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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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터넷 강국이다. 초고속 인터넷 연결망이 각 가정과 사회전반에 연결되어 이를 바탕으로 가상공간을 통한 다양한 인간관계, 이득창출 그리고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근래에 네티즌 사이에 속칭 '싸이질'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한 인터넷회사가 만든 싸이월드라는 사이트는 개인이 가입하여 자신만의 미니홈페이지를 꾸미고 서로의 홈을 방문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가상공간 속에서 맺어간다. 사용자들은 매일 자신의 방명록을 확인하며 방문자들을 다시 찾아가 글을 남기면서 가상적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많은 사진과 다양한 글을 올림으로써 인기도를 높이려 노력한다. 재밌는 것은 이 싸이월드라는 가상공간에서 꾸며지는 미니홈이 그 형식에 있어서는 가입자 모두에게 똑같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미니룸과 구별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각각 미니룸을 꾸미는 사람이 다르듯이 사진첩의 사진이 다르고 게시판의 글이 다르고 미니룸의 색상과 각종 아바타물이 타인과 구별된다는 것 밖에 구조적인 형식은 모든 사용자들에게 동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트의 미니룸에 올라가는 사진은 사용자의 모습을 원본으로 하여 사진기로 자기 자신의 원본을 복제한 사진을 다시 복제하여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올리게 되는데 실제 싸이월드라는 가상공간을 이루는 것들은 사진을 비롯하여 복제의 복제품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시뮬라크르'이다. 그리고 이런 시뮬라크르를 구성하는 즉 복제의 복제를 새로운 형식의 틀에 짜 맞추어 엄청난 개수의 미니룸을 관리하는 사이트 자체의 구조를 '시뮬라시옹'이라 할 수 있겠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 두 단어가 가지는 다양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들과 그에 따른 해석이 탈근대 미학을 소개하는 미학 오디세이 3을 이루는 거대한 테마이다.


