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 고흐의 정원
랄프 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1월
평점 :
***** 참 아름다운 반 고흐의 생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늘 가난과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비통하게 살다 간 어두운 모습의 고흐가 아니라 그에게도 보통의 젊은이들이 누렸고 가졌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어 의미가 컸다.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누구의 시각으로 볼때 성공이냐, 실패냐의 잣대가 아니라 지금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탈하면서도 일상적이 행복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웃을 줄 알고 함께 감동할 줄 아는 참 인간이 되고프다.*****
지난 2월에 다빈치전시회를 보기 위해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갔던 때가 생각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설계노트부터 다빈치의 기중기. 화포, 거울의 방, 그리고 평생 단 25점의 회화작품을 남겼다는 그 다빈치의 생애를 보기 위해 쌀쌀한 날씨가운데에서도 찾았던 것이다.
특별히 회화작품은 희소성때문에, 그리고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나의 경우엔 나이가 들며 점점 더 그림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림을 보기 위해 갔었다. 빼곡히 적힌 글보다 그림이 좋아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가 바로 이 책의 주제인 반 고흐덕분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땅 한 평 소유한 적이 없어도 정원을 주제로 한 채색화와 드로잉을 많이 그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또한 비극적 생애외에 그에게도 빛나는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몽마르뜨의 채마밭은 내가 본 빈센트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평화로운 그림이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자밭에서 김매는 솜씨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것 등을 미뤄볼 때 빈센트 역시 당시의 보통사람들처럼 생활에 필요한 채소를 직접 길러 먹고 그 밭 가장자리에 앉아 붓으로 여러 색깔의 물감을 찍어 꽃처럼 알록달록한 아름답고 화려한 채마밭을 완성한 것이 어찌보면 그가 바라는 생이 고독하고 외로운, 어두움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열한 색채, 힘 있는 터치, 그리고 화려한 구도 등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대중에게 알려진 모습이라면 이 책 <반 고흐의 정원>에 나와 있는 그림들은 한결같이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었나 싶을 만큼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고 따스하며 정감이 넘쳐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안과 행복감담뿍 느끼게 한다.
에덴의 정원을 회상하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작품을 대했을 때,
고흐 특유의 강하면서도 굵은 선이 주는 힘과 화려한 색깔들을 보며 이 당시에도 벌써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어떤 사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순전히 고흐의 상상 속의 여인들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요양원 정원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그림은 느낌이 좀 많이 다르다.
빈센트의 건강악화로 지냈던 요양원에서 조차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은 했지만 실제 이렇게 그 증거로 보니 마음이 표현할 수 없이 찡한 안타까움이 있다. 허리가 잘려 한 쪽으로 기우뚱한 나무가 중심에 있는데 그 나무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삶의 끝을 살아가던 시절의 빈센트가 남긴 소중한 여운이 아닐 수 없다.

아니에르의 보이에르-다르장송 공원의 길 역시 저 파스테톤의 아름다운 하늘을 보색의 작은 점과 면을 칠하는 쇠라의 신인상파주의 기법을 따라 만들어 아주 화창함 그 자체이다. 오른 쪽에 보이는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의 모습 또한 빈센트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힘든 그런 작품이다.
빈센트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대 낮의 도심의 공원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애정어린 모습을 이렇게 남겨 두었다니...정말 보면 볼 수록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런 인생의 한 폭이었던 것 같다.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 조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도 사람들에게 관심이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그냥 스쳐가거나 비켜갈 수 있음에도 저렇게 작품의 중심에 남겨 놓았으니 말이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게 나와 있어서 참 좋고 데이트를 즐기는 두 남녀의 얼굴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자태를 보면 꽤나 심각하고 진지하며 깊은 사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집작할 수 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를 상상하면...
이 봄의 파리에 가면 다시 이런 연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애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유연성이 넘치는 문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정원에는 단순히 커다란 꽃이나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지런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림은, 공부해서 아는 것보다는 역시 보는 이가 직접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사물과 사람, 그리고 인생에 대해 좀 더 여유있게 웃으며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