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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스토리다 - 수포자도 읽을 수 있는 수학책
박옥균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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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심각하게 수학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 물론 강제다. 학대 수준은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해석하고 맥락을 찾아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하는 수학에서 해석의 힘과 맥락을 찾는 능력은 책을 읽어야 만들어진다. 즐겁고 재밌는 수학이기 위해 문제 풀이는 스토리로 접근해야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야 할 아이들이 짧고 강렬한 영상에 빠져 드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시국이 만든 비대면 문화의 여파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오랜 시간 과외다 학원이다 하며 수학으로 밥벌이를 하는지라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의 수학학습능력 저하가 얼마나 심각한지 요즘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다.

 

사칙연산을 수학의 기본 도구라 본다면 아이들은 나눗셈을 가장 어려워한다. 단순하게 자연수를 나누는 건 쉽지만 분수와 숫자의 비로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은 곤혹스럽다. 초등학교 때 시작되는 숫자 사이의 비와 나눗셈을 제대로 이해하는 아이들은 경험상 머리가 좋은 부류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읽기와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개념이 하나로 연결되는 매력이 수학의 바탕이라면 이런 수학 근력 혹은 수학 기초체력은 책에서 나온다. 그리고 논리적인 스토리를 만들 줄 아는 아이들이 튼튼한 수학 체력을 키운다.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영상에 빠져 있다. 어찌하겠는가. 시대가 이런 시대인걸.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혹독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학을 스토리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책에서 언급하듯 수학이란 거대한 숲을 미세한 수준으로 확대해 보면 프랙탈 구조마냥 끊임없이 확장되고 반복되기에 그렇다. 기본적으로 이차식은 이차방정식과 이차부등식 그리고 이차함수로 확장된다. 아이들에게 이차방정식은 해만 구하면 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차방적식의 해는 이차함수의 그래프와 연결되고 다시 이차부등식의 범위를 찾는 데까지 확장된다. 중요한 것은 방정식이든 부등식이든 이차함수를 평면좌표에 그래프로 나타내면 쉽게 해결된다는 사실이다. 이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이차함수의 곡선은 실제 중고등학교 수학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중학 3학년 과정에서 아이들은 함수란 말만 나와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차방정식에서 이차함수로 넘어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없기도 하지만 이차함수로 표현된 그래프로 이차방정식과 부등식을 해결하는 즐거움은 사고의 확장이 없인 힘들 수 밖에 없다. 이 사고의 확장이 쉽냐 어렵냐는 책읽기 혹은 스토리 구성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수학이 스토리라면 기승전결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스토리의 바탕에 정의와 정리 따위의 공리가 있다. 개념이 확실하다면 그 속에서 패턴을 찾아 확장시켜 나가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야기는 이유가 있기에 마땅한 결론이 도출된다. 그 결론에 다른 개념을 첨가하면 다시 새롭지만 기존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두 문자로 이루어진 방정식을 만족하는 점을 찍어 그래프로 표현한 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수학을 단절된 무언가의 결합이 아닌 연속된 개념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즉 수학이란 스토리인 것이다.

 

글쓴이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리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수학교양서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대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용은 더하다. 단순히 아이들만 놓고 봐도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고등학교 3학년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그만큼 교과과정과 가깝다는 말이다. 일대일대응이랄까?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 비교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알맞게 구성되어 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을 수학 개념과 패턴 그리고 스토리라는 핵심으로 탄탄하게 기술해 놓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수식과 그래프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글만 따라 읽기만 하면 수학의 본질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글쓴이의 열정과 감각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을 어른들이 많이 읽었으면 한다. 학부모나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도 추천한다. 아이들이 성적을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지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수학은 어두운 삶의 길에 환한 빛을 비춰주는 등불이니 말이다. 지금보다 다가올 미래예측이 중요한 시기가 또 있었을까? 미래는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맥락과 패턴이 만든 현재 이야기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이 스토리의 마지막이 어떤 식일지 수학이 도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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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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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호박, 콩은 세 자매 농법의 주인공이다. 옥수수는 콩이 타고 자랄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콩은 질소 고정을 통한 비료로, 호박은 잡초를 억제하고 수분을 유지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북미 원주민 부족이 오래전부터 사용한 농법이란다. 이들 세 자매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서로에게 가장 효과적인 협력체로 작동한다. 바나나와 카사바를 함께 재배하는 경우와 같은 복합작물재배의 선지자쯤 된다고 한다. 우리가 이 세 자매를 주목할 이유는 바로 호혜성이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는 그 호혜성말이다. 본질적으로 옥수수와 호박 그리고 콩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삶을 산다. 중요한 건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호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각각의 전략이 한데 어우러져 호혜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책에 호혜적 교차먹임이라 표현된 세 자매 농법은 매번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인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냥 정답이라 하겠다.

