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토요일 오전. 어느 토요일, 같은 시간에 KBS <영화가 xx>를 보고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영화를 보며 참 독특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렇게 가구에 들어간다면, 그래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좁겠지? 불편하겠지? 먹고, 배출하는 욕구는 어쩐담?‘ 생각하는데, 이미 출판된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며 진행자가 소개했다.
’여행’이란 단어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것도 ‘세계여행‘이라면? 다양한 나라 문화와 기후를 경험할 수 있어 늘 고대하지만, 나같은 제약 가득한 성인에게는 머나먼 이야기다. 그뿐 아니라 상식적인 방법(돈, 비행기 티켓 등)이 아닌 이케아 옷장을 통해서라면? 상상불가다. 너무도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이 책을 보면서 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떠올렸다. 창문을 넘어 돈을 훔치게 된 노인이 불가피한 상황들에 떠밀려 하게 된 세계 여행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여행이며, 특유의 융통성과 대담함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모면하는 모습이 꼭 닮았다. 이 책(<이케아..>)의 주인공은 인도의 고행자로 현란한 거짓말과 마술로 만나는 이들을 ’눈감으면 코 베어가 듯‘ 속인다. 그가 살아온 생존본능에 따른 것이라지만, 그의 행동은 적들을 늘린다. 소설 내내 이동되고, 발각되면 도망간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로 사랑을 찾고, 진실을 찾고, 도움의 손길을 받음으로 여행의 다양한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삶의 의미 또한 찾아 인생 또한 바뀐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다른 작가와는 남다른 점이 눈에 띈다. 이 소설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그의 직업들이 크나큰 공헌을 했다. DJ, 작곡가, 통번역가, 항공기 승무원, 서커스단 소속 마술사, 슬롯 머신 청소원 등을 거쳐 현재는 국경 담당 경찰로 문서 위조를 가려내는 업무를 한다고 하니 그의 직업 경험들이 소설하나를 거뜬히 만들어 냈다. 그 무엇보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밀입국자들에 대해서다. 흔히 밀입국자에 대해, 어디에 빌붙는 기생충같은 이들처럼 여기기 쉽다. 뉴스를 통해, 그리고 여러 영상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에 지레 겁먹고 그들을 배척한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그들을 한 가족의 가장으로 바라봤고, 그들의 명예를 생각했으며, 인격체로 대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는 가치를 기본으로 충실히 소설에 담았다. 이 소설은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상황을 설정으로 두었음에도 이들을 보는 시각은 진지하고 따뜻했다. 그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는 ’선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의미를 찾는다. 그가 믿는 불교의 사상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나 자신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고 있으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난에도 처해보고 부함에도 처해본 파텔의 삶에 남은 것은 가난을 떠나 풍족함을 누리는 게 아니라 ’선을 행한 일’이었다는 것. 이를 통해 전기가 찌릿하는 보람과 감격을 느끼는 파텔의 감정을 다룬 걸 보면,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선한 일을 해서 생기는 느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적인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도 싶지만, 결국 그것이 또 특별할 거 없다는 삶에서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짧게나마 인도의 카스트 문화부터, 리비아의 열악한 환경, 프랑스, 영국을 거쳐 이태리의 집시까지 여러 가지의 문화를 한 소설에서 거쳐보게 되어 흥미로웠다. 독특한 설정과 위트넘치는 그의 글을, 책을 또 찾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역시 책은 간접경험을 하게 하는데는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내가 선함을 주변에 퍼트리는 사람이라고?”
....
때론 사람들이 당신을 특정한 어떤 방식으로 보기만 해도, 특히 특정한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긍정적인 경우 당신은 실제 그런 사람으로 변하기도 할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파텔이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 자신의 폐부를 강타한 최초의 강력한 전기 충격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최초이되 최후의 충격은 아니었다.
p.48
경찰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불법 체류자였지만 적십자사 입장에서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가지의 정체성과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는 건 정서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p.76-77
모멸감. 밀입국자들에게도 최소한의 명예는 있는 법이다. 재산, 여권, 신분을 모두 박탈당한 이들에게 명예는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무형의 자산일 것이었다. 그들이 부인도 아이도 없이 혼자 떠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부인과 아이들에게 위대하고 강한 존재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들의 창자를 뒤틀리게 하는 건 매질에 대한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떠나온 나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두려움이 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나라로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p.80-81
파텔은 밤의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적어도 일생에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p.85
... 오히려 똑똑하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사람들을 속이는 게 제일 쉬웠습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매사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든요. 아무도 자기를 속일 수 없다고 자만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얼마나 쉬운 먹잇감이었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다 싶은 사람을 상대할 땐 훨씬 조심을 합니다. 그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관찰하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바보들을 속이기가 더 힘든 법이죠. 이건 프랑스 마술사 로베르 우댕이 한말입니다....“
p.241
“절 위해서라도 받아주세요. 더는 배의 밑바닥, 자동차의 트렁크 화물 트럭 같은 데서 불안에 떨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전 당신이 늘 공포에 쫓기는 인간 사냥감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면 해요. 이 나라 저 나라를 장기판의 말처럼 떠도는 것은 그만 두세요. 다시 아버지가 되어야죠.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p.247-248
세상엔 사기꾼, 협잡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최근 며칠 동안 경험한 여러 만남은 속임수로 남의 돈을 갈취한 것보다 훨씬 득이 되는 일이 존재함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일이란 바로 남에게 돈을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함을 베푸는 것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는 입에 발린 말, 그럴듯하게 감정을 포장하는 달착지근한 말, 기만적인 말이라고 받아넘겼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파텔은 비라지에게 4만 유로를 주었을 때 그가 짓던 표정이며 눈길을 떠올렸다. 그는 절대 그의 시선을 잊지 못할 것이었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