미학 오디세이 3은 이전에 출판되었던 미학 오디세이 1,2권에 연결되어 현대의 탈근대 미학을 해석하는 미학 오디세이 최종편이다. 1권과 2권이 인류역사시대 이전부터 근대까지의 미학적 여행이었다면 3권은 지금 현대의 미학을 정의하고 있다. 중세까지 예술의 역할이 현실의 재현과 재인식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근대까지의 미학은 인간중심의 예술과 다양한 형태로 진리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의 거대한 담론인 가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은 아직도 확실히 정의되고 있지 않지만 예술이라는 가상의 놀이에서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한다는 일차적인 미학의 개념을 현대에서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존에 생각하던 가상과 현실의 관계는 근래에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근대 미학이 의미 있는 것은 시대의 사조에 맞추어 다양한 인간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예술가 나름의 방법으로 진리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현대에 들어서서는 이전의 예술보다 훨씬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졌다. 이는 회화나 조각 등의 제한된 예술양식이 대부분이었던 예전보다 다양한 표현매체가 발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현실을 재현하든 아니면 진리를 추구하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형식적인 도구의 진일보는 그만큼 예술작품의 해석에 따르는 어려움을 동반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 중 가장 먼저 예술계를 강타한 것이 사진기술이다. 사진은 고전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던 회화를 몰락시켰다. 회화는 더 이상 사진만큼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없다. 사진 외에도 고전적인 예술 형식을 파괴시킨 많은 미디어매체와 도구들은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기존의 체계들이 전복되고 새로운 문명과 그에 따른 진보적인 기계들,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사상들은 20세기 초 예술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 작가들은 급속한 변화에 의해 사라져가고 또 새롭게 다가오며 다시 또 다른 새로움으로 쉴 새 없이 바뀌는 현실을 '절대주의'라는 작품세계로 표현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시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고....... 현실세계의 이러한 반복에서 그들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말레비치의 그림을 보라. 거기엔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 아니면 검은 원, 검은 사각형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현대의 세계는 그렇게 비가시적인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절대주의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뉴먼의 작품과 연결된다. 캠퍼스에 오직 단색의 바탕색과 수직의 선하나....... 언뜻 보기에 그냥 수직선 하나지만 이 선은 절대주의적 상징인 신과 땅위에 발을 대고 서있는 하찮은 인간과의 조우를 가능케 하는 사다리이다. 즉 인간이 신과 교접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천상이 계단이다. 수직의 선 하나만이 존재하는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이렇게 신까지 모셔와야하는 것이 바로 현대 예술의 특징이다. 현대를 더 이상 예술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시대로 해석한다면 블랙홀과 같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절대주의나 혹은 뉴먼의 새로운 숭고미학은 탈근대 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판화가 피라네시가 표현했던 상상속의 감옥과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건축물을 나타낸 판화에서 작금의 가상 사이버세상이 오버랩 되는 것은 그만큼 피라네시의 표현력과 직관력이 날카로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묘한 트릭을 통한 피라네시의 판화 속 건축물들은 2차원적인 평면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건축구조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원형의 교란은 바로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의 감옥에서 시뮬라크르로 채워진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블랙홀과 같은 절대주의적 표현방법과 단순한 수직선으로 숭고미를 표현한 뉴먼은 그나마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예술가들이다.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있다. 공장에서 방금 생산된 변기 하나를 전시실에 옮겨다 놓은 작품이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그냥 종이상자 너덧 개를 전시실에 쌓아 올려놓은 작품이다. 시뮬라크르로 뒤덮인 이 세상의 현실을 뒤샹과 워홀은 말레비치나 뉴먼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증언한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물질문명을 기반으로한 기술복제사회이다. 미디어의 폭발적인 발전과 보급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창조해기에 이르렀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지고 미디어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세상은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시뮬라크르의 세상에서 예술이 가야 할 길은 더욱 험난해졌고 예술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말레비치나 뉴먼보다 뒤샹과 워홀의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한 복제의 복제품인 시뮬라크로로 현실을 표현했던 뒤샹과 워홀의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제 더 이상의 예술 행위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근대예술의 종언을 헤겔이 선언한바 있었지만 이를 비웃듯이 20세기 초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차이의 미학으로 예술의 지평을 열었었다. 하지만 가상이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닌 나아가 현실이 가상을 재현하는 지금 예술은 워홀과 뒤샹을 마지막으로 종말을 맞이했을까?...... 개인적으로 예술의 종언을 쉽사리 인정하기는 꺼림칙하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발표되는 예술품들은 워홀과 뒤샹을 예술을 복제한 복제품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처럼 예술계가 무한 증식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역사 속에서 미학은 이러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었다. 워홀과 뒤샹의 뒤를 이어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예술가는 분명 다시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것도 동일자의 영겁회귀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미학뿐만 아니라 많은 측면에서 미로에 빠져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 '바벨의 도서관'에서 끊임없이 절대적인 한 권의 책을 찾아 미로처럼 복잡한 거대한 도서관을 헤매고 다니듯이 우리는 미학에서도 그랬지만 고도로 발전된 도시문명, 너무도 다양해진 인식과 사고의 틀, 그리고 각종 이데올로기, 매일 엄청난 양으로 우리에게 접해지는 가상공간에서의 다양한 정보들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현재 우리는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된다면 우린 이 다양한 미로의 존재조차 망각하며 살게 된다. 거대한 시뮬라시옹 속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미학이 존재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미학 오디세이 3라는 책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미로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매우 복잡한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대단한 발견의 기쁨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미로 속에 있는지 조차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이제 책을 통해 미로를 확인했으니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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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테 콜비츠
캐테 콜비츠 지음, 전옥례 옮김 / 운디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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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캐테콜비츠의 일기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물론 그녀의 작품에 대한 해설도 첨가되어 있지만 주된 내용은 인간 캐테를 중심으로 가족과 그녀의 작업, 그리고 그녀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분류하여 구성한 그녀의 일기이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진보적인 외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캐테는 오빠 콘라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기를 보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대부분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콘라드 또한 사회주의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오빠의 영향은 바리케이트 뒤에서 총알을 장전하여 투쟁하는 오빠를 돕는 자신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캐테를 만들게 된다. 게다가 노동자집단거주지에서 의사활동을 하던 남편 칼과의 결혼에서 캐테의 예술 지표는 노동자 계급으로 대변되는 프롤레타리아들과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빈곤과 궁핍속에서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당하며 자본의 억압을 겨우 견디면서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 속에서 캐테는 자신이 추구할 예술활동의 커다란 줄기를 잡아가게 된다.

