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되는 것도 집안과 출신 성분이 받쳐줘야 했다. 머슴은 영원한 머슴이다. 조선 시대를 끝으로 신분제가 사라진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월급쟁이는 아니다. 이젠 핏줄이 아닌 학벌과 인맥이라는 새로운 신분제로 바꾸었을 뿐이다. p.28
물도바 한적한 호숫가에서 머리에 총알을 박은 채 죽음을 맞이한 내가, 나를 죽이라고 지시한 집안의 열 살짜리 막내 손자로 환생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신은 내게 복수의 기회를 준 것일까? 아니면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니 용서하라는 뜻일까? p.38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라 다시 눈물이 맺혔다. '나'라는 존재 윤현우는 진짜 이 세상에 없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원초적인 감정들만 존재한다. 이 감정 역시 조금씩 풍화되어 옅어질 것이고 그렇게 윤현우는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다.p.96
"내가 자네 집안을 다 키웠어. 왠 줄 아나? 바로 우리 순양그룹이라는 집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개로 쓰려고 키운 거라고. 자네 역할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 집안을 지키는 개야. 검찰청에서 국회로 장소만 바뀔 뿐이야. 명심해." p.120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믿으면 안 돼.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말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더 그렇다. 항상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럼 직접 확인하신 거예요?"
"그래.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거야. 그리고 ... 여러가지 겸사겸사지."p.140
"그리고 하나 더, 너는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더불어 중요한 또 하나의 핵심은, 듣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진 회장은 현 정권의 실세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그리는 큰 그림을 따르겠다는 말 역시 이런 맥락이다.... p.141
아무튼, 초일류들을 상대하면서 알았다. 난 배운 게 없었다. 내가 아는 건 경험과 노력으로 알게 된 게 전부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내용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공유할 뿐 외부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난 그들이 시키는 것을 잘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을 뿐이다. 그들이 시키는 일의 진짜 이유, 그 목적을 모른다는 건 배운 게 없다는 뜻이었다. p.203
... 다시 한번 순양 아니, 재벌의 힘에 놀랐다. 재벌은 자신이 우너하는 정책을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고, 정부는 그 정책을 행동으로 옮긴다. 마지막으로 입법부인 국회의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p.284
"도준아, '다른 사람의 돈'을 영어로 해봐라."
"다른 사람의 돈? Other People's Money?"
"그래 그것이 바로 사업이다. 내 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돈으로 경영하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요?"
영어 단어 뜻대로 People, 바로 국민의 돈을 이용하는 거지." p.351
"1000억 원짜리 섬을 선물로 사달라면 사주마. 1000억 원짜리 전용 비행기를 사달라고 하면 그것도 사주마. 하지만 돈은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돈은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기 때문인가요?"
"바로 그거다. 앞으로 너도 아랫사람이 일을 잘했을 때 돈은 조금만 줘라. 룸살롱에 데려가서 수백만 원어치 술을 사주더라도 돈으로 주면 안 된다. 술 마시는 놈이 이 술값 돈으로 주지, 이런 생각을 갖도록 말이다."
"희망 고문이군요. 일을 더 잘하면 그 술값만큼 돈으로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줌으로써 말이죠."
"아이고, 똘똘한 내 새끼, 척하면 착이로구나."
똘똘한 게 아니다. 겪어 봤기 기때문에, 절실히 느껴봤기 때문에 안다. 수백만 원을 하룻밤 술값으로 쓰고 법인카드를 긁었다. 장모님 병원비가 200만원 부족하다고 와이프가 바가지 긁던 때라 술값, 화대... 그 돈이 전부 내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얼마나 했던가?"p.433
"정말 재벌 무섭다. 아무리 광고주라고 하지만 어떻게 신문 방송을 제 마음대로 움직이냐?"
"재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언론이 돈맛을 알았기 때문이죠. 술 먹은 펜대와 돈 삼킨 카메라 아닙니까?"
p.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