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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1.줄거리
무주는 이석이 일을 잘한다 여겼다. 이석은 무주가 병원 적응하던 시기에도 살갑게 도왔고, 무주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런 무주가 사무장이 지시하는 일에 참여하며 전혀 다른 시기에 접어든다. 이석에게는 의식을 잃은 아이가 병원에서 겨우 숨이 붙어 살고 있고, 무주에겐 이제 갓 착상을 마친 아기가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 무주는 그런 아기를 생각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의로운 동기를 부여해서 이석의 횡령을 소극적으로 퍼뜨리며 고발한다. 이석이 병원을 떠나고 무주는 이석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때마침 들려온 이석의 아이의 죽음 소식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석이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2.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병원
이 책의 배경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병원'이었다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충분히 보아왔으니까. 하지만 주인공이 의사가 아닌 의료행정인이라는 점이 신선하다.(의사였다면 아마 이 소설에서의 느낌과 상황을 살리기 어려웠테다) 또한, 배경은 서울도 아니다. 서울 대학병원에서 내쳐진 무주가 다음 직장으로 간 곳이 이인시의 한 병원있었다. 그 병원은 조선업이 발달했다 쇠퇴기를 겪는 도시에 있었는데, 병원 또한 이인시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의미있게 다가왔다. 생명에서 죽음으로, 발전에서 쇠락으로 향하는 모습이 불안하고 질기며 애처롭기까지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3,주인공인 '무주' 그리고 세계
비록 학력은 낮아도 다방면의 지식과 의학정보, 그리고 위트있는 말과 함께 여기저기 마당발처럼 다니는 이석이 주인공일 줄 알았다. 아니다. 이 책은 무주라는 인물의 처해진 환경, 선택과 갈등을 따라 전개된다. 무주가 이석의 횡령을 고발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빠'로 의로운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상과 누군가를 밟아야 내가 살 수 있는 현실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갈등의 고조가 답답하면서도 이해되고, 짠내나면서도 씁쓸함이 느껴졌다.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뚫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球)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p.41
무주의 세계는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마냥 균형잡히지 않았다. 절제, 원칙이라는 기준이 분명 있는 그였지만, 그런 그 기준은 세계 앞에 처절히 흔들리고, 떨어지고, 너덜너덜해졌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와준 생명이 세계였고, 대학병원과 사람들에게 버려진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뒤에서 수군거리고,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인시의 한 병원이 그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 병원마저 자신을 버렸다. 무주는 자신의 세계를 찾으려고 눈을 돌린다. 그는 과연 찾고자 한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4.'죽은자로 하여금' 붙잡을 것을.
여기서 두 인물 이석과 무주는 '죽은 자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살았고, 그들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죽은 자(두 아이들)'가 정말 죽은 자가 된 후에, 그들은 그들이 지닐 세계를 결국엔 잃고 만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증명하려 했고, 자신의 장래에 해가 되는 이들을 짓밟고 그 세계에 굳건히 서려했지만, 그들의 세계에서 다시 낙오되고 만다. 영원하고 온전한 것이라 여기고 붙잡았는데, 그것이 무너지니 이들도 무너졌다. 그리고 이후에도 무언가를 잡고 또 붙잡는다. 이런 모습이 꼭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살아있는 세계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계속 찾고 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무언가를...
5. 이 책은
양이 상당한 작품 해설만큼이나 두툼한 해석과 도움말이 필요할 소설이 아닐까 싶다.(그럼에도 나는 그냥 내 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했다. 혼자 오해를 많이 한 거라면 죄송합니다.^^;) 술술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자본주의 세계가 있고,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의 외로움과 생존에 대한 피로감이 들어있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이 분명치 않아서 흔들리고 고뇌하는 인생,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방향이 있어서 이 책은 씁쓸한 전개와 결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해서 위로가 되고, 그 와중에 쥐꼬리만도 못한 빛을 찾으려는 인간의 처절한 희망이 있어서 또 위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