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대실패로 끝났다 해도,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아예 시작도 못했다 해도,

처음부터 모두 마음속에만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였다.

p.341


원제목은 <The only Story>이다.

세상에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지문을 갖고 있다. 같은 지문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다르다. 약간 비슷할 수 있지만 각자가 소유한 다른 지식, 경험, 기질, 성, 환경 등 각기 각 사람들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 특히 사랑이야기...라면...?

 사랑이라는 통로를 지나보니 못한 사람이 있을까? 그 주제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뿐인 내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그 단 하나뿐인 사랑이야기는 언제라도 흥미롭다. 새롭다.


그 와중에서도 단 하나의 사랑일 수 밖에 없게끔 인물의 설정이 상당히 유니크하며 파격적이다. 40대 여성과 10대 청소년의 사랑이야기라니 ...

흔치 않기도 하고, 이슈화가 될만한 그리고 비정상적이라 치부할만한 관계를 상황을 작가는 왜 선택한 걸까? 언뜻 영화 <은교>가 떠올랐다. <은교>는 인간의 욕망과 온전함을 추구하는 열망에 주목했다. 이 소설은 나이차를 갖고 있는 남녀 사이에서 어떤 메세지를 담고 싶었을까?

이 설정을 보며 너무나도 짓궂은 창조주(작가)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나이차 있는) 남녀에게 큐피트 사랑의 화살을 쏘고 그들을 상황 속에 던져놓은 채 무심히 관망하는 듯 했다.  마치 두 소를 경기장에 넣어 놓고 투우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무자비하고 잔인하게도 느껴졌다...


 폴은 엄마의 권유로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다. 거기서 알게 된 엄마 또래 나이 이상인 여성 수전을 만난다. 그 둘은 사랑에 빠졌고, 은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그 사랑을 유지한다. 그러다 수전이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폴은 수전을 데리고 런던으로 가서 그들 만의 삶을 시작한다. 폴은 이제 20대 학업 중인 학생이었다. 그 시간을 허전하게 보내며, 자신과 엮여있던 과거를 정리해가면서 술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가까스로 이어가려 했던 폴과 수전의 관계는 시련을 맞게 된다. 마치 창밖으로 떨어진 수전의 손을 창 안의 폴이 잡고 버티고 있는 것과 같은 장면의 모습이다. 결국 폴은 그녀의 손을 놓았고,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삶을 유지함과 동시에 그녀와의 만남을 끊지는 않는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챕터의 대상 시점이 달라진다.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끼리 떠나게 되는 장면은 1부로 '나는'이란 시점을 갖고 이야기 한다. 2부는 그들의 동거기간과 알콜릭이 되는 수전을 다루었는데 '너는'으로 서술한다. '그는' 으로 수전과 헤어지고 각자의 삶 속에서 간간히 부딪히는 면을 3부에 담았다. 이 소설은 기억을 재구성했다는 설정이라 기억을 설명하는 화자가 처음엔 '나'가 되었어야 한게 아닌가 싶다. 단편적인 기억처럼 이야기를 짤막하게 나열한다. 점차 나의 이야기를 타인이 맡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점차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본 나의 모습은 나를 잘 간파하면서도 시점의 변화를 줌으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또한,  사랑에 대한 적극성, 그리고 책임에  '나'로 처음엔 적극적이었다가 점차 피하고 싶고 책임을 돌리고 싶어 사랑이 용해되어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너는'과 '그는'이란 시점의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점은 1,2,3인칭으로 변하지만 폴의 입장과 그의 생각을 다루는 것이 주(主)가 된다.젊은 입장에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사랑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지, 다른 이들과 어떻게 비교되는지, 사랑에 따라 제약, 상황, 결과 등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을 갖고 다루었다. 또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랑의 감정과 자세가 어떻게 변하는지 순차적으로 다룸으로써 사랑의 순수함과 그 순수함을 따르고자 애쓰는 면모 등 다방면의 사랑의 모습을 조명했다.

나이차를 둔 설정이 있어서, 외모나 조건과 분리된 순수한 사랑을 볼 수도 있고, 책임없던 미성년에서 차차 부여되는 사회적 책임, 도덕적평가등의 환경적인 제약으로 변하는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읽다보니, 자신이 다루려는 이야기를 위해 최적화된 설정을 의도한 것과 많은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것에서 작가의 탁월한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연애와 기억을 시작으로 여러 상황을 꼼꼼히 사색하고 사유한데서 이 책의 매력을 느꼈다. 작가는 인물의 심리나 행동과 더불어 인물이 다루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랑'과 관련한 소소한 모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다룬다. 사랑, 기억, 거짓말 등 여러가지가 사랑의 과정을 통해 감정, 심리, 고뇌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깊이있는 작품의 맛을 느끼게 했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술로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폴은 기억에 의존하여 사랑을 재조명하고, 사색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또 폴이 살아가는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과 같이 사랑에서도 인간은 연약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연애에 대하여...

'연애'하면 으례 달콤한 것, 설레이는 것, 행복한 나날로 단정짓는다. 그런 고정관념으로 연애의 단편적인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은 연애의 다양하고 깊이있는 모습은 간과했음을 알게 한다. 이 책의 설정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더라도 연애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면모를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단지 어둡고 피하고 싶은 부분이라는 이유로 묻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책을 읽어보며 연애의 또 다른 얼굴을 맞닥뜨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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