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와 생맥주 - 최민석의 여행지 창간호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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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작가님의 생각의 흐름과 유머 코드를 좋아하는 독자다.

누가 우리 초이민석 작가님의 유머를 B급 유머라 해도, 읽으면서 먼저는 내가 즐겁고, 새로운 생각의 자극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그분의 책이 내 독서 취향이라는 것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이번에도 신간이 나온 걸 보자 반가웠다. 그런데, '최민석의 여행지 창간호'란 글자에서 이건 책이 아니고 잡지인가? 갸우뚱했다. 조금 더 신중을 가하여 책 소개를 살펴본 후 '이거슨! 여행 에세이(알고 보니 픽세이(픽션+에세이)도 있음)다!!' 란 결론을 내리고 바로 결제해버렸다. 책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원래 도서관을 애용하지만, 자고로 한 작가의 팬이라면 유튜브의 '좋아요'와 '구독', 굿즈 구입 등 이에 버금가려면 책 정도는 구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나 배꼽을 손에 꽉 가둬놓은 상태로 읽었다.(너무 오버한 표현인가요? ^^;) 문장을 진지하게 나열해 독자들이 그 문장을 따라가게 한다. 그 문장에 진지하게 따라가면 작가님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그러다 정말 생각지 못한 찰나에 나는 주르륵 미끄러지게 하는 반전을 맞이한다. 예를 들면 아래의 문장과 같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맥주를 끊었다. 맥주를 끊은 뒤에, 건강해져서 원고에 집중하고, 그래서 원고의 질이 좋아져 마침내 그토록 고대했던 대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면 좋겠지만, 위스키에 빠져버렸다. 위스키에 빠진 덕에 대뇌피질의 해마가 죽었고, 그 덕에 기억력이 나빠졌다. ... p.141


애들이 별거 아닌 걸로 깔깔 웃을 때가 있다. 자기들끼리 넘어지고 좋다고 뭐가 좋은지 웃는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잘 따라가다가 미끄러진 반전의 사태를 맞을 때, 난 (내가 어이없어하던 행동을 하는) 아이들처럼 깔깔대고 웃는다. 넘어져서 아파야 하는 상황인데(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대략 그러하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좋다고 웃고 있다. 이래서 그분의 책을 찾는다. 초이민석 작가님 책만의 매력이다.


이 책은 여행에 대한 에세이다. 기존에 작가님의 책 <베를린 일기>나 <40일간의 남미일주>를 본 독자라면 그 내용이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다. 거기에 작가님 특유의 짠 내 나는 작가의 삶이나 또 에세이 다운 삶 속에 찾아보는 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를 디스 할 수 있는 것도 작가님 다운 에세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캬아 좋다!'라며 탄성을 지를만한 좋은 문장들도 간간이 발견할 수 있고,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지?' 싶은 비유도 나는 좋다.


여행지에 들고 가기 좋을 책이다. 여행을 하면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공감이 되니 여행을 그리워하는 '코로나 시기'에 또 괜찮겠다. 편하고도 쉽게 그러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쥐여줄 것 같은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자신 있게 이 책을 추천하겠다.


스스로를 비주류 작가라고 셀프디스 하시지만, 작가님의 특유 방식의 문장이나 구성을 좋아하는 나 같은 팬들이 분명 있기에 오래도록 글을 써주셨으면 한다. 항상 장 건강히 잘 챙기세요 작가님^^


*책리뷰가 아니라 너무 팬심만 드러낸 리뷰였나 싶지만, 내용은 아래 인용을 참고하시길!


공식적으로는 처음 하는 말인데, 여행을 갈 때마다 '과연 이곳은 작가로서 살 만한지' 수십 번씩 자문한다. 몇 가지 요건을 챙겨보는데, 다음과 같다.

1.예술적 기운이 풍기는가.

2.물가가 너무 비싸진 않은가.

3.낮에는 조용해 글을 쓸 만하고, 밤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문화가 갖춰져 있나.

4.달릴 만한 곳이 있어, 건강을 챙기며 글을 쓸 수 있는가.

5.음식이 입에 맞는가.

p.25

왜 산에 오르냐?'(리뷰어 씀: 작은 따옴표가 진짜 한 개뿐임) 이 질문에 영국 산악가 조지 맬러리는 답했다. "거기 산이 있으니까."그리고 아내는 답했다. "밑에 막걸리가 있으니까." 등산에는 1그램의 관심도 없지만, 하산후 의 막걸리에는 인류 역사상 모든 등반가가 흘린 땀을 합친 것보다 더 관심 많은 아내와 한라산 등반을 했다. 12월 중순, 비행기를 타자마자 전화기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제주, 대설주의보.' p.29

인생이 비참한 건,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서 설렘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삼십 대를 지나 사십 대가 됐고, 슬프게도 나는 이 모든 도시에 시큰둥해졌다. 다시 간 이탈리아에서는 운 나쁘게도 무뢰한들을 계속 마주치게 됐고, 도쿄의 아기자기한 음식과 생맥주는 어느새 집 앞 가게에도 즐비한 것이 돼버렸다. 그 사이 뉴욕은 세계 최악의 교통지옥이 됐다. 반대급부로 서울의 삶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생의 시곗바늘이 '설렘과 만족은 줄고, 권태와 불편이 느는'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종종 떠올린다. 다시 이십 대에 맛본 여행지의 흥분을 느껴볼 수 있을까. 아마 실패할 것이다.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것을 잃어버린다는 뜻일 테니까. p.56

