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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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동네인 주제에 현수동은 위치가 꽤 구체적인데, 대강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일대다. ... 한강의 무인도인 밤섬도 현수동에 포함된다.

.... 현석동에서 '현(玄)'자를 따오고, 신수동-구수동의 '수(水)' 자를 합해 현수동(玄水洞)이라고 이름을 지었다.p.10


<아무튼>시리즈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책이 나오다니!!

이 책은 책 속의 말처럼 가상 동네인 현수동의 이야기다. 현수동에서 일어나는 실제와 같은 생활이 담긴 내용은 아니다. '장강명'작가님 책이라고, 그 안에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고 예측한다면 오측이다. 책에는 먼저 작가님 자신이 살았던 광흥창역 근처 현석동에 대한 애정이 엿볼 수 있는데, 광흥창에 대해 역사적 지리적 자료를 소설가 특유의 손담(말을 하는 건 입이고, 글을 쓰는 건 손이니까?)으로 이 책에 흥미진진하게 소개한 걸 보면 그렇다. 그와 함께 작가님이 상상하고 꿈꾸는 (이 또한 광흥창 내에 위치한) 이상적인 동네가 가상 동네 '현수동'에 담겨 있다.


내가 '광흥창'을 안 건, 외할머니 댁에서 학교까지 왔다 갔다 하던 대학생 시절에 6호선 라인이 생기면서였다. 나는 공덕에서 갈아탔기 때문에 그쪽까지 갈 일도 없었지만, 지하철역을 한번 훑어보는 습관이 있어서 눈에 익는 정도였다. 딱히 눈에 띄는 이름도 아니고, 유명한 곳이 아니다 보니 별 관심이 없었는데, 40이 넘은 지금 '광흥창'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로 이렇게 읽게 되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광흥창과 그 일대의 이야기를 읽자니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재밌는 곳이었다. 강변북로를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몰랐는데, 그 부근에 곡식창고가 있고, 나루터가 있다는 걸 상상하며 읽으니 그 일대가 새롭게 보인다. 작가님이 왜 광흥창에 매력을 느꼈는지 알 만했다.(하지만 작가님의 글이 맛깔나서 그 자리가 더 돋보이도록 한몫한 것도 같다) 여의도 불꽃축제가 보이는, 한강 일대가 확 트여 보이는 그곳의 뷰가 정말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광흥창 근처가 아주 먼 동네는 아니므로, 어떤 동네인가 궁금해서 찾아가 볼 생각도 했다. 밤섬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궁금해서 네ㅇㅇ 지도를 켜고 찾아보며 읽었다. 찾아가면 분명 그 근처에서 식사도 하게 될 거라 맛집도 같이 찾았다. 그런데 맛집이 거의 없는 곳이란다. 이 책 중반에도 나온다. (다행히 광흥창을 찾아가진 않았습니다. 맛집 때문에 포기한 것도...)


광흥창역 일대에 살 때 주변 환경이 전부 만족스러웠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특히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나 술집이 없다는 점이 HJ와 나의 불만이었다. 슬리퍼 끌고 나가 맥주 한잔하고 돌아올, 요즘 유행어로 하면 '슬세권 맛집'이 부족했다. p.107


광흥창을 다루며 알게 되는 역사적 지식, 지리적인 이야기가 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요소였다. 숙종과 '박세체'란 권세가, 나합이라는 여인 등 인물부터, '창고 옆 개천에 있는 동네'란 뜻의 창천동이고, '창고 앞의 동네'라 창전동이 되었다는 단순한 동네 명칭 유래, 그리고 밤섬 이야기까지 이 책이 아니었으면 알 수 있을까 싶은 역사적인 지식들에 푹 빠져 읽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한강의 서쪽을 '서강', 동쪽을 '동호'라고 불렀다. 그래서 광흥창역 일대 건축물이나 기관에는 서강이라는 이름이 흔하게 붙어 있다. 서강대, 서강역, 서강도서관, 서강대교 .... 서강대교 북단이 바로 돛단배를 대는 나루터였고, 이름은 서강나루였다. 서강나루터 표석은 봉원 빗물펌프장 앞에 있다. p.26

광흥창 일대에서 배에서 내려 도성을 향하는 사람들은 만리동 고개나 애오개를 통해 서대문이나 서소문으로 갔다. 애오개는 '아이 고개'라는 뜻인데, 만리동 고개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고, 일찍 죽은 가엾은 아이들의 시신을 묻던 곳이라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p.27


또한 이상적인 상상 속 동네 '현수동'을 다루면서 지금까지의 한국 내에 보일 듯 말 듯 한 사회의 씁쓸한 속내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고 기억난 부분이 있어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작가님의 그런 의도는 없이 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쓰건데) '이런 건 잊으면 안 되지!'라고 작가님이 나 자신에게 다시 보여준 메시지와도 같이 생각됐다.


한국 사회는 그런 죽음들을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려 했다. 아예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척 굴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 씨랜드 화재 희생 어린이 추모비도 모두 사고 현장과 떨어진 곳에, 일반인이 잘 모르거나 찾기 어려운 곳에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그로테스크하게도 호화스러운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p.48


작가님이 말씀하신 현수동의 모습은 보통 동네처럼 소박하니 익숙해 보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꿈꾸는 것이니 이상적이고, 우리는 이상적인 걸 꿈꿀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 이상적인 것이 간간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아! 이런 동네를 꿈꾸시는구나!' 정도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본인이 살았던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그 동네를 토대로 보완된 새로운 동네를 꿈꾸는 '현수동'은 내게 분명 신선했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권하듯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동네의 모습 곳곳을 떠올려 봤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저 맛집 찾기용, 편의시설 찾기용으로만 판단하고 있진 않나?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 위한 발돋움의 동네 정도로만 발 담그고 있진 않나? 그저 현실에만 머무르고 있는 동네가 아니라 꿈꾸는 동네 또한 상상해 보는 기회가 이 책 덕에 주어졌다. 분량은 많지 않은 작은 책이지만, 흥미로운 지식과 상상의 재미가 있는 책이라 내겐 좋았던 책이다!!


'자기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삶도 사랑한다'라는 말을 이렇게 확장할 수 있을까. '자기 동네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사람은 자기 삶도 가꾸는 중이다'라고. [아무튼, 현수동]을 쓰는 동안 나도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 같은 것. 시니컬한 척하느라 어릴 때에는 잘 살피지 않았던. 그래서 나는 이 책 독자들께도 살고 싶은 동네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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