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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저번 연수원 갔을 때 첫 페이지를 읽었었는데 중반에 흥미가 떨어져서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늘 카페에 오면서도 생각을 했지만 나는 약간 금방 싫증을 내서 여태까지 읽다가 중간에 멈춘 책들이 몇 권 된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Jules가 자신이 산 책 목록을 보내주었고 그 사이에 이 책이 끼어 있는것을 발견한 걸 계기로 다시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오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 내용 자체가 그렇게 흥미롭진 못했다. Jules 와도 잠깐 한 얘기이지만 책 내용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엔 이미 나는 Jules 와 일상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의 배가 되는 시간동안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그동안의 나의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고 조금더 구체화하며 죽음과 연계된 다양한 사실들을 접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싶다. 아래는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된 책 내용 일부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연명치료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바 있었다. 가톨릭병원에 입원 후에 의사들에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미 신을 만나러 갈 준비가 다 되었고, 하느님을 만나는 게 기쁠 뿐이다. 그러니 내가 혹시 쓰러지더라도 애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께서 실제로 폐렴 때문에 호흡이 딱 멈춘 순간 가톨릭병원 의사들은 반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숨이 멈춘 순간 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게 된다. 그렇게 추기경께서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깨어나셨고, "고맙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이제 안 해도 된다. 나는 하느님께 갈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 같은 태도야 말로 저자가 책 말미에서 말한 '품위있는 죽음' 아닐까?
죽음이 두렵지 않은 상태의 죽음...참으로 절묘하게도 오늘 Jules 와 통화 중 우린 왜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하냐고 지겨워 죽겠다고 말했었는데 그 이유를, 그 잊고 있었던 이유를 책 말미에서 깨달았다. 나는 죽기 직전 '그때 ... 할걸...' 하며 후회에 점철된 끝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고자 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가 남는 내 마지막을 위해. 요근래 무기력함에 그 이유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다.
...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소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런 후 대척점에 있는 삶을 치열하게 끌어안은 인생을 산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한 사람만이 삶의 마지막 과정에서 자신이 존엄하게 어떤 방식으로 사망할지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내러티브로 인생이라는 마지막 장을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늘 죽음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유한한 삶에 감사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짐가 죽음의 과정에서 선택할 여유를 갖게 된다. 이러한 죽음이 곧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닐까...
고독하고 외로웠던 수험생활 중,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예전 인턴했을 때 보았던 환자들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내가 (병에) 걸릴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 거의 모든 환자가 하는 말이었고 아마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이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일 것이다. 심지어 나까지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죽는데 내가 죽을 줄 몰랐다는 사실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낙타가 모래밭에 머리를 묻는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는 매일처럼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자다가 숨을 거두고 싶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수목장을 했으면 좋겠다. 엄마도 자신이 죽으면 수목장을 해 달라고 했다. 구체적인 품종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내가 죽으면 내 뼛가루는 바다에 뿌려줬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왠지 그건 너무 춥고 외로울 것 같다. 그래서 땅에 붙어있는 쪽을 택했다.
이러저러한 일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죽음이란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 생각은 일상을 살가는데 꽤나 유용한데,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내 삶에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좀 더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자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가족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내 일상에 좀더 충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죽음이 항상 나의 곁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대책없이 미래를 낙관하기 보다는 현실에 좀더 충실하게 된다. 죽음과 좀 더 나아가 사고나 불행 등의 질병은 언제나 내 앞에 들이닥칠 수 있다. 그것들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무엇일까? 이런 생각 끝에는 항상 현실에 감사한 마음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야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내가 끊임 없이 책을 읽고 사유를 갈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내 앞에 닥쳤을 때, 결국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최대한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나에게 닥친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 스스로가 괴로운 감정을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더 자주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나 또한 십분 동의하는 바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행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휩쓸려 보내기엔 삶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소중한 것이다.
Memento Mori!
-더 읽어볼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 (Atul Gawa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