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 - 박경리 대하소설, 1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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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줄거리


김평산과 칠성은 처형당했다. 귀녀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강포수는 살뜰히 그녀를 챙겼다. 아이를 낳고 법에 따라 그녀가 죽은 후엔 아이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산다. 이 시기는 고종황제가 죽고, 그가 독살을 당한 소문이 퍼지던 중이었다. 서희와 할머니 윤씨 부인은 최씨네 갖고 있는 토지들을 보러 다닌다.

칠성의 아내 임이네는 남편이 죽고 도망갔다가 살 곳이 없어 결국은 다시 평사리로 돌아왔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이래저래 먹고 살았다가 윤씨 부인에게 그의 모습이 보이고, 그런 그녀의 딱한 처지를 보고 그들에게 곡식을 지원한다. (칠성네가 모함으로 살인죄에 가담했다는 죄를 뒤집어 쓴 걸 뒤늦게 윤씨부인이 알고 기억한 것이다.) 임이네는 더욱 당당해졌을 뿐 아니라 용이로부터 아이까지 갖게 됐다. 이때 월선이도 다시 돌아온다.

조준구는 최 참판 댁에서 하릴없이 지내다가 삼월이를 수차례 범한 걸 알고 서울로 쫓겨나는데, 뻔뻔하게도 아내와 꼽추 아들을 데리고 돌아와 당분간 살게 해달라고 윤 씨에게 청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딱 그 시점에 역병이 돌면서 평사리의 여러 사람들이 죽어났다. 김서방을 시작으로, 강청댁, 봉순네, 윤씨 부인, 그리고 문 의원까지 무참히 죽음으로 몬다. 조준구는 이때다 싶어 최 참판 댁의 사랑으로 그들의 거처를 옮기고, 그가 주인인 양 지내는데 이를 한바탕 서희가 뒤집어 놓기도 한다.

강청댁이 죽었으니, 용이의 아이를 낳은 임이네가 용이네 집으로 들어오지만, 월선이에게 수시로 드나든다.

이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머니까지 잃고 형이라 친척 집에서 키워진 한복이는 때마다 평사리를 들르며, 엄마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를 보던 용이가 월선이네를 집에서 묵게끔 도움을 주려고 한다.



안타깝다. 그리고 이젠 당신들 모두 이해가 된다.


초반에 귀녀와 김평산의 죽음으로 죄에 맞게 응징이 이루어진 데는 속이 다 시원했다.(이 와중에 강포수의 순수한 사랑은 또 어쩜 그리 애절한지...) 그런데 때마침 다른 악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김평산이나 귀녀같이 극악무도하다기보단 소심하지만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조준구 때문이다. 이에 부인 홍 씨까지 더해지니, 이들에게 당하는 이들을 보는 게 제일 안쓰럽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삼월'에게서 그 안타까움이 더했는데, 종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면이 참담했다. 나중에는 버려진 몸이라고 (삼월을) 노리개로 쓰려는 조준구와 삼수의 악랄한 꾀를 순이가 귀띔하며 도망가라 말해준다. 그런데 삼월인 도망가지 않고 남았다. 삼월이가 조준구에 아직도 희망이 있어서 한 선택인지, 최참판댁을 나가도 별 볼 일 없을 거란 포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 시대 여자로 종으로 사는 건 선택권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딱히 별다를 게 그 당시에서 '삼월이가 도망가지 않았다'는 문장이 내겐 아프게 다가왔다.


전 편에서는 임이네가 그렇게 얄미웠다. 강청댁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용이한테 그렇게 추파를 던지던 임이네였다. 이젠 강청댁까지 죽었으니 임이네가 비록 평사리를 떠나며 고생했지만, 끝내는 다 가진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사리 여인네들의 험담처럼 말이다. 그런데, 강청댁이 죽으니 그 자리를 임이네가 대신하게 된 안타까운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평사리를 떠났던 적엔 여러 남자에게 몸을 주지 않고는 제 아이들을 먹여살릴 수가 없었다. 여기서도 못 살면 다 죽어버리자는 맘으로 평사리에 와서 용이의 아내가 되었지만, 용이는 자기(임이네)가 낳아준 아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별다른 애정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월선이를 향한 마음만 그대로다. 참... 임이네도 옛 안 좋은 말로 박복한 인생이다. 또 그렇다고 용이도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여러 여자에게 상처만 주는 캐릭터였는데, 그의 번민과 어쩌지 못하는 애정도 책을 읽다 보니 이해가 된다. 아주 악랄한 이들을 제외하고, 각 캐릭터들의 마음을 두루두루 읽다보면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 그럴만 하게 보인다. 각자의 인생들도 다 그렇게 보면 이해할 만한 인생들이 아닐지... 줏대없이 흔들거리는 건 용이가 아니라 독자인 내가 더 그런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모두가 죽었어도, 서희는 살아있다!


윤씨부인도 죽고, 봉순네도 죽은 마당에 서희는 어쩌나 싶었는데, 서희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뒤집어 놓는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속이 다 후련하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지라 결국엔 조준구에게 깜냥이 되겠나 싶기는 하고, 이야기를 알기도 해서 뺏기게 될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지금만큼은 통쾌했다. 수동이를 중심으로 윤보, 용이와 함께 곳간을 털러 자물쇠를 때려 부수는 내용도 신나게 읽혔다. 내가 서희 같은 아이를 키운다면 고개 절로 흔들만큼 싫다할 인물이지만, 어려도 최씨 가문 손녀라고 여느 사람 못지 않게 꼿꼿하고 당찬 서희를 보면 (실제 인물인 듯) 대견하다.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에 이어 고종황제도 결국 사망하게 되며 점차 왜에게 통치권이 넘어갈 시대적인 상황에서 서희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지 (그나마 해피엔딩이라) 기대된다.



고전이 뭘까


고전이라고 하면, 머릿속으로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토지'를 읽으면서는 '도대체 고전이란 뭘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고뇌와 번민의 깊은 면까지 다룰 뿐 아니라, 그것을 언어로 독자들이 인물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하도록 잘 설득했기 때문에 고전을 '고전'이라 하는 게 아닐까? 대하소설일 뿐 아니라 '토지'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밖에 없고 여러 출판사를 거쳐서 지금까지 고전으로써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지만, 스토리를 정확하게 내 눈으로 읽고 싶은 마음에, 인물의 심정과 인간의 나약함을 헤아리는 내용과 문장에 매료되어서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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