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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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 시리즈 브이가 방영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86년이다. 시기를 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징그러운 외계파충류가 지구를 침략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파충류들이 식량자원으로 인간을 냉동시켜 보관한 강렬한 장면 때문이다. 사람을 먹는다는 상상을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동물의 왕국에 등장하는 사자나 호랑이 또는 식인종이다. 그도 아니면 정신 나간 살인자가 인육을 먹는 장면쯤이다. 드라마에서 내가 놀란 건 수많은 인간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첨단 장치로 무장한 냉동고에 보관한 부분이다. 균일한 품질을 지닌 물건이 대량생산되고 유통되는 첨단 공장 시스템에 상품 대신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부분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면서 언제는 인간이 상품이 아니었느냐 만은 인간이 즉 상품이라는 메타포는 관념에서 존재하는 허상이다. 하지만 먹을 고기가 사라져 인간 고기를 키우고 도살하고 도축하는 세세한 장면을 써 내려간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불쾌한 여운이 오래 간다. 작가는 이 불쾌한 여운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서평에 딴소리만 쓰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딴소리를 조금 하겠다. 십 수년 전 EBS에서 개최하는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을 통해 일용할 양식이란 영상을 봤다. 과일과 곡물을 비롯해 육고기와 물고기를 식품으로 가공하는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 돼지, 닭을 도살하고 도축하는 공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효율을 극대화한 공장 시스템은 살아있는 가축을 순식간에 포장육으로 만들어냈다. 죽음 직감한 소, 돼지의 버둥거림과 반복 동작으로 소를 반으로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발을 잘라내는 무념무상한 노동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죽어가는 동물들이 애처롭다거나, 혹여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까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육가공 공장의 도살과 도축시스템이 무척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유튜브에 다큐 일용할 양식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축산가공공장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자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책에선 내가 쓴 바로 윗 글에서 소와 돼지 따위의 가축 이름을 빼고 인간을 대입하면 딱 맞는 인간고기도축공장의 간부가 주인공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계는 더 이상 가축이나 동물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고기용 인간을 길러 잡아먹는다. 뭐 인간이 육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여튼 고기용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호명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 언어란 참 묘하다. 인간고기를 그저 개체니 상품이니 하는 말로 바꾸는 단순한 행위로 인간을 먹는다는 죄책감이나 도덕적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아닌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책에서는 효율적으로 인간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가축에게 행하는 폭력적인 행위를 고기용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대를 제거한다, 팔다리가 잘려 움직이지 못하는 임신한 암컷 개체도 등장한다.(왜 성대를 제거하고 임신한 개체의 팔다리를 잘라내는지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를 쪼아대는 닭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닭 부리는 제거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호르몬을 투여하고, 각종 백신으로 병들지 않게 해야 한다. 여튼 개체 즉 인간을 키우는 사육장과 도살장 그리고 도축장에 대한 매우 자세한 묘사는 책에 고스란히 나온다. 물론 매우 흡인력 있는 글솜씨로. 인간의 가죽을 재료로 하는 가죽공장도 나오는데 이건 덤이다. 개체로 변한 육가공 재료인 인간은 버릴게 하나도 없다.

 

책을 읽고 나면 찜찜한 기분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불쾌한 여운이 감돈다. 인간고기가 가공되는 과정도 그렇지만 인간사냥터에 대한 묘사나 사냥감으로 잡은 인간고기를 신선한 상태에서 요리해 먹는 장면은 재밌고 동시에 불쾌하다. 쾌와 불쾌를 동시에 주는 글이라니, 워낙 작가의 글솜씨가 뛰어난 탓이기도 하겠다.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은 개인적으로 좋은 글이라 본다. 여하튼 내가 느낀 불쾌함과 찜찜함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비도덕적 행위 때문이 아니다. 우린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타인에게 비도덕적이니까. 우리가 사는 삶 또한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쾌함이 엄습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안락하고 배부르고 별 고통 없이 잘 산다. 문제는 그 잘사는 우리의 행복은 반드시 불행으로 점철된 사람들에 의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는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원료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다. 오늘 나의 행복은 오늘 너의 불행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 내가 행복에 가까운지 아니면 불행에 가까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나눠진다. 내 불편함과 불쾌함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욕심으로 희생되는 동족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인간이 인간을 배제하고 혐오하며 같은 인간을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한지 생각해보라. 무엇보다 인간을 상품으로 치환하면 인간 또한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가공해야 할 존재가 된다. 무감각하게 돼지 발을 자르듯 인간을 무감각하게 대하는 시대로 변질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건 육식을 비난하거나 인간의 탐욕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 시스템에서 인간고기를 가공육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고기로 대상화된 인간에게 어떠한 감정도 품어서는 안된다.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우린 지금 내 앞의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함께 살아갈 인간인지, 아님 그저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단순한 사물인지.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사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린 충분히 인간을 먹고 마실 수 있다. 사람이라도 육질은 부드러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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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