캐테가 선택한 예술적 장르는 판화였다. 판화는 여타 다른 회화장르보다 간결하고 단순하며 명료한 것이 특징이다. 판화는 현란한 색감과 풍부한 선 그리고 다양한 해석을 동반하는 구도와 거리가 멀다. 명쾌한 선을 중심으로 흑백으로 양분되는 단순성은 보는 이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남긴다. 이러한 판화의 특징들로 인해 판화는 혁명에 있어서 대표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귀족적이라 볼 수 있는 회화들과는 달리 판화는 캐테가 매력을 느끼는 프롤레타리아들의 삶을 가장 적절히 표현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초기 그녀의 작품들인 『직조공 봉기』,『농민전쟁』등에서 볼 수 있는 강한 선들과 암울한 흑백의 조화에서 판화를 통한 참여예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예술적 표현이 배제된 캐테의 작품은 어둡고, 칙칙하며, 뭔가에 억눌린 모습들의 인간상이 보여진다. 이는 비참한 프롤레타리아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으며 "미는 추한 것이다"라는 졸라의 말처럼 캐테는 추함에서 당시 사회와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1914년에 시작된 1차대전은 케테의 예술과 그녕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강요한다. 끔찍히도 사랑했던 둘째아들 페터의 전사는 그녀에게 극도의 상실감을 가져다 주었다. 캐테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가야 할지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게 된다. 후세에 강력한 반전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경고비』,『부모』등의 조각작품이 이 시기에 계획된다. 전쟁중에 많은 어머니들과 부인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여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나타내는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게 된다. 이 때부터 캐테는 한 전사자의 어머니가 아닌 전쟁에 참가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가고 있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계속 발표된다.

캐테 콜비츠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인정스러운 인간이었다. 작품에 임할때는 자기자신을 닥달하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괴로워 하면서도 자신을 필요하면 언제든 기꺼기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였다. 작품에 대한 엄격함과 예술에대한 내면적인 갈등은 그녀가 남긴 많은 수의 자화상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성찰의 결과 그녀는 상당히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특히 1937년에 남긴 말년의 자화상에서는 선이 사라지고 명암만이 존재하는 듯한 캐테의 얼굴에서 달관자적이며 말년에 이르러 결국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의 참뜻을 깨달은 것 같은 인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물질 문명사회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완전히 굴복하였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외투를 입은 현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증대하고, 환경오염을 가속화 하며,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지적인 전쟁과 끊임없는 테러에 전세계가 몸살을 안고 있다. 몇년전 한 혁명가의 이야기가 유행한적이 있다. 혁명이 필요한 시기라서 그런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고 하는데 현재와 같이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필요한 코드는 혁명가가 아닌 캐테콜비츠와 같이 어두운 곳을 보듬을 수 있고 인간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낸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과 같은 코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위 리뷰는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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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 소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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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학작품에는 문외한이 내가 수필집을 읽고 이렇게 감동을 받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첫작품은 한 목사님이 쓴 수필집이었고....그리고 내눈에 수필이라는 장르의 콩깍지를 씌워준 바로 이책 '콩깍지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한 아이의 아빠가 된지 다섯달이 지난 나에게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한 책이 되어버려렸다.

장애아이지만 정상적이 아이보다 몇곱절 더 사랑을 뿌리고 살아가는 민서와 그 사랑의 원천인 민서엄마의 아름다운 시골생활이야기는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이번 겨울을 지내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걸 느끼게 해주었다. 콩깍지 사랑은 민서의 출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서를 키우면서 경험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시골생활을 정말 맛깔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묻어 나오는 따뜻한 사랑내음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그 향기를 뿜고 있다.

무어라고 길게 쓰고 싶지만.....직접 읽어보고 느끼는 감정을 나타낼 방법이 없는것 같다. 나 자신의 글쓰기의 한계도 한계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따뜻함은 책을 읽어야 느낄 수 있을것이다. 사랑....그리고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잠시 잊었던 시골의 풋풋함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에 관한 여러가지 단편들.....

추운 이 겨울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내음을 한번 느껴보시는 것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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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아라이 도시아키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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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아라이 도시아키 / 양억관 옮김 푸른숲

어느 시대에서도 시대의 반항아, 시대의 반역자는 항상 존재해 왔다. 권력과 체제에 대한 도전을 과감히 실행한 반역자들은 그들이 의도한 계획이 성공했느냐 혹은 실패했는냐에 따라 역사속에서 그 평가가 많이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반역이란 '권력이나 권위를 거역하는 것, 국가와 권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쉽게 반역도당이라 부르며 반역자라고 낙인찍힌 역사의 인물들은 대부분 반역에 실패한 사람들일 것이다. 반역이 성공했다면 새로운 시대의 정통파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것은 한 시대의 반역자들이 단순히 권력에 도전했다가 사라지는 역사의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역사에서 다양한 시대의 반역자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반역이 실패하였더라도 이 후 다음 시대를 열거나 반역의 대상이 되었던 권력을 무너뜨리는데 혹은 더 발전적인 세상을 만드는데 그러한 반역자들의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실패했지만 진승과 오광의 난이 진제국을 멸망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 청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듯이 말이다.

