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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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된 세계와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서 삶의 의미 찾기


어떤 SF 소설들, 그러니까 지구의 종말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을 가만 읽다보면 현실에서 가장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종말'을 통해 오히려 깊고 투철하게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소설들은 세상을 뒤집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 삶 속에 너무 깊게 침투해있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순이나 문제점들을 직시하게 해 준다. 


'단절' 또한 그런 소설이다. 선 열병에 감염된 사람들, 황량해지는 도시, 죽어가는 사람들 만큼이나 죽어가는 도시의 모습. 그리고 이 모든것을 극대화 해주는 것은 기억 회상을 통한, 과거의 찬란했던 모습과의 대비이다. 


어쩌면 '단절' 이라는 것은, 선 열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예방책이 아닐까? 주인공 캔디스가 선열병에 걸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가 거의 단절의 인간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이 애착 내지는 집착, 향수를 느끼는 것들과 단절되었기 떄문일 수도 있다. 우선 그의 뿌리부터 살펴보자. 캔디스의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단절을 적극적으로 쟁취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어렸을 적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캔디스에게 말해 주었는데 캔디스는 이것을 제 아버지가 마침내 고향인 푸저우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냈고 즈강이 고향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꼈기에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머니 쪽은 어떤가.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비자발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단절된 인물이다. 아버지 즈강이 자신의 성취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단절되었다면, 어머니 루이팡은 미국에 대한 애매한 환상과 배우자인 아버지의 설득, 그리고 현실적인 여건 등으로 즈강보다는 덜 적극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 이유로 루이팡은 계속해서 중국 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딸인 캔디스에게도 계속해서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이어주고 싶어했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 단절의 인간화 캔디스를 살펴보자. 중국계 이민자로서, 캔디스는 직계가족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바다 건너 중국에 있다. 그리고 문화적, 거리적 차이로 친척들에게 그다지 많은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 캔디스는 아버지를 잃었고, 4년 후에 어머니도 잃었다. 부모님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물건들은 모두 창고 속에 처박아 버린 채, 캔디스는 정처없이 뉴욕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완전히 고립된 캔디스에게 조너선이라는 연결고리가 생기는가 싶었지만, 선 열병이 뉴욕을 집어삼키기 직전 조너선과도 헤어진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이라곤 머그컵 안에 든 교정유지장치 뿐. 만약 선 열병을 촉발시키는 게 곰팡이 포자 뿐만 아니라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강한 향수라면, 캔디스 만큼 선 열병에 걸리기 어려운 사람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슬픈 이야기이다. 선 열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건, 기억으로부터, 아니 기억이 불러오는 강한 향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자신을 뒤흔들만 한, 따뜻하면서도 가슴 깊이 울렁이는, 그런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의미니까. 아니면 적어도 그런 기억상자를 열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속 깊은 곳에 그 기억상자를 묻어버렸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괴롭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있을 때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평화로운 내면을 경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반복되고 익숙한 루틴이 주는 평안함 속에서, 그들의 향수가 촉발시킨 그리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을 테니까.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카고로 간 캔디스는 결국 선 열병에 걸렸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미국 그 어느 지역에도 강렬한 어릴적 향수를 남기지 못한 캔디스는 소설 후반부 조나선의 기억을 제 기억처럼 체화한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기억을 자신의 것이라 스스로 믿어버린 것처럼. 조나선이 시카고에 대해 느꼈던 강렬한 애착과 그리움, 평안한 감정 등등을 캔디스도 곧 느끼게 되겠지. 그리고 그것은 캔디스에게 이미 내재된 선 열병의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지난해부터 조너선은 뉴욕에서의 삶에 부쩍 강한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 뉴욕이라는 빌어먹을 도시, 진정성이라고는 없이 허울뿐인 데다가 실체 없는 매력으로 사람을 홀리는 지루하고 답답한 도시 등등 운운하며 끝도 없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조너선이 보기에 모든 것이 시눕ㄴ의 상징이었고 모든 일에 과도한 비용이 들었다.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소비자도, 유행하는 디저트니 겉치장만 요란한 미술 전시회니 새로운 콘셉트 스토어니 하는 것들을 경험하겠다고 블록마다 긴 대기 줄을 마다하지 않고 서 있는 소비자도 지나치게 많았다. 우리는 전부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그러니까 나도 포함된 우리. - P21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회사원 생활을 유지하면서 달빛이 고와너스 지역을 물들일 때마다 카메라로 사진이나 찍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그런 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처럼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며 사는 사람이었다. - P21

