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노트르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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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지도에서 내가 갈 여행지 한 곳을 내리찍 듯 빅토르 위고를 작정하고 읽겠다고 달려든 건 아니었습니다.

책의 반듯한 모양새, 그 속의 쏙쏙 박혀있는 활자, 그리고 책을 들었을 때의 그립감, 책을 읽는 분위기, 책을 읽었을 때 빠지는 몰입감 등 제가 책에 관련된 이 여러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인 건 맞긴 하나, 제게 '빅토르 위고'란 이름은 저와는 한참 다른 시대의 위인, 세종대왕만큼이나 (과거에 있으나 현실에는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먼 거리의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아는 '빅토르 위고'는 그저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장발장'으로 유명한 작가였을 뿐이었죠. 그런 제가 몇 달 전, 동생 집에 갔다가 여러 실용서들 틈에 있는 민음사 책 몇 권을 발견했어요. 바로 위고의 이 책! <파리의 노트르담>이 그중 한 권이었습니다. <고전 읽기 클럽>에서 자발적 강제로 고전을 읽던 차에 '위고는 이때다!' 싶어서 빌려 와서 읽었어요. 그냥 들어왔던 빅토르 위고 이름 하나만 덥썩 믿고 말이죠.


이 책의 간략한 내용은 ...

카지모도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입니다. 눈이 하나인데다 꼽추인 채로 태어난 그를 어느 누구도 키우려 하지 않았어요. 그런 그를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가 데려다 키웁니다. 모두가 그에게 경멸과 모욕의 눈길을 보낼 때, 프롤로 부주교만큼은 카지모도에게 그러지 않았죠. 카지모도는 자신을 키워준 프롤로 부주교에게 헌신을 다합니다. 종지기로 살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종지기로 살며 종소리 때문에 그는 귀머거리가 됐어요. 세상과 소통은 더 불가능하게 됐고, 그럴수록 카지모도와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프롤로 부주교 한 사람 뿐이 되었습니다.

에스메랄다는 한 여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집시로 자라나요. 춤과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며 공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카지모도에게 납치를 당할 뻔하죠. 페뷔스 중대장의 등장으로 에스메랄다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카지모도는 그 납치미수로 붙들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자신이 누구(프롤로 부주교)에게 사주를 받았는지 말 한마디 하지 못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재판을 하는 재판관이나 카지모도 모두 귀머거리였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권력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카지모도에게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려요 그리고 카지모도는 형벌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잠잠히 처벌을 받는 카지모도를 그때만큼은 프롤로 부주교도 외면합니다. 단 한 사람만이 갈증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카지모도에게 물을 건네는데요. 그 사람이 바로 에스메랄다입니다. 그렇게 1부는 마무리됐어요.


와우! 빅토르 위고가? 큭큭

이 책을 읽으면서, 대문호로 알던 빅토르 위고에 대한 환상이 살짝 깨졌어요. 엄해 보이고 진중해 보이는 초상사진과는 달리 그는 굉장히 유머스러운 작가인 듯 보이기도 했는데요.


만약 라바야크가 앙리 4세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재판소의 기록 보관소에 라바야크의 소송 기록이 보존되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기록을 소멸시키려 한 공범도 있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 그러므로 결국 1618년의 화재는 있었을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낡은 재판소는 낡은 대광실과 함께 아직도 서 있을 것이다. 나는 독자에게, 가서 보시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양쪽 모두 재판소에 관한 어떤 묘사도 피할 수 있을 것인즉, 나는 묘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독자는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는 아래와 같은 새로운 진리를 증명해 준다. '큰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p.26

