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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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배경은 아예 간도 용정으로 옮겨진다. 서희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바뀌거나 추가됐다. 특히, 봉순은 하동 최참판댁을 떠나 용정으로 오는 길에 서희 무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서희와 길상 그리고 용이, 임이네, 월선 등 최참판댁 주요인물들은 이 정도고, 가장 의롭고 자유로웠던 윤보는 세상을 떠났다. 서희는 물건을 보관했다가 물건이 귀해질 때 개방하는 식으로 자본을 늘렸고, 공노인의 도움을 받아 땅을 매입하고 평당 가격 두 배로 상부국에 팔아 이득을 올린다. 할머니가 따로 알려준 그 금으로, 서희는 이래저래 돈을 적절히 사용하고 투자하며 자신의 부를 확장해 나간다. 이동진의 아들로 서희의 탈출에 함께한 이상현은 조선 아이들을 교육하는 '상의학교' 교사로 (용정 자산가이자 상의학교 설립자의 아들) 송장환과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상현과 서희는 서로 애정을 품은 사이였지만, 이상현은 양반에 처가 있는 상태인데다 둘의 팽팽한 자존심 대결로 결국 헤어지게 된다. 특히 서희가 이상현에게 작정하고 의남매를 청하고, 길상과 혼인 의사를 밝히자, (고향으로 돌아갈지 쉽게 결정을 못 내리던) 그는 불현듯 용정을 떠나 귀향한다. 길상은 서희의 지시를 따라 나무를 매입하러 오가는 중에 옥이네라는 딸이 있는 과부와 가까워졌다. 서희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신의 혼인 상대로 옥이네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 보려는 듯 하다. 김평산의 아들인 '거복'이 용정에서 '김두수'란 인물로 살아가고, 이를 용이가 알아봤다. 용이는 농사꾼이었던 자신의 업을 기억하며, 땅을 알아보러 갔다가 영팔이와 나무 베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한참 후에 가족들에게 용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갑이란 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용정으로 돌아온다. 월선에겐 난리를 피우고, 임이네가 있는 움집으로 가서 자신의 본집으로 여기고 쉬었다가, 길상과 서희 그리고 용정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일본인 느낌의 도급하는 이와 박서방이 내는 큰 소리를 듣고 주갑과 함께 살펴본다. 이 일로 이번 책은 끝이난다.


독립군의 이야기, 그리고 나라 뺏긴 설움에 조선인들끼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상의학교의 위태위태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 그리고 서희 일행이 서희를 중심으로 간도 용정에서 뿌리내리는 일을 보여준다. 타국에서의 일상이 보였고, 일본의 간섭의 줄타기에서 아슬하게 자신의 생업을 이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서희의 목표는 뚜렷했으며, 어떻게 자신이 정한 목표에 다다르겠다는 의지와 계획이 확고했다. 사랑, 나라... 이런 것들은 서희가 둔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표를 거스른다면 가차없이 내어버릴 각오가 있다. 아래 서희의 말은 그녀의 속을 한번에 드러내는 말이며, 그 의지가 확실해서 속이 다 시원해진다.


... 내 돈을 악전이라구요? 그렇구말구요. 우리 조상님네는 이부사댁 조상님네처럼 청백리는 아니었더란 말씀 못 들으셨소? 악전이면 어떻고 친일파면 어떻소? 내 일념은 오로지 잃은 최참판댁을 찾는 일이오. 원수를 갚는 일이오. 태산보다도 크고 바다보다 깊은 이 내 원한을 풀지 못한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오. 당신네들은 싸우시오. 나는 이 손톱 마디마디에 피를 흘리며 기어서라도 돌아가야 할 사람이오. 왜인들이 그리 쉽게 물러갈 성싶으오? 내 여자의 지각으로도 그건 어려운 일일 게요. 낸들 왜국이 망해 거꾸러진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조준구를, 그 계집을 사도거리에 끌어내어 내 원한의 비수를 꽂는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그러나 그것은 세우러이오. 나는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소. 내 생전 내 눈으로, 그렇소. 나는 일각이 여삼추요. 내가 죽지 못한 이유가 뭐였지요? 이곳 수천 리 타국에까지 온 이유가 뭐였느냐 말씀이오. 내 돈이 아까워 군자금을 아니 낸 건 아니었소. 당신네들에게 협력한다면 나는 내 희망을 버려야 하는 게요. 나는 원수의 힘을 빌려 원수를 칠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기백, 기천의 군병에다 여인네들 비녀 가락지나 뽑아서 마련한 군자금으로 왜군을 치겠다는 생각, 그건 마음일 뿐이오. 애국심일 뿐이오. 그리고 결국엔 헛된 꿈일 뿐이오.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했을 뿐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른바 내가 써야 할 군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오. 충분히 마련되는 그날 나는 돌아갈 것이오. 그리고 싸울 것이오. 내 원수하고, 섬진강 강가에 뿌린 눈물을, 내 자신에게 한 맹서를 나는 잊지 않을 것이오. 이 원을 위해 서방님을 잊어야 한다면 내 골백번이라도 잊으리다.' p.246-247


그런 서희의 담대한 성정과 기지 그리고 그녀에게 따르는 부의 운은 일제와 신분, 성별에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는 이들과 상반되어서 타들어가는 답답한 독자의 마음에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권에서 특히나 와닿았던 것은 인물의 심리 묘사였다. 한 사람의 마음이, 행동이 단번에 설명되어질 수 없는 그 깊은 굴곡과 잡히지 않는 내면이 적힌 글을 읽으며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행위와 선택이 구구절절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 책을 내가 학창시절에 읽었더라면 과연 인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물의 내면은 상당히 복잡했다. 기근과 역병 그리고 일제치하에,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는 상황에서 변화하고 있는 조선(신분제 폐지, 세계대전으로 세계대권의 불확실함 등)상황을 보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상식과 도덕의 선이 어디까지였을까 싶기도 하다. 특히 그것은 혼외사이가 유독 많은 이 소설에서 처음엔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가도 '그럴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으로 돌이키게 되는데, 이건 각자의 상황과 내면을 낱낱이 들춰낸 작가의 글에 나또한 비난보단 설득을 당했기 때문인 듯 하다.(물론 당연히요! 옳지 않은 건 맞아요!)


역시나 이번 책에서 또한 인생은 알 수 없고, 인간은 인생의 풍파 속에서 참으로 나약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음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니... 계속 보는 걸로...^^ 내 이 책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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