그렇다면 가족의 소유물이 남아 있는 창고에 가 보게 되려나. 그런데 그곳은 그저 차디찬 상자 모양의 보관 시설일 뿐이다. 언젠가 솔트레이크시티 근처에 가닿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마 계속 가던 길을 갈 것이다. 추억을 회상한다는 것은 몹시도 우울하고, 영혼이 산산조각 날 만큼 몹시도 슬픈 일이다. 과거는 일종의 블랙홀로, 현재로 침투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상처를 남기며 과거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 P198

나는 위아래가 거꾸로 된 애슐리의 눈을 쳐다보았다. 애슐리는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나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동공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눈빛은 뭐랄까, 누군가가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거나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을 때의 눈빛과 가장 흡사하다. - P211

시카고에서는 밀워키 길에 있는 빨래방 위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조너선이 말했다. 도심으로 나갈 때면 아파트 바로 앞 정류장에 서는 56번 버스를 탔다고 했다. 이따금 그저 출퇴근만 하면서 한 거리 위만 오가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평일 밤과 주말에는 글을 쓰고 평일 아침이 오면 출근을 하며 지냈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책상에서 일어나 그길로 일터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 P227

타임스스퀘어에 모인 군중이 나를 맞이했다. 뉴욕은 정말 대도시였다. 뉴욕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선택지는 저녁 식사 자리의 앙트레와 칵테일, 나이트클럽에서 내는 봉사료처럼 무언가를 소비하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었다. 길거리 곳곳의 대형 체인 매장들도 묵직하게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화려한 조명으로 쇼핑을 부추겼다. 의류제조업체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몇 블록 정도 되는 크기로 규모가 줄어든 가먼트 지구에서는 도매상점들이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수입한 작물과 장신구들을 판매했다. - P259

루이팡이 입은 남색 셔츠 드레스는 푸저우에서라면 세련돼 보였을 옷이었지만, 데님 미니 스커트와 어깨끈이 가느다란 드레스를 입은 무리 속에 있으니 지극히도 보수적인 차림새로 보였다.
영어가 유창했더라면, 수줍어하며 머뭇거리는 태도를 극복할 수 있었더라면 루이팡은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꺼이 털어놓았을 터였다. 푸저우에 살 때 공인 회계사로 일했다는 얘기도, 담당 고객 중에 다양한 지자체 공무원들이 있었다는 얘기도 했을 것이었다. 여동생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시골로 쫓겨나 수년간 단순 노동을 해야 했단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자신은 푸저우에 남았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했다는 얘기도. - P282

난 너 같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단,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난 널 너무 잘 알아. 넌 이상주의자처럼 사는 사람이지.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잖아. 일정한 수입도, 의료보험도 없으면서, 툭하면 일도 그만두고 넌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볼 때 넌 철두철미하게 자린고비처럼 아끼고 아껴가며 볼품없고 값싼 삶을 살고 있을 뿐이고 그런 삶 역시 자유는 아니야. 넌 외접원을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어. 불법 복제 영화를 보고 1달러짜리 조각 피자를 먹으면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 그 변두리만 돌고 도는 거지. 예전에는 열정적으로 자기 신념을 붙들고 사는 너를 - 고결하다고 생각했고 - 동경했었지만, 그런 네 삶의 방식을 5년간 지켜보면서 난 조금 바뀌었어. 이 세상에서는 돈이 자유야. 이탈하는 건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야. - P335

나는 언제나 뉴욕의 현실보다 뉴욕의 신화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인간이었다. 뉴욕에 그렇게나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도 어떤 것의 본질보다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더 사랑해서였다. - P416

블로그 독자들이 남긴 요청을 나는 내가 주어진 임무로 삼았다.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그 결과를 블로그에 게시했다. 요청 사항을 지역별로 분류한 다음 임무 수행 일정을 계획했다. 그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날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었다. - P417

어쩌면 오늘이 계약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잠재의식이 나를 밖으로 끌어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더 이상 스펙트라와 맺은 계약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게 과연 중요하기는 한 걸까? 아빠는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일은 그 자체가 보상이란다.‘ 일은 그 자체로 위안이기도 했다. - P440

캔디스 씨는 젊어요, 마이클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어쩌면 캔디스 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단지……나는 당황한 나머지 쩔쩔매며 적절한 말을 떠올려 보려 했다. 저는 단지 제 삶의 폭이 이렇게 순식간에 좁아 드는 게 내키지 않아서요. 일 자체는 괜찮습니다만, 여기에 평생 몸담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P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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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thian Tales 어션 테일즈 No.1 - alone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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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국 SF의 미래를 물어본다면 어션테일즈를 읽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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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나의 세계
뫼비우스 지음, 장한라 옮김 / 교양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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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세계, 결말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상당히 두껍고 무거움. 무기로 써도 될 거 같다. 그리고 담긴 내용은 책의 물리적인 무게보다 더 무겁고 심오하다. 


