도

혐오하며 야유를 부리는 공간,

하지만 그녀에겐

그녀가 그녀다울 수 있는 공간이 두 곳이 있다.

정원 그리고 주방에 딸린 방이다.


그녀는 심고, 키운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때 그리고 지금이

그녀의 앞에 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의복을 지었다.(p.218)



'버림받는 것'에 대한 

저 글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잠깐 나왔던 이웃 '호메로스 죽음'이

연상되었고 말이다.

죽음도 그런 의미에서 버림받는 것이다.

끝내 누군가의 기억에 남더라도

언젠가는 내팽개쳐질 게 인생이다.


얼마 전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황동만의 형, 황진만이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모든 스토리는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성

이렇게 아프게 존재해.

이렇게 슬프게 존재해.

이렇게 우울하게 존재해

이렇게 웃기게 존재해.


기껏해야 100년

100년이면 다 사라지는데

사리지는 것이 진정 존재했던 건가.

그런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없이 스토리를 써대지



Part3. 자전적 소설, 그녀의 방 그리고 봄


자전적인 소설임을 몰랐더라면

단순하게 소설이구나 했을 거다.

알고 보니, 이 책이 출간될 당시 2013년

미국에선 작품 속 '미스터 스위트'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거란다.

소설 속 미스터 스위트처럼

저자의 전 남편 또한 작곡가였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 단서가 있었다네요.)

그녀를 <뉴요커> 전속작가로 두었던

<뉴요커>의 편집장, 윌리엄 숀은

한때 저자의 시아버지였고 말이다.


식민지 출신이자 여성이고,

흑인이면서 이주민이었던 

저자는

소설에서처럼

오랫동안 곳곳에서 

치덕치덕 끈질기게

그녀를 끌어내렸던 

목소리들과 행위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거다.

그녀가 살기 위해 끝내 붙들었던 것은 

아마도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이 소설 속 

주방 딸린 방에서

자연스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는 것은 나뿐이 아닐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집 바깥에서 영원한 해가 빛나는 봄을

바라보고 있다.

처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찾아낸 그녀의 봄을

지금은 찾아냈을까?


10년도 지난 작품이라고 하니

지금의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은 모습일지 

궁금하다.

(혹, 이 책 날개에 있는 사진?

지금일까?) 


그녀의 봄을 떠올리자니

또 생각나서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황진만의 시를 소환해 본다.


봄은 늘 기다립니다.


첫눈도 기다리고

가을 하늘도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는 계절이 없습니다.


지금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지금인데


바람이 나뭇잎에 하얗게 뒤집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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