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02.17. 아마도 잊지 못할 제주도에서 읽음.
개인주의자 선언.
침대에 굴러다니고 있는 이 책을 보더니 어머니께서 한말씀 하셨다. '이런 책'좀 그만 보라고-.
'이런 책'이라는 표현에서 비치는 다소간의 못마땅함과 우려야말로 이전세대의 집단주의자들이 현대의 개인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아닐까. 하하.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일지 몰라도, 나는 어쩔 수 없는 개인주의자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사회의 거대한 흐름 아닐까 싶다. 난 작가가 책에서 그 자신을 표현했던 것과 같이, 회식자리에서 술을 안 먹는 것보다 주목받는게 더 싫어 억지로 먹는, 그런 소극적 개인주의자다.
소극적 개인주의자의 입장에서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은 정말 구절구절 밑줄을 치고 싶을 만큼 공감가는 내용 투성이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재밌고 웃길 수가 있나.
오늘도 직장에서 느꼈지만 나는 사람이 싫다. 아니 좋으면서도 싫다. 아니 싫으면서도 좋은 건가?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기에 같은 인간의 온기는 어느정도 필요로 하면서도 어느 순간 타인이 내 공간에 한 발 들여놓으면 흠칫 놀라서 두 발 물러서는 그런 인간이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크면서 그렇게 변했다. 사람 대하는게 피곤하고, 기빨리고. 남들이야 어쩌건말건 그냥 나 혼자 내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그런 인간으로 컸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주의자의 일원으로서 변명을 하나 해보자면, 그래도 싹퉁머리 없고 지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되진 않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책의 마무리 부분이 참 와닿는다.
Anyone can be cynical
Dare to be an optimist
실제로 하는 일은 없으면서 불평만 하고, 소위 평가질만 하는 사람을 볼테면 항상 들던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해결책을 제시해봐. 그래서 네 주장은 뭔데? 뭘 하자는 건데? 그런 인간들의 공통점은 해결책 없이 그저 불평불만만 구구절절 뻐기면서(이부분이 중요하다. 자신이 불평할 줄 아는 영장류라는 데에서 벅찬 우월감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어떤 것에 대해 평가하고 깎아내리는 건 쉽지만 그것을 쌓아올리는 것은 어렵다. 이런 면에서 문유석 작가의 표현이 넘 웃기고 통쾌하다.
(중략)...노력이라도 해보려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그것도 하지 않는 비루한 자신을 위안한다. 어짜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다 쇼일 뿐이라며
책과는 상관없는 내용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약간 다르다. 사람은 혼자 있을때 내면으로 침잠하고 사유한다. 그러나 여러명이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각성상태에 접어들어 생각이 급히 짧아지고 어떠한 동물적 단순함에 생각이 매몰되는 것 같다. 집단주의에 돌아버려서 뭐만 하면 단체행동을 하려는 직장내 인간들(특히 40 50 대 아저씨들..)을 보고있자면 '멋진신세계' 속 인간상이 떠오르곤 한다. 소설속에서는 인간들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그들이 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사유하지 못하도록 항상 집단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혼자 있으면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벌어진 양 취급하고 항상 집단에 속해있도록 강제한다. 마치 현대 사회의 모습같다. 우리는 직접 육체적으로 집단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손안의 핸드폰 덕분에, sns라는 것 덕분에 거의 매 순간 하루종일 집단과 동화상태에 있다. 아니 오히려 sns 때문에 구시대적 집단주의로부터 탈피한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더 편향적이고 흑백논리가 난무하는 온라인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좀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 구시대적이든 온라인이든 집단주의와는 이별을 고할 때도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