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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1.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그 시작
시작처럼 유영기의 불시착과 함께 조종사는 익인을 만나는 걸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렇게 인간과 익인이 만났고, 이후 익인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청사에 와서 그들의 몸을 부딪힌다. 충돌은 그렇게 시작됐다.
2.줄거리
루는 휴고와 탄처럼 '전 시행'을 부친으로 두었지만, 모친은 그들과 다르다. 청사에 살아도 소속감을 누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함으로 하루하루 버텨가는 루, 익인 50명이 청사를 향해 돌진하며 '루'의 인생이 전환된다. 익인들 중 청사에 잡혔던 '비오'가 역으로 '루'를 인질로 삼아 청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루'는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을 찾고, '비오' 또한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3.청소년 문학은 쉽다? 어렵다?
이 책은 '청소년 문학'으로 구분되어 출판됐다.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학은 쉬울 거라고 짐작했다. 그간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판단했는데, 알고보니 다 아동용소설이었다. 아차!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어선가? 우리 청소년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다니!! 독서카페에서 이 책을 모임장으로 이끌어주신 분이 '청소년 문학'에 대한 글을 써주신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의 글처럼 '청소년 문학의 기준은 '성장'을 주제로 한 문학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내게는 아직도 미지의 책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청소년 추천 도서다.(중3때 친구가 꼭 읽어보라고 내게 추천하던 생각만 하면...ㅠㅠ)
4.익인 vs 인간 ; 약자 vs 강자?
날개 달린데다가, 악력은 평균 남자의 2.5배나 된다고 하는 익인이다. 어쩌다 인간에게 물건 대주며 눈치보는 존재가 됐는지 납득할 수 없다가도, '각자 가진 성정이 다르기 때문인가보다'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대립적인 두 대상을 보며 과거 제국사회의 식민지와 식민 제국이, 현재는 약소국과 강대국, 생산지와 소비지(주로 생산지가 개발국, 소비지가 선진국인 경우가 많음)를 생각했다. 익인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잔인한 만행을 떠올릴 수도 있다. 쓰레기는 선진국에서 만들어내고, 감당은 개발국에서 하는 상황, 공장을 세우고 가축을 늘리기 위해 자연의 자리를 기꺼이 뺏고야 밀어내는 인간의 자만과 끝없는 욕구도 이 책 속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익인 실험은 수습했으나, 물질적인 보상이나 사과가 그들에게 얼마나 적절했을까? 권력있는 자와 권력없는 자까지 더듬어 가니, 그간 세월호 사건이나 일용직 노동자의 죽음들에서 벌어진 대립도 처우도 씁쓸하게 가슴 속을 후벼파는 듯 하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은 여기서 멈출까?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5.순수혈통과 혼혈
단박에 해리포터가 떠오른다. 익인과 인간 사이에 생긴 아이 '비오', '전 시행'과 시행비서 사이에서 생긴 아이 '루' 그들 모두 순수한 혈통(?)은 아니다. 이 책 속의 '인간'은 그들에게서 생기는 차별을 굳건히 하고, 매몰차게 그들을 구별했다. 루는 '청사' 속의 세계에서 가족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 익인은 조금 달랐다. 그들도 초기에는 '차별'의 잣대를 대었지만, 자신들의 그 차별을 돌이켜보는 겸손함과 유연함을 갖추었다. 그래서 '비오'는 '익인'의 세계에 온전히 받아들여졌다. 우리와 다른 존재를 대하는 두 세계(인간, 익인)는 현재 우리가 우리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살펴보도록 한다. '다문화' 상황이 점차 두드러지는 현실에도 적용해 볼만하다.
5.판타지와 SF의 사이의 징검다리에...
신성한 초원조를 의지하는 익인들에게서는 판타지가, 차갑고 도시적인 느낌의 인간의 세계는 SF의 느낌을 준다.(사실 도시에서 미래적인 느낌은 충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묘한 두 기류가 신비로우면서도 초현실적인 세계에 들어선 듯 재미있었다. 익인들의 세계관과 삶의 모습들에서 기존 판타지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앞으로 구병모 작가님 표 판타지*SF 소설들이 조금더 확장되어 나올 수 있을지 기대된다.
6.구병모 작가님 소설...
문장이 긴 편인데, 이 점이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이구나! 알 수 있게 하는 트레이드 마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마디로 굳이 표현하자면 '유미건조' 문장이랄까?
'유'는 '기름 유'를 써서 설명하자면 문장이 건조한듯 보여도, 기름처럼 매끄럽고 섬세한 표현이라 할 수 있고, '있을 유'를 쓴다면 건조하듯 깔끔하면서도 그 속의 표현력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
7.이 책을 읽고
청소년 문학인데, 독자가 청소년이 아닌 이유로 '성장'보다는 사회적인 구조를 먼저 떠올렸던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비오의 성장보다는 남은 자들(익인과 인간)의 앞으로 삶이 난 더 신경이 쓰였다. 내용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신비롭고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고, 그덕에 소설을 읽고 난 후 깊게 여운이 남았다. 비오와 루의 사이에 살짝 마음 설레이기도 했다. 그들의 삶이 이어진 듯 이어지지 않은 듯 흐린 결말도, 주고받는 편지형식의 글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