 

사실 별 관심 없었다. 강원지사가 누가 되던.

이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분법이 무색해진 거대 양당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니 양당에서 한명씩 나온 선거에서 누가 지사가 되던 말든 딴 세상 얘기였다. 그런데 후배의 권유로 본 토론 영상 속 두 후보는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서로를 헐뜯고 할퀴던 대선토론의 연장쯤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의 공약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토론이었다. ‘내가 도지사가 되면 당신의 공약도 추진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낙선해도 도지사가 된 당신을 돕겠다.’라는 식의 훈훈한(?) 토론이었다. 네거티브가 전부였던 대선 피로감을 의식했든 아니든 신선했다. 협잡과 야합이 난무하는 정치판 속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공중파 토론 방송에서 양당의 두 후보가 협력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것 만으로도 난 감동(?)했다. 이것이 바로 세 자매 농법이 아닌가? 두 후보의 협력은 스스로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바탕일지 모른다. 인간이 주고받는 호혜성은 뭔가를 얻기 위한 밑밥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깍아내리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행위는 식물보다 못한(식물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후진 행동이다. 공생을 위한 호혜성은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다.

 

식물은 위기를 감지하면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분비해 주변 식물에게 위험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면 좋을 듯싶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니 말이다. 여하튼, 평생 자신이 성장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어쩌면 식물은 혼자 살 수 없음을 직감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다양성이 생존의 필수임을 유전자에 각인된 그런 존재 말이다. 어쨌든 위기상황에서 식물은 생존을 위해 생명활동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에너지를 아낀다. 이러니 인간보다 나을 수밖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인간 종을 고등생물이라 스스로 정의한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등한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능이 높고 주변 환경을 상황에 따라 이용하는 능력이 인간종의 영원한 번성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수 십년 전부터 기후니 식량이니 자연생태니 하며 붕괴의 신호를 접하면서도 눈앞의 이익과 욕망으로 미래를 갈아넣어버렸으니 말이다. 다양성의 이해는 고사하고 우린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적으로 삼고 혐오하기 일쑤니 말이다. 그러니 오만함을 버리고 식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호혜성만이 아니다. 미래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지혜도 배워야한다. 가뭄에 대비해 에너지 절약에 모든 걸 거는 식물마냥 우리는 더 불편하고 더 배고픈 시절을 살아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경험이 가장 적기 때문에 배울게 가장 많다. 우리는 다른 종들 가운데 우리의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그들의 지혜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직접 본보기가 되어 우리를 가르친다.” -p.14

 

여기서 그들은 바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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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피터의 고백 -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마히 그랑 지음, 서준환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늘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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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 원숭이는 벌레가 된 인간만큼 극적이진 않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갑충이 되어버린 이야기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으로 변한 원숭이 이야기가 더 어려웠다. 원어 독일어가 문제인지, 글이 짧아선지 카프카의 글 학술원의 보고시골 의사다음으로 난해하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인간이 된 원숭이 이야기는 내게 꾸준히 어렵기만 한 글이 였음이 확실하다. 고마운 책이다.

 

21세기의 오분의 일이 지났다. 정말이지, 과거의 잔재를 먼지 털 듯 털어낸 상큼하고 신선한 새 세상이 오리란 기대까진 하지 않았다. 반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기후변화, 인구과밀, 양극화, 종교 갈등, 식량부족 따위의 문제들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모진 환경과 조건을 지혜롭게 극복한 인간종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새롭게 맞이하는 신세기가 회색빛이긴 해도 칠흑의 검은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은 기대는 무너졌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이 보인 극단적인 이기심은 놀라웠다. 가난한 나라의 방역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가운데 돈 많은 소위 선진국은 백신을 독점했다. 그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나를 포함해) 없는 나라 사람들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백신을 두 번 세 번 맞았다. 보편이라는 수사가 붙어야 할 휴머니즘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계가 어두컴컴했다.

