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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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소한 것들을

단편소설로 엮어냈다.

처음엔 소설들끼리 연결되었나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개별적인 내용이다.


이 소설들에서 인상적인 점은

(그런 것만 생각나서인지 몰라도) 

남자들이 영 주도적이지 못하고 의존적이라는 거다.

또한 아기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가 많은 부부들 사이에서

중대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중에

우리의 삶에서 거쳐가는 사소한 것들을 

그것도 사라지는 것들을

일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잘 짚어줬다.

읽으면서 더불어

'아... 그러네..'

'이런 게 내 삶에서 없어지고 있었지.'

'이런 사람이 내 삶에서 벗어났었지' 생각을 한다.


육아와 일상에 지치는 하루하루, 

생뚱맞은 이웃과 맺어지는 우리 부부, 

교수직 일이 잘 안되는 친구에게 느껴지는 열등감, 

촉망받던 첼리스트 아내가 그의 재능을 병으로 잃어가는 모습,,,, 


우리 주변에 일어날 만한 일들이지만 

그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아쉬움, 후회와 아픔들을 

앤드루 포터만의 글로 표현한다.

분명 무덤덤한데 왜 이렇게 아리고, 슬프고, 공감되는 거지? 

그런 일들을 다루고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이어 15년간의 공백을 깨치고 나온 2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곱씹어 읽어볼 책이다. 

음... 사담이지만 작가님 사진 보고 심쿵 했음.

(궁금하면 찾아보세요~~>_<)


"아빠는 뭐 하고 있었어?" 이언은 말했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자기가 물에 빠진 순간, 혹은 그전 오 분이나 십 분 동안. 자신이 튜브나 다른 구명 장비 하나 없이 에어매트 위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육아 블로그를 드나들며 헛소리나 지껄이는 나. 육아 지침과 육아 조언 칼럼을 집착적으로 읽는 나. 그 순간 나는 미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일 말고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는 식음료 테이블 앞에 있었지만 내 정신은 어디에 있었나? 대체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 특정한 순간에 부모로서 단 하나의 주요한 책임, 내 아이를 살린다는 책임을 잊어버렸나? 그때를 돌아보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에 내 정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떠올리려 해봤지만- 솔직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물 위의 햇빛, 순간적인 번뜩임, 밝은 섬광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p.158


그때 누군가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그 물건들을 전부 돌려줄 거라고, 잠시 내가 보관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또 어떤 때는 폴이 내게 한 짓에 대한 응징이라고 되뇌기도 했다. 내겐 그 행동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할 방법들이 있었고 에이미도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믿었지만-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내 침대 아래에 있는 판지 상자를 진정으로 변명할, 혹은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가끔 밤에 어둠 속에 누워 삶의 이런저런 불안 때문에 뒤척일 때면 내 바로 밑에 있는 그 상자를 생각했다. 폴과 일레인의 삶을 이루던,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서 빼앗은 그 작은 조각들, 그 하찮은 상징물들, 그 기묘하게 개인적인 장신구와 증표들, 시기나 분노 때문에, 혹은 두 가지가 뒤섞인 감정으로 말미암아 무단으로 취해 내 것으로 만든 그 사소한 기념품과 정표를 생각했다. 그 상자를 떠올리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내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후 눈을 감고 잊어버리곤 했다.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때로는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다시 그 상자를 생각하기도 했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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