아라이 도시아키가 쓴 반역자라는 책은 중국 역사속에서 반역자로 지목된 16명의 반역자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안녹산, 왕망, 홍수전 뿐만 아니라 청말 여성반역자였던 추근, 현대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암살하려 했던 린뱌오까지 다양한 반역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특히 명시대의 반역자 해서는 그의 행적이 현대 중국사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청백리의 대명사인 해서는 명나라 황제 가정제에게 충신들을 멀리하고 군신의 예를 무시하며 도사들에게만 편파적으로 높은 작위와 녹봉을 주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상소문을 올리게 된다. 해서는 이 상소문을 올릴때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관을 준비했다고 한다. 가정제의 노여움을 산 해서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지만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정에서 짧은 시간을 공직에 임한 후 청백리의 삶을 조용히 마감하게 된다. 이후 1959년 해서의 사건을 다룬 경극 '해서의 면관'이라는 작품을 둘러싸고 당시 권력자였던 마오쩌둥과 펑더화이가 각각 가정제와 해서로 비춰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어 결국 문화대혁명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펑더화이는 루산회의에서 비현실적인 마오쩌둥의 '대약진 정책'의 실패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해서로 비춰지게 되고 상대적으로 마오쩌둥은 가정제가 되고 만다. 하지만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은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펑더화이를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마오쩌둥은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중국공산당을 상대로 반역을 하게 되는데 그 사건이 전 중국을 뒤흔든 문화대혁명인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비행기 추락사로 유명한 란뱌오라는 반역자를 만들게 된다.

역사의 긴 과정속에서 반역자들의 자취는 사못 경이로운 면도 있다. 분명 반역자가 역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사회가 많은 혼란과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반역에 실패하여 정통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반역자들의 삶과 행동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혼란과 불안,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교의 불안함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혹자는 더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건국이래 최대 혼란상태라고도 한다. 부조리한 권력과 힘이 존재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이시대의 반역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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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주 내가 푼다
임태근 지음 / 여시아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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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 결정되는 생년월일과 시간으로 한 사람의 평생을 아우르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사실은 일면 신비롭기 까지 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기구나 방법들 중에 우리가 가장 흔히 듣고 접하는 것이 사주(四柱)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주팔자로 보는 역술이란 생년월일시에서 얻어지는 기본적인 정보로 정해지는 연주, 월주, 일주, 시주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장간(地藏干)과 대운(大運)을 결정하여 음양오행의 원리에 입각하여 사람의 다양한 성격과 미래를 예측하는 역법을 일컫는다.

사주원리에 대해 학문적이고 깊이있는 접근을 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내 사주 내가 푼다'라는 이 책을 권해본다. 사주해석의 기본이 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태양과 지구의 운동 그리고 태양계의 다양한 행성들의 성질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특히 木, 火, 金, 水, 土 오행의 상생적 운행의 원리를 열역학 제2법칙과 블랙홀 이론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흑점과 흰점으로 표시된 하도와 낙서의 숫자들을 DNA의 염기구조로 설명해 놓은 부분도 있다.

작가가 원자핵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음양오행의 운행방식을 서양과학과 접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그리 껄끄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또한 내가 공학을 전공해서인지는 몰라도 한자로 가득한 기존의 역술서 보다는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역서에 천문학과 물리학 그리고 생명공학에 관련된 내용이 첨부되어 있으니 참신했다.

책을 중간정도 읽고 10간(干)과 12지(支)에 관한 내용과 지장간을 이해한다면 어느정도 자신의 사주운세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책 뒷부분인 육친론(六親論)과 사주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용신론(用神論)을 읽고 나면 상당수준의 운세를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사주의 해석은 음양오행이 서로 상생하듯이 다양한 결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도 이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점을 쳐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결과의 운세가 도출되는지에 관한 이론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작가가 원하듯이 사주에 관한 학문이 점을 보기위한 내용이 아닌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바란다는 내용에서 깊은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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