SF라는 장르를 빌려와 인간의 정신세계를 깊게 탐구한 작품. 책 중후반부로 가면 꿈과 환상 그리고 현실이 뒤섞여 전개되면서 마치 인셉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니겠지?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르겠는 상태로 한데 엉켜 끝까지 굴러가다 보면 결국 이 모든 세계가 뫼비우스 마냥 얽혀있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나도 내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태야말로 이 책에 걸맞는 후기가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명의 코쟁이들이다. 코쟁이...귀여웠어. 특히 스텔이 우주선 고치다가 그대로 도망가 버린 줄 알고 황무지 한가운데서  셋이 당황하는 모습은 이 책에서 얼마 없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에데나의 세계는 마치 작가의 생각과 영감의 파편들을 도토리 모으듯이 박박 모아놓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책이다.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수월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글을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번만 읽을 책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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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왜 아무 이유없이 우울할까? - 장속 세균만 다스려도 기분은 저절로 좋아진다
가브리엘 페를뮈테르 지음, 김도연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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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의지란


제목만 보면 얼핏 심리학 내용인가 싶지만 이 책은 과학 서적이다. 정확히는 장내 세균이 사람의 뇌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한 책. 챕터도 짧게 끝나고 아무래도 내용이 내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보니 술술 읽힌다. 사실 이 책이 그저그런 위로를 건네는 심리학 책이었다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 부제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 속 세균만 다스려도 기분은 저절로 좋아진다!"


저자인 의사가 겪은 환자들의 예시와 생소한 용어들, 상세하면서도 상상가능한 설명들이 아우러져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결국 이거다. 


"건강한 장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책을 읽다보면 장 속 세균의 놀라운 역할에 놀라움을 거듭하게 된다. 장내 세균들은 장에서만 그 역할을 다할 뿐 아니라 정교하고도 유기적으로 얽힌 우리 몸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뇌도 포함해서 말이다. 작년부터 몸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바람에 (인체의 내구성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건강에 신경쓰게 되었는데, 내가 뭘 먹는지가 생각보다 무척 중요한 것 같군... 사실 난 맥날 감튀와 노브랜드 시그니처버거 그리고 노브랜드 고구마맛탕맛 나는 감자튀김을 진짜 사랑한다...정기적으로 섭취해줘야 하는데 . . .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대체할게. 서브웨이는.. 역시나 가공육이 들었지만 그래도 햄버거보다는 야채도 많이 들고 건강한 느낌이니까. 그래도 빈도수를 줄여야겠군...



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심리적 이유 상당부분이 장내 미생물총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자유의지란게 있긴 있는건가. 약간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스스로의 결함과 부족을 알아채고 스스로 수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신은 단지 영혼이나 마음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기분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같이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에 좌우된다. - P34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음식 또한 신경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가장 제거하기 쉬운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74

쥐에게 정크푸드를 먹이는 것만으로도 쥐를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과도한 당분과 질 낮은 지방은 쥐를 살찌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크푸드는 균형 잡힌 식단과 다르게 불안감을 유발했다. - P78

또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서 때때로 나타나는 분노 행동도 보였다. 더군다나 낮 어느 때든 시간대와 상관없이 설탕을 찾았으며 심지어는 밤에도 설탕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중략)
하산과 홀저는 정크푸드와 우울감의 연관성을 밝힌 후에도 햄버거, 피자, 탄산음료 등이 우울 증세를 유발하는 생리 기전을 찾아내며 다음과 같이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나갔다. - P80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남성이나 여성의 대변을 쥐들에게 이식하자, 이 쥐들은 새로운 미생물총에 빠르게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울증에 걸렸다. 즉 세균과 우리의 감정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이다. - P83

지금 유럽과 미국 사회는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하고 너무 빨리 약을 삼켜버리는 이른바 항우울제 과소비로 고통받고 있다. - P110

그저 소화 세균과 간이 분비하는 담즙이 중독 문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규명함으로써 현실적인 중독치료의 실마리를 제공하려는 데 있다.
(중략)
우리가 의존증에 걸리는 것은 간 때문이기도 하다. 간은 미생물총이 변화시킨 담즙을 다시 사용해 각 조직에 담즙을 배분하고 영양소를 줌과 동시에 뇌에도 작용한다. - P123