화재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독자 당신들한테 가보세요!라고 추천할 거고, 쓸데없이 묘사 글 안 써도 된대요. 그리고 독자들은 읽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해요. 굉장히 누군가를 (귀엽게) 원망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외에도 유쾌하게 웃긴 표현이나 장면이 간간이 나오는데요. 피에르 그랭구아르란 인물이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랭구아르가 쓴 희곡으로 공연이 될 때, 그는 진지하게 공연을 이끌었지만 군중들은 재미없다고 비난하고, 자신의 공연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둡니다. 공연은 거의 엉망으로 마무리 되고요. 돈은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먹을 것도 살 돈도 없어요. 물방아 바퀴에 옷이 다 젖어버리고요. 에스메랄다의 공연을 본 그에게 에스메랄다가 모자를 내밀어 돈을 요구하는데요. 줄 돈이 없어서 외면합니다. 어찌어찌하다가 결혼까지 이르게 된 에스메랄다또한 피에르란 인물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신혼 첫날밤 퇴짜를 놓았어요. 요즘 말로 그랭구아르 이 사람! '찌질한' 남자로 (의도치 않았겠지만)웃픈 상황을 만드는 인물입니다.


그래도!역시! 빅토르 위고!

인물의 행동과 상황 묘사에 피식 웃음이 나긴 했지만, 위고가 단순히 웃음을 주려고 이런 방식을 선택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프랑스의 여러 상황 등 소설을 통해 지적하여 풍자하기도 했어요. 그와 더불어 이 작품에선 빅토르 위고의 문학적, 역사적, 예술적 지식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15세기 도시 파리의 구조, 인쇄술과 건축술의 관계와 흐름에 대한 글을 읽으면 감탄이 절로 납니다. 다소 어렵기도 했지만, 위고만의 뚜렷한 가치와 통찰이 글에 반영되어 읽으면서 신선하고 재밌게 읽혔어요. 마지막으로 이런 지식과 날카로운 지적에도 그의 표현은 빛이 납니다. 특히 종소리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데요. 종소리에 대한 내용은 읽는 것만으로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 웅장하면서도 영롱하게 느껴졌고, 성스러운 감동이 잔잔하게 들기도 했어요. 구체적인 종소리 표현은 적지 않겠지만요. 도시는 이야기하고, 숨을 쉰데요. 종소리를 통해 도시는 노래하게 된다니 그 표현이 제겐 꽤 낭만적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가 보여준 문학적 역량을 보며 '역시 빅토르 위고!'란 생각이 들었어요.


위고에게 카지모도는... 그리고 내게 명장면?

저는 (아직 1권만 읽었지만) 빅토르 위고가 이 작품에서 '카지모도'에게 굉장한 비중과 가치를 부여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카지모도는 이 소설에서 행동의 여부가 아니라 겉모습만으로 대중들에게 하찮게 여겨지고 끊임없는 야유와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거든요. 작품에선 그런 취급을 당했을지라도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카지모도의 내면의 순수함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카지모도만이, 카지모도라서 낼 수 있는 노트르담 성당의 성스러운 종소리를 인정합니다. 그가 없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소리에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한테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카지모도'가 형벌을 감당하는 모습이었어요. 그 장면이 굉장히 끔찍해서 차마 읽기 힘들었는데요. 제가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마치 그 장면은 십자가 처형을 받는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군중들의 야유와 비난도 비슷하다 느껴졌어요. 나중에 프롤로 부주교가 외면하는 모습은 베드로의 부인하는 모습도 생각났고요. 어떠한 저항도, 어떠한 분노도 표하지 않고 그저 묵묵한 무력함으로 채찍을 맞고 있는 장면은 제 피부에 느껴지는 듯 섬뜩하면서도 안타까웠어요. 아무리 고통을 부르짖어도 그 누구 하나 고통을 헤아려주지 않습니다. 간절하게 물을 달라 부탁해도 누구도 주지 않아요. 잘 못한 게 없는 데 죄를 뒤집어쓰며 홀로 외로움을 묵묵히 삼키는 카지모도의 모습이 이 책에서 명장면으로 제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 중에 에스메랄다의 등장은 감격스러웠습니다.



급 리뷰 마무리 ..ㅎ

아직 1권만 읽었는데, 다 읽은 듯 리뷰를 쓴 것 같습니다. 2권 마저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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