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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02.19. 잔잔한 경악 속에서 어찌저찌 끝까지 읽음
이해가 갈듯 말듯한 채식주의자를 지나 충격과 경악의 연속이었던 몽고반점, 정신적으로 피로해 사흘 정도 쉬었다가 읽어내려간 나무불꽃은 담담히 가라앉아 삶의 지친 무게를 찬찬히 짚어보는 길이었다. 나에게 가장 많은 위로를 건넨 것은 '나무불꽃'이었다. 아 솔직히 '몽고반점'은 내용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이라 읽으면서도 너무 피로했다. 그런데 한 사흘 쉬고 나니 마치 인혜가 다시금 기억을 회상하며 느꼈던 감정처럼 뭐 좀 무뎌졌다고 해야되나 덤덤해졌다고 해야되나.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채식주의자'부터 찬찬히 되짚어 보자면 영혜는 어느 순간 문득 착취자의 입장에 선 자신을 깨닫고 스스로를 부인해 버린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면서, 그렇게 꾹꾹 자신의 마음을 속으로 쌓고 인내하고 견뎌내다가,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징그럽고 잇속에 밝은 남편을 만나고, 또 그때까지 살아왔던 것 처럼 삶을 인내하고 견뎌왔겠지.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저 이렇게 견디고 숨죽이고 고분고분 살아오는 것만이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다 문득 제 지나온 궤적을 인식하게 되고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의식중에 꿈속에서 고깃덩어리로, 피로 나타나게 된 것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남편에게 철저히 맞춘 삶을 살면서, 자신 스스로가 고깃덩어리라고 느껴진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순간 냉장고에 가득 쟁여둔 실제 고깃덩어리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더이상 그것들을 먹을 수 없었겠지. 아마 자신의 모습이 동일시 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러나 그런 순종적인 삶의 형태는 일순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타인에게 순종하고 내 목줄을 남에게 맡긴 채로 사는 게 오히려 외롭게 두발로 서서 인생을 맞는 것보다 더 마음이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특히 여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그런 삶에 대한 유혹이 육식을 향한 욕망과 혀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침으로 분출된다. 육식을 끊었지만 평생 육식을 해온자, 그래서 고기의 그 달콤한 맛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자의 고통...그 욕망에 고통스럽게 번뇌하는 그 모습이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장면 아닐까.
몽고반점.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짜피 사회의 규범따위 인간이 세운 규칙인데 좀 어겨서 뭐 어쩌냐 싶은. 제사상 홍동백서와 다를 점이 뭐냔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버텨내기만 하다가 파국을 맞이한 커플.. 이렇게 말하니 더없이 가벼워 보인다. 처음에 그 예술가행세하는놈이(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나오지 않았던가?) 제 아내를 숨막혀했을때 정말 복에 겨워 똥을싸는, 정말 감사할줄 모르는 고오약한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더 읽다보니, 저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견뎌내는 아내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잡아내고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싶다. 꽃그림..나비가 꽃에 끌리듯 그도 점점 식물이 되어가는 영혜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갖 날개달린 것들을 가슴에 담았고 특히나 나비를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내 느낌상 그렇다) 몸에 꽃 그림을 그려준다는 그의 제안은 영혜에게 정말 가뭄 속 빗줄기 같은 제안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바라마지않는 식물의 삶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 둘이 몸을 섞을 때도 영혜는 행복했을 것이다. 진정한 식물이 된 것 같은 기분..그런걸 느꼈겠지..
나무불꽃.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은 결핍 상태에 있을 때 더 창조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 결핍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더 예민하고 풍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딘가 지나가는 말로 철학자는 고난?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던 것도 같다. 고통과 우울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지난한 삶에 대한 지침 속에 허덕였던 기억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는 조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싶지 않다.
사실 난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를 다음 구절 때문에 좋아했다.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삶은 참 지난하고 지치는 것이다. 가끔 보면 삶은 견뎌내는 것 그 자체같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것...
요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평온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인혜의 사고가 절절히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힘겨운 삶의 문짝이라도 두들겨 본 기억 때문에 '나무불꽃'은 약간의 허무함과 무상함 그리고 다소간의 울분을 내게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