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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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자마자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당연히 바닷가에선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겠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육지에 파묻혀 사는 내겐 설레는 일인데, 바닷가에 작업실이 있으면 얼마나 황홀할까? 한 달전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통영을 통해서 본 남해안은 확실히 다른 방향의 바다와는 달랐다. 끝이 없어 보이는 바다가 펼쳐진 동해안, 드러난 갯벌이 떠오르는 서해안. 남해안은 다른 바다와 달리 초점이 허공에 뜨지 않았다. 바다 가운데 드문드문 있는 섬들로 시선이 머물만해서 아련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는 작업실에선 분명히 다른 시간이 흐를 것이다.

 

교수로, 심리학자로,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지만, 그 안에서도 공간에 대한 욕심(공간충동)을 인지했고, 슈필라움을 찾아 나섰다. 2년간 여수 바닷가 작업실에서 지내보고, 그는 여수 남쪽 섬 ‘미역창고’를 저자는 자신의 공간인 슈필라움로 확보했다. 주변의 반대, 비싸게 지불한 창고구입비,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서 홀로됨 여러 가지 코스트를 지불하고 자신의 본능, 공간충동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결국 미역창고로 들어갔다. 이 책 속의 미역창고를 본 대부분의 독자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병원과 마트가 가까운 곳이 집 조건 1순위라서 그렇지, 그의 집을 가득 메운 책장 그리고 책들 그리고 바다풍경을 보니 나도 저런 작업실 겸 집 갖고 싶다.

 

이 책은 여수에서 지내면서 느끼고, 헤아리고, 통찰한 것들을 나눈 글이다. 또한, 그가 미역창고를 슈필라움으로 갖기까지 슈필라움을 구체화한 과정들을 다뤘다. 내가 읽어본 저자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한 그의 기존 책제목들을 보며 난 선뜻 그의 책을 집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바다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아득하면서도 그리움이 느껴지는 바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공간과는 다른 그 곳이 궁금하다. 슈필라움이란 단어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단어다.

저자는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이전 책들의 제목이 심상치 않았던 것만큼 그의 솔직함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이 책에서도 노골적이다. 자신이 산 배의 이름을 ‘오리가슴’이라고 했는데, ‘오르가즘’의 한국식 표현이란다(p.258) 정신적 지적 오르가즘이 있지 않냐며 거론한 ‘오르가즘’이란 단어는 우리가 쉽게는 생각해도, 쉽게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단어다. 그런 단어 그리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정직하게 글로 표현했다. 예쁜 여인을 보면 말 걸고 싶고, 눈길이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도 솔직히 이야기 한다. 흔히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암묵적인 동의하에 드러내지 않는 생각에도 그는 자유로웠다.

그래서 재밌었다. 허위허식이나 지적인 척 하지 않고 편하게 투덜거리는 느낌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어느새 깔깔대며 웃고 있다. 유시민 작가와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며 자신에게 승리의 손을 올려주고, 이상순의 부드러움을 질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게임 끝 ‘이효리’를 거론한다. 목욕탕에서 만난 남자를 묘사하며 불쾌감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저자는 분노하지만, 독자는 웃느라 뒤로 나자빠진다. 눈 작은 사람치고 만만했던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외모에 대한 생각들을 은근히 쏟아낸다. ^^;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재치와 기발함이 담겨있다. 이미 여수 섬 앞에 작업실을 짓고, 책을 몽땅 옮겨오는 행위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책을 사려고 여행한다. 자신의 빈 책장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책이 잘 팔려야 한단다. 물론 이런 위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인생의 지혜와 통찰이 담긴 그의 사유를 더욱 몰입하게하기 위함이다.(그건 아래 인용참고^^)

 

규칙적이고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 정적인 면에서 그와 조금은 비슷하다과 애써 말해보지만, 나는 보통의 삶을 사는, 평범한 생각을 하는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여행하듯 이것저것에 새로운 시선을 틔우게 해주었다. 또, 서울의 높은 건물과 수많은 차선을 덮는 차들만 보다가 통영으로 가서 본 바다에서 느낀 탁 트인 구도를 그의 글과 그림에서 발견했다. 그가 보낸 바닷가의 전혀 다른 시간이 책을 읽는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슈필라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겐 주체적인, 놀이의 공간이 있었나? 잠깐이라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듣고, 스트레칭을 할 만한 공간? 그런 거?

가능하다면, 먼저 나같은 엄마, 여자, 주부에게는 아이와 집안일로 해방될 시간과 상황부터 줘라!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 공간이랄 건 딱히 없다. 책장은 방에, 책은 거실에, 책상은 수시로 접었다 폈다 하는 좌식 캐릭터 책상뿐이다. 그래서 책 한 권 들고 매일 내게 가능한 슈필라움을 찾으러 간다. 의자, 탁자, 책,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린티프라프치노가 있는 까페로...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다른 동물들은 시선의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눈 전체가 거의 같은 색이거나 흰자위가 아주 작다. 소통이 아니라 사냥하기 위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시선의 방향이 드러나지 않아야 사냥에 더 유리하다.(이제까지 살면서 '눈 작은 사람'이 만만했던 적은 없다. 흰자위가 다 드러나는 '눈 큰 사람'은 대개 참 편안했다. 뭐, 내 개인적 편견이다.)

p.34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이 들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다.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 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 항상 잘 되어야 하고, 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

p.44

 

...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날아다니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의 고리를 의식할 수 있는 '자기 성찰'에 인간 창조성의 본질이 있다.

p.52

 

중요한 결정일수록 서글프다. 혼자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p.56

 

사회는 '담론적'이어야 하고 삶은 '단언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다.

p.69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의 내용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제목을 붙여 적다 보면 걱정거리는 '개념화'된다. 내 걱정거리의 대부분은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 바로 깨닫게 된다....

p.79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p.115

 

책을 읽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의미'의 생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사건과 경험들에 대한 기억은 주체적 관심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온다. 인간의 의식 또한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다. '입자'와 같은 개별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행위가 바로 '의미 부여'다. 개별 사건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팩트'에 불과한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의미 부여'가 의식의 본질이다.

p.130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조급해진다면 음악회를 찾는 게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p.144-145

 

그래서 자동차 안이 그렇게 행복한 거다. 한 평도 채 안 되지만 그 누구도 눈치 볼 필요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밟는 대로 나가고, 서라면 선다. 살면서 이토록 명확한 '권력의 공간'을 누려본 적 있는가? 그러니 도로에서 누가 내 앞길을 막아서면 그토록 분노하는 거다.

p.202

 

은은하게 조명을 밝히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도 쭉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아, 자기 전에 그 공간에서 하루를 성찰하며 차분히 기도도 드려야 한다. 자다가 아예 영원히 잠들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이미 여럿 그렇게 갔다.

p.206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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