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9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독 이번 권은 두꺼운 느낌이다 했는데, 500여 페이지였다. 페이지수 백의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 예민한 독자인 사람이다. 그래도 서희의 화끈한 한 방이 있었고, 사람 간의 애정과 애증과 탐욕이 마구 섞인 이 서사가 있어서 두껍다는 느낌보단 감정이 훅훅 불어내어지며 감정이 요동쳐 댔던 9권이었다.


만세운동과 그에 대한 일본의 철저한 감시로 독립군들은 죽은 듯이 활동하고, 동학인들은 그들대로 분열로 다툼과 갈등에 있다. 언제 독립이 오기나 할지 희망도 바라기 어렵고 절망도 감당하기 버거운 시대였다.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낼 뿐이다. 길상을 뒤로 한 서희는 용정을 떠나 진주로 왔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하동 최 참판 댁으로의 귀환이 아닌 진주에 정착한 것이다. 본격적이라 할지 아니면 여러 고생 끝에 지친 모습으로라야 할지 서희는 결국 폭삭 망해버린 조준구를 대면한다. 최 참판 댁 집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들은 조준구는 진주의 서희를 찾아온다. 서희가 조준구에게 건낸 마지막 양심의 기회(5천 원을 집을지 말지)를 두고 둘 사이에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살짝은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둘은 대면했다. 결국, 조준구는 자신 앞에 놓인 5천 원 지폐를 들고 쫓기듯 뛰쳐나온다. 기쁨의 술을 마시려던 데서 조준구는 다시 한번 만인에게 제대로 망신을 당하고 쫓겨나왔다. 풍을 맞은 데다 임이네의 탐욕으로 남편 대접도 받지 못하는 용이는 (서희의 도움으로) 다시 찾아온 최 참판 댁에서 여생을 지낼 수 있게 된다. 함께 온 아들 홍에게 용은 월선의 묘를 이장하는 부탁을 하고, 부자는 화해한다. 서희는 겉으로는 친일이지만, 관수로 그리고 한복이를 통해 용정으로 군자금을 보낸다. 한복이는 자기 가족의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군자금을 전달할 각오를 하고 하동을 떠나 용정에 도착해 지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형 두수를 만나게 되는데...


조준구에게 어떻게 화끈한 한 방 먹일지 궁금했다. 역시 서희식으로 깔끔하고 잔인하게 거하게 한 방을 내어줬다. 조준구의 능글맞고 징그러운 탐욕에 피 터지는 잔인함을 쏟아 붓길 바랐지만, 그건 서희의 방식이 아니기도 했고, 역시나 그래서 약간 아쉽기도 했다. 말로써, 거하게 돈으로, 굴욕과 망신을 주는 복수가 어쩌면 단출해 보일지라도 뒤끝 없이 마무리 지은 것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주점에서 술을 즐기려던 조준구가 혈기 넘치는 데다 아버지의 복수로 이를 갈던 석이에게 걸렸으니, 결국 넘어가지 못하고 석이가 조준구를 또 한방 먹인다. 서희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어쨌든 일어난 일을 서희의 또 한방인 듯 뒷수습하는 연학의 뒤처리는 믿음직스러웠다. 조준구에게 줄 한 방 더 없나요? 내가 괜히 아쉽...


자기를 친자식같이 길러주던 월선네는 용정에서 죽고, 진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풍으로 누워있으며, 자신을 낳아준 여자(임이네)는 이자놀음에 용을 보는 듯 마는 듯하다. 그런 그 여자 임이네(홍이가 절대 엄마라 부르지 않음)는 홍이를 볼 때마다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집안에서 도저히 마음을 붙이지 못 하고 방황한다. 해결되지 않은 것만 같은 현실에 석이가 힘을 쓰면서 용은 거취를 최 참판 댁 네로 이동한다. 그리고 부자(용과 홍)는 그곳에서 그동안의 일을 용서하고 마음을 푼다. 홍이는 이제 정신차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세 여자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던 용과 달리 홍이는 좀 번듯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복(두수)의 잔인성은 정말 말해 뭐해? 수준이다. 결국 금녀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번 그녀를 놓치고 가장 마지막 하얼빈에서 잡았으나 금녀가 장바구니에 넣은 권총으로 허벅지를 쏘이고도 두수는 살아남았다. 하아... 잔인함뿐 아니라 김두수는 생명력까지 끈질기다. 그런 그녀를 몇 년간 포기하지 않았고, 상대가 안심할 즈음에 그녀를 잡고야 만다. 함께 그녀를 납치하는데 함께한 이가 거슬려서 그의 아내를 탐하고, 금녀에게서 복수를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독립군의 정보나 끄집어내려고 죽지 못해 살게 발악하는 두수는 정말이지 인간 같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을 찾아온 동생을 살뜰히 챙기지 않았느냐고 최서기에게 난리 치는 건 정말... 그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과연 남아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다음 권에 나오겠지...

악은 왜 세월과 반비례하지 않고 꼭 비례해서 잔인함이 극에 달하는 거지? 그래도 끝은 있겠지?


최서희의 통쾌한 한방으로 그래도 읽을 만했다. 사실 독립군과 동학당이 나오면 시대가 시대인지라 우울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의 밥그릇 싸움만 같아서 책장을 마구 넘겨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용이와 홍이의 부자간의 어쩔 수 없는 핏줄의 진한 사랑에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토지>안의 인생을 보면 참 인생이란 거 별거 없구나! 인생사가 폭풍 같기도 하면서도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로 단정할 수도 설명도 안 되는(전래동화나 명작 만화처럼 선악이 뚜렷하지 않은) 미묘한 인간의 감정과 행동들을 보면 이게 인생이었지... 싶어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게 또 <토지>의 매력이기도 하다. 박경리 작가님에게 한없이 존경심이 들기도 하는 면이기도 하고 말이다. <토지>의 거의 반을 와간다. 이제 끝을 꼭 가보고 말겠다는 결의(?)와 자신감이 든다. 그리고 그 끝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말이다.

장대한 서사만큼 오르고 쉬고 또 오르고 헉헉대는 등산 같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