 

생존을 위한 대의(?)로 전쟁이 벌어졌다. 1930년에 볼 수 있었던 민족주의, 국가주의, 영토확장주의가 2022년에 다시 세계 정치에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제연합은 마이크 앞에서 실체도 없는 말잔치만 할 뿐이고 강대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며 주판알을 튕길 뿐이다. 정의는 이해당사자들 저마다의 논리에 찢겨 너덜너덜해졌다.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해방시킨다는 나라도, 잘 싸워 이기라며 무기며 물자를 지원하는 나라도 곱게 보이지는 않다. 참화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어차피 먼 나라 남의 일이다. 입으로 정의를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식의 팔에 이름과 주소를 새기는 부모 마음을 우리가 어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과연 희망찬 2022년이란 말인가.

 

피터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 그에게 인간되기란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선택이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피터는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원숭이가, 아니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지독한 혐오와 배제, 집단주의는 이성의 존재가 아니라 본능에 따르는 동물의 습성이다. 대화와 타협보다 힘으로 억누르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 강자의 독식은 진보를 역행하며 짐승의 길을 가고 있는 인간 문명 퇴화의 전조다. 기후변화 따위의 물리적 파국을 걱정했던 나의 낭만적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인간은 스스로 파멸하고 짐승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오래던 마키아벨리라는 선지자는 인간이 지닌 이성과 본능에 관한 통찰을 글로 남겼다.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는 야만과 이성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한다. 백성들은 인간보다 동물에 가깝기 때문에 사랑보다 폭력이 통치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물론 배부르고 등따신 시절에는 인간적인 풍모를 풍기는 것이 더 유리하다. 하지만 고난의 시대엔 짐승처럼 대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수 조건이라 했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착각 속에서 산다. 짐승의 본능을 숨기면서 말이다. 숨겨진 야만성은 언제나 생존의 위협이라는 허울 아래서 폭력을 정의로 탈바꿈한다. 그게 인간이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이런 걸 말이다. 인간이 그런 존재인걸. 그저 최대한 애쓰고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인간이 된 원숭이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길이 무언지 찾으면서 말이다. 피터는 인간이 되는 최종 과정이 풍경에 녹아든 것이라 했다. 아마 인간사회의 일부분으로 동화된 것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풍경이 된다는 것은 이성과 본능을 초월한 그 무엇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가 연결되어 하나를 만들어내는 건 우리 인간종이 자연의 일부요 지구 생태계의 부분이라는 자각에서 가능하다. 내 존재가, 우리라는 공동체가 특별하고 우월하다는 오판이야말로 파멸의 시작이다. 우리에겐 그저 약간의 이성을 갖춘 원숭이일 뿐이라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부족함을 함께 채워가는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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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데이터 이야기 - 디지털 시대에 알아야 할 핵심 지식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청소년 시리즈 1
박옥균 지음 / 이상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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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그곳을 통과하면 거대한 책들의 세상이 펼쳐지고, 또 그 너머에는 세상의 모든 진리가 존재한다. 물론 지극히 나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하튼 기쁜 것, 행복한 것, 슬프고 절망적인 것이 적당히 섞여있는 그 진리의 세계를 맛보려면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입구다. 그곳을 거치지 못하면 책과 그 너머의 매혹적인 세계를 엿볼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입구 또한 책이다. 독서가라면 누구나 자신을 책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만든 책이 존재한다. 감동 아니면 충격을 준 책 말이다. 도끼로 얼음장을 깨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성일님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20년 전 나를 책 세상으로 인도한 책이다. 빛나는 사회과학 이론의 정수를 뽑아 놓은 책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워낙 다루는 분야가 많아 자칫 방만하고 산만해질 수 있는데 이 책은 다르다. 메타서적의 한계를 뛰어넘은 명저다. 그람시의 ‘옥중수고’, 푸코의 ‘감시와 처벌’,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발터 벤야민의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을 접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이 한권의 책 덕분이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그래서 각별하다.