분변 이식을 통해 쥐들에게 세균을 주입해 몸속에 미생물총을 만들어놓자, 쥐들은 모든 생명체가 살고자 하는 표현인 공포심과 경계심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중략)
미생물총을 변경함으로써 뇌가 외부 자극에 가장 약한 반응을 보이도록 만든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할 수도 있다. - P144

따라서 장에 서식하는 대장균이나 이와 유사한 소화 세균들이 먹는 만찬은 우리가 먹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포만감을 유발하는 특정한 매커니즘을 통해 분비되는 소화액을 가리킨다. 이 매커니즘은 음식을 한 입 먹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다시 말해 음식에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갖다 대기도 전에 소화액이 분비된다. - P212

오히려 이 연구와 관찰 등을 통해 장내 미생물이 소화기관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와 신경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 P257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중증 증상이 아닌 이상에 세균은 장내에 갇혀 있지만 이들이 분비하는 대사산물, 세균의 DNA 조각, 소화관 세포가 세균의 영향을 받아 생산하는 호르몬들이 몸속을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세균은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 몸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 P260

이를테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가 위궤양과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만 알려졌지, 성인의 천식 발생률을 절반가량으로 낮춰주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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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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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청춘이 성숙해 진다는 것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에도 만나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고등학생 때 만났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대학생 때 만났더라면 내 인생에 '젊은 베르터의 슬픔' 만큼이나 강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 되었을 텐데.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 구구절절 공감하기에는 이미 내 정신은 사회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일부는 닳고 일부는 닮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든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그처럼 방황하던 시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며 그 잔해가 아직도 내 영혼 어딘가에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여전히 사회생활 4년차의 눈에 홀든 콜필드의 영혼은 순수한 만큼 유치하고 어리석은 구석이 많이 보인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가식과 위선의 세계에 혐오와 동시에 우울함을 느끼는 콜필드. 하지만 그 자신이 그런 '복에 겨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제 부모의 가식과 위선 덕분이다. 순수한 영혼의 방황이라는 꺼풀을 한 겹 걷어내면 그곳엔 부모가 번 돈을 물쓰듯하며 어설프게 성인의 행동을 흉내내는, 전전두엽 발달이 덜 된 부잣집 도련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홀든이 우울함을 느끼며 방황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우리가 받는 교육은 사회를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사회와 괴리되어 있다. 글로 접하는 사회는 수학 공식마냥 명쾌하고 흑백과같이 뚜렷하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회에서 산다는 것, 성인이 되어 제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희뿌연 회색지대에서 모호한 선과 악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와중에 내 삶의 가치들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발버둥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제 막 사회에 눈을 뜬 홀든 -아마 그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또래보다 더 일찍 눈을 뜬 것이라고 보인다-의 눈에는 이회색으로 가득 찬 사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저 스스로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스스로에 대한 가식과 위선을 느꼈으리라고도 생각된다. 끊임없이 우울함 속에 허우적대는 이유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런 자각들도 한몫 했을 것이다. 


참 웃긴 점은 사회에 대해 염증을 느낀 홀든이 대책없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곳으로 떠나려던 때, 제 어린 여동생 피비가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하자 갑자기 안된다며 화를 냈다는 점이다. 이얘기는, 자기도 머릿속 한 구석에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 정말이지 미래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행동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아, 결국 미성숙자의 치기어린 불평불만과 성숙자의 고뇌를 구분짓는 건 역지사지인걸까? 아니면 이해력? 홀든은 생각이란걸 하는 인간은 한번은 거쳐가는 그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게 꼴불견이 되지 않기 위해선 내가 '특별해서' 이런 성장통을 겪는 게 아니라 그저 남들과 같은 전전두엽 성장루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아아 세상은 너무 가식과 모순 덩어리야, 순수한 영혼인 나는 이런 세상을 못 견디겠어- 이 엉터리 인간들, 구역질 나-' 에서 성장이 멈춰버린다면 그저 몹시 꼴불견이고 재수없는 인간1 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개꼴불견 인간들이 몹시도 많다. 더 꼴사나운 점은 이런 꼴불견 인간들은 사회로부터 배척당할 수록 저 스스로를 더욱 특별하게 생각해서 더러운 세상에 타협하지 못하는 나-에 더 깊숙이 빠져든다는 점이다. 아 벌써 몇 명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그러지 말자 제발. 우리 모두 이런 자기애 넘치는 꼴불견 자아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그저 그것을 밖으로 티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티내지 않는다고 상대방까지 이런 삶에 대한 고뇌를 안한다고, 아니면 한 적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제 스스로 세계를 보는 시야가 협소한 멍청이라는 방증일 뿐이다. 사실 우리 모두 그저그런 인간들 중의 한 명이다. 나 스스로는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타인의 눈으로 날 보았을 땐 내가 타인을 볼 때만큼이나 보잘것없는 영혼1인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사유가 가능한 것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탁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니다. 이 길이 쉬웠다면 저렇게 수많은 꼴불견자가 탄생하지 않았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은 홀든이 눈을 뜨고 고뇌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왜냐면 이 사회에 너무나도 순응을 잘 한 나머지 저런 고뇌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찌되었든간에 부디, 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감명받은, 그리고 앞으로 감명받을 수많은 영혼들이 제발 독단적 나르시스트의 길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ps.

