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박 맛 좋아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2월
평점 :

이 책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첫째가 말했다.
"나도 수박 먹고 싶다! 엄마! 우리 수박 언제 먹어요?
"여름이 오면 먹겠지!?"
"아! 얼른 여름이 돼서 수박 먹었으면 좋겠다!!!"
뜨겁고 지치게 만드는 더위보다 더운 속을 시원하게 식혀줄 수박 생각이 더욱 기대되는 얼굴이었다.
그러게.
여름이 오면 우린 수박을 먹을 수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에게 여름은 고통스러운 계절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참나! 무슨 수박이 100만원이나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현실이다.
다들 샤인머스캣이 맛있다고 할 때, 나는 그 가격에 한번도 내 돈 내고 사먹은 적이 없다. 포도같이 생긴 게 그래봤자 포도려니 하고 생각한 나는 먹어본 적이 없는 샤인머스캣을 그렇게 포기했다. 그런데 수박이 만약에 그 정도의 양에 그 가격이라면 나는 먹을 수 있을까? 조금은 아쉬워도 사먹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수박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수박의 맛이 좋은 걸 아는데 한여름에 수박을 못 먹는다면??!
수박 대신 수박을 먹고, 삼겹살 대신에 돼지바를 먹는 현실이 여기 바로 이 책에 펼쳐진다.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과 40도를 넘나드는 이상고온현상이 있은 후부터 이상하게 수박 농사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몬산토에서 판매하는 수박씨로는 재배할 수 있었는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10kg 미만 수박 한 통이 못해도 100만원은 줘야 했다. 이제 수박을 비롯한 신선식품은 부자들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식재료가 되었다. p.11
여름, 은찬, 세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게 된 사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취방에서 함께 산다. 여름은 축구선수로 뛰었다가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어 주저앉아 있다. 세휘는 자꾸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와 쌓아둔다. 그나마 은찬이가 간간히 뛰는 아르바이트로 이들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밀린 월세와 그 월세가 까먹고 0원이 되어가는 보증금이 있다. 그리고 선풍기 살 돈도 없어 냉장고를 열며 더위를 식히는 가난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만이 있다.
셋이 살던 집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이들도 쫓겨난다. 은찬은 새로 취직한 직장의 숙소로 여름과 은찬은 '하우스 마루타'로 들어간다. 부실공사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고급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기회(?)와 100만원이 입금된다. 하지만 실제론 그들이 영업을 해야 받을 수 있는 100만원이고, 이들에겐 에어컨과 TV 만이 허용된다. 침대에서도 자면 안 되고, 취사, 화장실 이용도 안 된다. 에이 설마!! 했는데 수도꼭지가 떨어져나가고, 타일이 떨어진다. 우리 청년들... 과연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박바, 돼지바, 롯데리아, 편의점, 라면 등 현실감 넘치는 소재가 피부에 확확 와닿는다. 하지만 가난해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그들의 현실을 그저 읽기만 했는데, 펼쳐진 현상들이 내 피부를 파고드는 듯 고통스러웠다. 누가 이 청년들을 이렇게 가난하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살인같은 40도의 더위일까? 벌어도 벌어도 벌리지 않는 '물을 부어도 물이 없는 구멍난 독'과 같은 월급일까? 그 많던 돈을 죄다 꼭꼭 숨겨둔 도둑놈들일까?
디스토피아 소설은 어렵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가뜩이나 현실도 부정적이어서 부정하고 싶은 세상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고통을 쉽게 짓밟아 지나가면서 재미나게 읽힌다. 이런 아픔을 이렇게 잔인하도록 재미있게 읽어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든다. 웃프고, 씁쓸하고, 끔찍하다.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처럼 와 닿아 괴롭다. 이 청년들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아 두렵다. 이 작가님 왜 예언한 것 마냥 현실을 보여주지? 싶게 좌절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그리고 청년들의 미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간절히 바란다. 그러니 우리가 발 디딘 사회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단단히 하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는 결의마저 든다.
이 책은 재미도 보장이지만,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 하나더!
작가님이 기존 사회현상(청년실업, 부동산, 복지 등) 뿐 아니라 자연기후, 몬산토(유전자변형GMO 관련), 농작물 등에 민감하게 받아들이시는 분이라 생각됐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더더 좋았다.
작가님의 독특하고 신선한 상황에 대한 발상 또한 놀라웠던 책이다.
#한국소설
#수박맛좋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