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보면 내 글이 참 작아진다. 은혜가 넘치는 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 하나님의 은혜로 적은 글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가끔 인스타에서 지인이 캡처해서 보내주는 글을 읽어보다가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읽게 된 책이다. 그전부터 짧게 짧게 읽었는데 참 은혜로운 글이었다. 읽고 나서 느낀 점들이 참 많았던 글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얼마나 묵상을 하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이 크면 가능할까?
부족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이런 은혜가 되는 글들을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글. 은혜가 되는 글을 꼭 써보고 싶다.
성경을 토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도전 과제 중 하나이다.
맥스 루케이도와 같은 글을 써보고 싶은데...
언젠가는 나도 그런 책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언젠가... 그럴 수도 있겠지? ^^"
< 내 마음의 한 줄>
하나님은 쓰시는 분이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판에 거룩한 십계명을 쓰셨고, 꾸깃한 파피루스에 율법을 쓰게 하셨고, 예언을 쓰게 하셨고, 말씀을 쓰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겨진 삶에도 최고의 이야기를 쓰시는 분이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구겨짐에서 최고의 이야기가 나왔다.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을 통해 최고의 이야기를 쓰셨다. 실패로 구겨진 베드로의 삶에서 최고의 제자의 이야기가 쓰였다. 다윗은 늘 구겨졌지만 그 삶에서 하나님은 최고의 이야기를 쓰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바꾸길 원하신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가장 좋은 이야기가 쓰이길 원하신다. 이제 우리가 쥐고 있던 페이라는 주권을 드려야 할 때다.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다면, 방황과 아픔이 가득한 삶이었다면 이제 하나님이 쓰실 차례다. 쓰신 삶은 쓰임 받는 삶이 될 것이다.
늘 두 가지를 동지에 던지신다. 한 손으로 연단을 던지시지만, 다른 손으로 그것을 이길 은혜를 주신다. 바다에 빠지지 않으면 산에 오르지 않으면 양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연단을 뒤쫓고 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크게 쓰시는 분이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져야 한다. 나의 힘과 나의 생각이 작아져야 한다. 나의 죄성과 나의 욕심이 작아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심을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은 크고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진 우리를 원하신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완벽하게 준비를 못 해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먼저다. 그분의 손을 먼저 잡을 때, 누워만 있던 자를 일으키셨든 무너진 계획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컵에 물이 흐르려면 넘쳐야 한다.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넘쳐야 기도가 하나님께 흘러간다. 그런데 물은 컵이 넘어져도 흐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넘어지게 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 간절해지라는 것이다. 넘치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넘어져도 물은 흐른다. 넘어졌다면 하나님께 흘러가라는 것이다.
힘들 때 힘을 빼는 방법은 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힘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으로 힘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더 감사하고, 더 예배하고, 더 순종하고 더 의지하는 것에 힘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한계를 자주 만나야 한다. 베드로는 어부의 한계의 끝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모세는 길의 끝,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나사로는 생명의 끝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만났다. 혈루증 여인은 병의 고통 끝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모든 길 끝에 새로운 길이 있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순종이란 물에 몸을 띄우듯 힘을 빼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힘을 뺀다는 것을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이르게 된 그곳의 현실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종이다. 힘을 뺀다는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하며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광야에 있다면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폭풍에 있다면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덧 가나안이 보일 것이고 순풍이 불어올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이미 최고의 선한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최고가 되었을까?
다윗은 있는 힘껏 돌을 던졌고, 모세는 있는 힘껏 바다를 쳤고, 다니엘은 회선을 다해 기도했고, 요셉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겼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기도하며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려움의 골리앗이 쓰러질 것이고, 장애물의 홍해가 갈라질 것이고, 상처의 사자굴을 이길 것이고, 능력의 가뭄을 극복할 것이다.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사람이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믿음은 버팀의 믿음이다. 버텨야 이긴다. 변화되는 믿음의 상태에서 믿음을 유지해야만 한다. '버팀'은 단단함을 떠오르게 하지만 버티려면 유연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왜 그렇게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들어오시기 위해서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일상과 마음과 관계와 일과 상처와 삶의 모든 터전에 들어오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죄로 오염되고 욕심으로 훼손된 삶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나나님처럼 선하고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 장갑은 손이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못 한다. 손이 들어가는 순간 물건을 들 수 있고 방향을 가리키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장갑에 없는 힘과 능력이 손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맡기는 기도를 들으신다. 문제를 맡기고, 방법까지 맡기고, 결과조차 맡겨야 한다. 문제를 맡길 때, 기도를 들으시고 방법을 맡길 때, 기도를 들어주시고 결과를 맡길 때, 계획을 들려주신다. 가장 선한 계획은 하나님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왕이 되는 과정이었음을 기억하자. 망친 시험은 끝이 아니다. 끝난 이별도 끝이 아니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다. 죄인의 결말은 죽음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죽음조차 영생의 과정이 되었다.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결과를 끝나지 않는 과정이 되게 하셨다.
성경을 읽어준다. 삶으로...
부자의 진짜 무기는 돈이 아니다. 돈 걱정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다. 경험 많은 자의 무기도 경험이 아니라 여유다. 그래서 삶의 승부는 재력과 능력이 아니라 여유에서 난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작고 연약해도 여유는 세상을 이기고 위기를 이기게 한다. 잘난 사람이 여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는 사람이 잘난 것이다. 여유를 갖는 방법은 가장 여유로우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힘든 일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이유
한 번 힘든 일이 생기면 파도처럼 힘든 일이 계속 찾아온다. 그런데 이건 착각이다. 평소와 똑같은 일이지만 버티지 못하는 것뿐이다. 살을 베이고 나면 살짝 닿아도 아픈 것처럼 처음 온 힘든 일이 의지력에 금을 냈고 그 후에 작은 일도 버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때는 하나님 찾기도 힘들다. 힘든 일에 매몰되기도 하고 시도할 의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도해도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는다면 계속 기도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