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승의 날이다.

아이가 어리다며 내가 엽서를 썼다.

감사는 한데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한참을 펜을 들고 망설였다.

그냥 볼펜으로 쓰니 헛소리가 나간다.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더 욕심을 부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의 진심을 알아보게 만들 수 있을까?

공백에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고민하고 고민하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표현을 못 찾고 펜이 가는대로 쓴다.

이번에도 내 마음을 표현하기 보단 그냥 써야하기 때문에 써버리고 말았다.


이래서 글쓰기가 늘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운명, 교양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의 것들이라 여겼던 글쓰기였다. 글쓰기 앞에 겸손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정도가 누적되면서 '나라면 어떻게 글을 쓰게 될까?'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를 담너머 흘낏흘낏 구경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까?' '내 글의 주된 이야기는 어떤게 될까?',


글쓰기 책에서 이 책이 인용된 것을 보고, 이 책을 언젠간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글쓰기라는 알쏭달쏭한 개척지에서 내가 알고 있지 않은 것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줄 것 같았다.


 초반엔 '이력서'란 제목으로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적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글을 쓰게 되기 시작한 것부터, 아내를 만나고, 여러 출판사의 거절과 함께 글을 써왔던 그의 삶을 말이다. 아버지는 없었고, 가난했고, 부족했고, 턱없이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마약과 술에 빠졌다. 삶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삶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직설적이며 유머스러운 태도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자주 실수하는 부분을 잘 집어주었다. 그리고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식의 표현은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예로 실수한 글과 고쳐진 글을 비교해 보였다, 쓸 때는 몰랐는데 읽어보니 어색한 것이 보였다. 부사, 수동태, 장황한 글 등 .... 사용하지 않으면 부족할 것 같은 표현들이 실제로 내용에 도움이 안 된다. 인정하기 싫고, 정말 충격적이다. 아! 그동안 난 ... 뭘 쓴거야!!!  


 그의 글은 짧고 명료하다. 확실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위해 비유를 적절히 사용한 것 또한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발굴한 화석이 조가비처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엄청난 갈비뼈와 빙긋 웃는 이빨들을 모두 갖춘 티라노사우르스처럼 아주 거대한 것일 수도 있다. 단편 소설이든 천 페이지 분량의 대작이든 간에, 발굴 작업에 필요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p.199


특히 이 표현이 나는 좋았다. 글을 쓰는 것을 발굴이라는 작업에 비유한 것, 그리고 기술은 기본적으로 같다는 것.

나같은 이에게는 희망적인 글이다.

저자를 보면 그의 글쓰기 사랑과 노력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타고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다작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저자와 같이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소설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글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며 즐거워하고 싶고, 글을 쓰며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 글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사랑하고 글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은 그런 꿈을 갖도록 도와줬다.


외에도 스티븐 킹을 그 되게 해준 아내와의 관계, 사고를 당하게 된 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일들은 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독서하고, 글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소개한 곳곳의 글도 참 인상적이다. 글에 대한 그의 열정과 기쁨은 정말 그에게 주어진 선물같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미국책이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방식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언어가 다르다는 점은 아쉬웠다. 영어는 영어의 표현하는 방식과 뉘앙스가 있는데 반해 한국어는 또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글쓰기를 명료하고 즐겁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앞으로 글을 쓰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글쓰기라는 것에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현실적이면서 명확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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