 

10년이 넘었다. 난 매주 토요일 도서관에 간다. 입구를 통과해 1층을 지나면 2층이 장서실이다. 신간코너 앞에 선다. 정확하게 말하면 300번대 사회과학 서가 앞이다. 10년 전 책장을 압도하던 인문사회 책이 지금은 초라하게 줄었다. 재테크, 투자, 부동산에서 메타버스, 암호화폐, NFT 까지 온통 돈 이야기가 공공 도서관 300번대 책꽂이를 휩쓸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인지 씁쓸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도 애써 외면하고 싶을 지경이다. 책에 관해 편식이 심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돈이나 부, 인공지능이니 빅테이터 따위에 관심이 별로 없다. 좋은 책이 있을 텐데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나를 인공지능과 AI, 테이터와 코딩의 세계로 끌어줄 책이 필요했다. 다양하고 풍성한 정보로 가득하고 장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책.

 

그러던 차에 좋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데이터라는 풍성한 바다위에 펼쳐진 한편의 스펙터클이다. 코딩과 데이터, 인공지능과 각종 정보통신기술이 쉽고 흥미롭게 전개된다. 단순한 IT 교양서가 아니다. 글쓴이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데이터 이야기가 펼쳐진다. 데이터의 본질이 결국 지식과 지혜 그리고 책이었으니 말이다. 헤겔의 정반합, 마르크스의 물신숭배에서 조선왕조실록과 논어, 스키너의 심리실험과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까지 철학, 심리학, 뇌과학, 역사, 미술과 음악을 넘나든다. 글쓴이의 엄청난 독서량이 느껴진다. 물론 테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메타버스, 알고리즘에 관한 내용도 알차고 간결하다. 데이터 과학 초심자인 성인에게도 좋지만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이라 자신한다.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따분하지 않아 좋다. 파트별로 추천 도서가 책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세심한 편집도 장점이다. 분명 이 책이 입구가 되어 책 세상에 이르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자신한다.

 

서평을 마치며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책을 마무리 하며 글쓴이는 잠깐이라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벗어나는 삶을 고민하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가치가 빛나는 건 바로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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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카락 마담의 숙소 - 할머니의 우아한 세계 여행, 그 뒷이야기
윤득한 지음, 츠치다 마키 옮김 / 평사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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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삶이다.

서평을 써야 하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저 멋지다는 말밖에.

 

앞 두 줄이 내 서평의 전부다.

아래 쓴 글은 사족이다.

 

사업가, 예술가, 여행가, 시인 윤득한.

그(그녀)의 한 세기 남짓한 생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생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인연을 만들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 경계인이었다. 예술과 사업 중간 어딘가의 경계인이었고 한국인이면서 하이쿠를 사랑한 경계인이었다. 몇 째 아들인지 모르지만 그 아들이 한 말이 정답이다. 경계인이어서 고독하고 외롭지 않았다. 경계에 서 있어 그녀는 자유인이었다. 그녀가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선택받아야 했다면 결코 이처럼 멋진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만나고 싶으면 만났다. 보고 싶으며 봐야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미에 조르바는 두목(카잔차키스)에게 아름다운 돌덩이를 보러 오라고 전보를 친다-두목은 독일에 조르바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유럽 어디쯤에 있었다. 당시 유럽은 처참한 경제공황으로 죽어가던 때였다. 카잔차키스는 결국 가지 않는다. 비겁하게. 여튼 조르바는 펜대 운전사라 조롱하며 두목에게는 지옥이 존재할 거라고 답장한다.

맞다. 글쓴이에겐 지옥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르바와 결이 다르지만 그녀는 완전한 자유인이었기에.

 

사족이 길다.

생각나는 대로 적겠다.

유쾌한 로마의 덩치 좋은 남정네들. 스코틀랜드의 무반주 첼로곡, 베를린의 택시 운전사, 깁스를 예술로 승화시킨 지중해 의사들, 캐나다에서 만난 정중한 홍콩신사. 무엇보다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열린 최초의 한국전.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 아름다운 하이쿠.

읽어야 알게 될 것이다. 자유와 예술을.

눈이 띄는 하이쿠 한 편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가을 국화꽃 피는 골목 느긋한 고양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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