내가 이 기분을 이해하게 된 것은 소설가로 데뷔하고 5년이 지난 때였다. <<풍의 역사>>라는 장편소설을 야심차게 냈는데, 세상은 마치 연주가 끝난 후의 아이리쉬 펍 같았다. 물론, 이 전에는 소설을 냈을 때, 세상이 내 작품으로 떠들썩했다, 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내 작품은 언제나 세상의 고요에 일조했다. 나는 늘 고요했던 세상에서, 고요하게 반품 중인 내 책을 떠올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내 소설을 읽는 손님을 봤다. 그 손님은 웃다가 눈물도 훔쳤다. 내가 작업하는 카페는 독자들에게 알려졌기에, '혹시 일부러 찾아온 건가?' 싶어 은근히 신경쓰였지만, 그 독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쌩'하고 나가버렸다. ... p.60

추신. 톨스토이가 매번 맞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수단이다"라고 했는데, 내 작품을 읽는 사람 중 다수가 내게서 멀어져갔다.

p.62

왜 러시아에서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그리고 체호프 같은 대문호가 많이 탄생했을까. 왜 겨울이 우울한 독일에서 니체, 쇼펜하우어, 괴테 같은 문필가가 탄생했을까. 이런 말은 좀 미안하지만, 겨울에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에 백곰과 춤출 생각이 아니라면, 러시아의 한겨울을 나는 사람은 택해야 한다. 보드카를 마시며 인생을 한탄하거나, 글을 쓸 것을. ... p.65

... 누구에게도 닿지 않기 위해 내 몸을 최대한 축소시키기로 했다. 사실, 남자도 양 허벅지를 완전히 밀착시켜 앉을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고환 제거 수술만 하면..... 그리하여 속으로 '나는 고환이 없다'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되뇌며 허벅지를 밀착한 채 두 시간 동안 허머의 열기를 맞으니, 어지러워지는 차원을 넘어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았다. ... p.85

정리하자면, 우리는 일상에 차이를 주고 싶어 떠난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 기대보다 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언제나 우리가 기댈 안정적인 무언가를 확보하길 원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글로벌 체인의 커피나 햄버거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호텔 조식일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그게 아파트일 수도 있다. 어쨌든 확보하고 싶은 최소한의 탄탄한 근거를 우리는 살면서, 또 여행하면서 원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의 개성을 따지는 것은, 비슷한 아파트지만, 시공사는 어디인지, 전용면적은 얼마인지, 역세권인지 따지는... p.95

... 여행을 가지 않아도 매일 같은 것을 먹는다. 지난 일 년간 매일 크루아상과 커피로 조식을 해결했다. 크루아상을 먹지 않을 땐, 샌드위치로 때운다. 특별한 사건이 있찌 않은 한(예컨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청와대 조식에 초대되지 않는 한), 크루아상 아니면 샌드위치로 식사를 한다(그래서, 매일 크루아상과 샌드위치를 먹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맛있어서 먹는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크루아상을 한입 베어 무는 것이 내게는 하루라는 거대한 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p.97-98

삶이 익숙한 것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그 단조로움의 무게를 견딜 수 없고, 삶이 낯선 것들로만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그 생경함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그렇다면 여행과 삶이 별반 다를 게 없기도 하다. 둘 다 적당한 변화와 적당한 안정을 추구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삶은 여행이고, 여행 또한 삶이다. 그래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려고 한다. p.100-101

결국, 글로 쓰지 않으면, 여행의 모든 경험은 사라진다. 반면, 글을 쓰다 보면 경험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험한 시간에 쓰는 시간이 더해져, 내 안에서 경험이 재창조되고, 더 깊이 각인된다. 그렇기에 '쓰지 않으려고 여행을 떠났지만, 또 써야 하는 딜레마'를 겼는다. 나는 이것을 '작가의 여행 딜레마'라고 부른다. ... p.103

이럴 때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공부를 하면 용기를 얻게 된다. 소설은 아무리 쓰고, 아무리 쥐어짜도, 정답이 없다. 소설을 십 년쯤 쓰면 잘 쓸 줄 알았지만, 처음 쓸 때보다 더 어렵고 더 두렵다. 이건 소설을 사십 년 쓴 대선배도 같은 심정이라고 말해서 이미 각오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어는 너무 솔직해서 좋다. 그 어느 누구도 전혀 듣지 않은 문장을 입으로 말해볼 수는 없다. 물론, 상상해서 조합해볼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표현은 모두 공부를 통해서 나온다. 즉, 외국어 학습은 하는 만큼 솔직하게 결과가 나오는 아주 정직한 세계다. 반면, 소설은 아무리 매달리고, 아무리 다가가도, 쉽게 열매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깜깜한 세계를 걷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자에게, 외국어 학습은 적어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땀의 보증서 같은 것이다. p.128-129

... "노 프라블럼." 이 말이 내 달팽이관을 통과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던 마흔두 개의 글감이 급사해버렸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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