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설희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이 되면 다들 나를 찾는다.

"엄마~ ㅇㅇ 어딨어요?" "엄마! ㅇㅇ 먹고 싶어요!" "엄마 이거 보세요!" "엄마! ㅇㅇ이가 나한테 그랬어요!"

눈을 질끈, 입술을 꽉 깨물고 애들의 시중을 들고 앉으려는 찰나! 이젠 그가 부른다.

"ㅇㅇ야! 그게 말이야... (설명을 해줌)" "ㅇㅇ야! ㅇㅇ 살까?" "ㅇㅇ야! ㅇㅇ 어딨어?"

"다들 나 좀 그만 불러!!!" 꽥 소리를 한번 지르면 기겁한 듯 세 남자가 조용해진다.

그리고 30분 후 언제 그랬냐듯 또 날 부른다.


그렇게 '엄마'라는 헌신적이고 사랑가득한 단어에 환멸을 느낄 때였다. 어떤 강의였는지에서 버지니아 울프란 사람이 '여자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는 걸 들었다. '우와! 저 여자! 좀 멋지다!!!' 자기만의 방이라니 내가 꿈꾸던 내 공간, 다른 이들의 개입도 침범도 없는 공간! 그렇게도 바라고 간절하던 공간이었는데, 내게 '참진리'와도 같은 말을 선구자답게 말씀 해주셨구나!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다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이라고 겁을 주었지만, 언젠가는 읽어야 했고, 읽을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남들의 말은 하나 틀릴 게 없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강의문을수정하고, 확장을 엮은 책이라지만 그의 말은 글과도 다를 게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었다. 솔직히 그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말이다. 내가 버지니아 그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의식을 따라가는 게 무리수였었다. '이게 뭔 소리야?' 하다가, 뭔가 그녀의 강한 메시지 가닥 하나 붙잡고 '우와!'하다가 그녀의 의식의 흐름에 허우적대고 또 다시 1900년 전후에 이런 글을 쓴 그녀의 담대함과 날카로움에 감탄하기까지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며 읽었다. 심지어는 동성애를 거론하기까지?(물론 동성애에 대한 입장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당시 혹은 직전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없을 뿐 아니라 재산 소유도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강의를 할 당시가 되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이 통과됐다고 한다. 여성이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남성들의 여러 목소리와 외침을 견디며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던 그녀들이지만, 꿋꿋이 그들의 글을 써내려갔다.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엔 그런 그녀들의 삶을 밝히고, 여자들에게 조롱하고 무시하고, 도서관도 내어주지 않고, 잔디밭마저 가로막는 남자들의 행위의 부당함을 폭로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자신들의 방을 가져야 할 그녀들 모두를 응원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에게는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이 있다. 도서관에서 얼마든지 드나들며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재산을 소유할 수도, 직장을 통해 돈을 벌 수도 있다. 우린 그런 삶을 당연한 듯 살아왔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하나하나가 어느때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리와 다른 삶에서 애쓰고 피흘리고 눈물흘린 그들의 투쟁을 알고나니, 우리에게 주어진 위의 권리를 당연하다듯 받아들이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여성들에겐 불합리하고 불평등했던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주며, 여성들을 응원했고, 쓰기의 삶으로 나오게 독려한 버지니아 울프의 힘찬 목소리가 100년이 넘은 시대를 사는 내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그에 못지 않은 목소리로 '여성의 삶에 권리'를 주장하셨던 분 '나혜석' 이 생각났다. 영국에 버지니아가 있다면 한국엔 나혜석이 있달까? 당시엔 남성에게만 '첩'이 합법화이던 시절에 자신만을 사랑해달라고 요구하고, 독박육아에 솔직한 목소리를 내셨던 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위해 일본으로 홀홀단신 떠났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신문에 기고한 그녀.(이상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참조) 그들이 여성의 목소리로 외쳤기에, 그들이 총대를 매주었기에, 그들의 목소리가 남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운동했고, 전해졌고, 세상을 바꿨다. 그들의 힘찬 목소리가 너무도 감사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여성됨이 참으로 값져보이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