밑줄긋기 하다가 덧붙임. 자꾸만 조바심내며 떠나려는 홀든은 어쩌면 은연중에 자기 자신이 곧 사회와 동화되어 버리고 자신이 지금 하는 고민들이 더이상 고민이 아니게 될 거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지금 당장 자꾸만 떠나려고 했던 거 아닐까.


내가 그렇게 욕을 해대면, 그 자식은 아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봐, 콜필드. 그럼, 내가 도둑이라는 거냐?」 그러면 나는 「그래, 그렇다. 이 지저분한 도둑놈아!」라고 말하는 대신,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네 덧신에서 내 장갑이 나왔다구」라고 말할 것이다. - P122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결국 나는 슬래글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내 가방을 내려 침대 밑에 넣어두었다. 그때 그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한 것이다. 다음 날 내 가방을 침대 밑에서 다시 꺼내,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녀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 가방이 자기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놈은 정말 그랬다. 그렇게 웃기는 녀석이었다. - P147

처음에는 그가 내 물건들을 가지고 부르주아라고 말했을 때는 그저 장난이었다. 그래서 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사실, 약간은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더 이상은 농담이 아니었다. 같이 방을 쓰는 친구의 것보다 내 가방이 훨씬 고급일 경우에는 사이 좋게 지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정말 똑똑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가방이 더 고급인지 따위에 신경 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스트라드레이터같이 바보 같은 자식과 방을 같이 쓰게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 자식의 가방은 내 것만큼 고급이었기 때문이다. - P148

두 사람은 아침식사로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있었다. 그걸 보자 나는 우울해졌다. 내가 베이컨이나 달걀 같은 것을 먹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토스트와 커피 밖에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 P149

「싫다는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샐리가 말했다. 난 그 애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할 시간은 앞으로 있을 거야. 자기가 대학에 가고 나서도 얼마든지 말이야. 그런 다음에 우리도 결혼할 수도 있고. 좋은 곳에 얼마든지 갈 수 있어. 자긴 그저 ... ...」
「아니. 그렇지 않아. 갈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는 건 아니라구. 모든 게 변할 테니까 」난 다시 우울해지고 있었다. - P178

작년에 샐리 헤이즈와 이 공연을 봤는데, 그녀는 무대 의상이니, 장식 같은 것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계속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이런 야단스러운 옷 같은 걸 직접 보게 된다면, 구역질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을 듣고 그녀는 나보고 신을 모독하는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런걸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정말로 좋아할 만한 사람은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북을 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음악 한 곡에서 북을 칠 일이란 단지 두 번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은 북을 치지 않고 있을 때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북을 치는 순간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멋지고, 훌륭하게 북을 두드리는 것이다. - P184

이런 엉터리 같은 영화를 보고 눈물이나 흘리는 인간들은 열에 아홉은 나쁜 놈이기 마련이다. 농담이 아니다. - P187

「그녀한테 안부를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놈의 웨이터가 내 말을 전해줬는지 좀 물어봐 줄 수 있겠어요?」
「집에나 들어가라구. 도대체 몇 살이야?」
「여든여섯 살. 이봐요. 꼭 그여자한테 안부 좀 전해줘요. 알았죠?」 - P203

「그 조각들 이리 줘. 내가 가지고 있을래」그 애는 내 손에서 레코드 조각들을 받아가서는 침대 옆에 있던 작은 탁자 서랍에 넣는 것이었다. 동새은 나를 늘 감격하게 만든다. - P218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P248

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 비슷한 선생들 과목에서 합격을 하고 나면, 그런 지식들에 진정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될 거다. 물론 네가 원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경우에만 말이지만. 먼저 인간들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그걸 깨닫게 되면 넌 흥분하게 될 거고, 자극받게 될 거야.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 P249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어?」
「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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