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무하마드 유누스 지음, 김태훈 옮김 / 물푸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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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뀐 '사건'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방글라데시에 대한 이미지는  가난, 인구밀집, 홍수 등이다. 하나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다행히 필자의 경우에는 집사람이 후원하는 아이가 하나가 방글라데시에 살아 부정적인 이미지 중에도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필자는 지난 달에 '무지개가게'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마이크로 크레딧 사용자들의 후기 모음집을 본적이 있어서 마이크로 크레딧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던 차라 이 책을 읽은 것은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그라민 은행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 동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라민 은행과 총재 유누스 박사의 수상은 다소 의아 스럽긴 하다. 그들이 한 일은 기존 은행에서는 대출이 안되는 빈민들에게 소액을 빌려주면서 그들 주변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우리가 아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은 '낼슨 만델라', 유니세프,'김대중' 등등이다. 이들이 한 일은 눈에 띄게 세계평화에 기여한 듯 하다. 전사계 전쟁터와 분쟁지역, 사고지역에서 아이들을 구조한 유니세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에 반기를 들어 남아공의 흑백 화합을 이룬 만델라, 남북의 평화에 이바지한 김대중. 그런데 빈민에게 소액 대출을 하는 그라민 은행이 평화상을 받는 것은 의아한 일이고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가 막히다.

 

유누스 박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책 같은 역할을 한 이 책의 말미에서 잠깐 언급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그라민 은행의 노벨상에 매우 고무적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문제들인 전쟁(분쟁), 환경오염 등의 기저에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내게 조금 덜 가지고 주위의 이웃에게 분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내가 양보하자는 마음만 있다면 애써 이웃의 땅이나 천연자원을 탐할 필요도 없고 남의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남의 행동이 못 마땅할 이유도 없다.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남의 것이 탐나니 욕심이 나기 마련이고 욕심이 과하면 남의 것에 손을 대게 된다. 가장 상징적인 예를 들어보자 남의 땅에서 나는 석유가 탐이나서 미국인 움직이자 이라크 전이 일어났다. 겉으로야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제조하고 원자폭탄을 만들려 하니 이걸 막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말을 안 듣는 후세인을 밀어내고 조정하기 쉬운 정부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라크 정부를 조정하려고 했던 영국, 미국 모두 그들의 석유가 탐났던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파키스탄으로 부터 독립한 방글라데시는 이웃 나라  인도와 사이가 좋지 않다.
이 이유는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산업 환경 때문에 대부분의 공산재를 인도에서 수입하고 인도와의 무역 역조가 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불균형에서 시작한 양국의 갈등은 지금은 정치적인 갈등을 번지고 있다. 또, 지구 온난화로 침수지역이 들어가는 방글라데시는 멀지 않는 미래와 인도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자국의 상황에 대입한 유누스의 의견은 결코 방글라데시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국의 독립에 일조하고자 귀국한 젋은 경제학교수 유누스는 조국의 상황이 교실에서 학생들을 키우서 해결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민빈촌으로 나간다. 그 곳에서 자신의 용돈 정도의 빚 때문에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안스러워 27달러로 40여명의 빛을 갚아준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하고는 자신이 보증을 서서 마을에 대출을 주게 된다. 그런데 대출을 받은 그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대출금을 갚았고 스스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탄력을 받은 유누스는 지역 은행에 소액 대출을 의뢰하지만 기존 은행 시스템으로는 빈민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그는 스스로 대출은행을 만든다. 마을은행이라는 뜻의 그라민 뱅크는 유누스가 은행에서 빌린 자금으로 그렇게 작게 시작했다.

그렇게 대책 없이 열정만으로 시작한 그라민은 현재 방글라데시 최대의 은행이 되었고 각 분야의 전문 회사를 거느린 대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그라민 그룹은 다른 대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이 된다. 대출은 회원제로 진행이 되면 회원의 빈부차이에 따라 다양한 대출 이자를 받고 대출 조건도 파격적인다. 심지어 이자가 전혀 없는 걸인대출도 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회원들 대상으로 장학사업도 하고 교육 사업도 한다. 그러면서도 회사 재정사태는 최고를 유지한다. 이렇게 조성된 이익은 투자자들이나 회원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다른 사회사업이나 기업설립에 투자가된다.
이익중 일부만이 투자자들의 원금 회수에 쓰인다.
 
 


이것이 유누스 박사가 주창한 사회적기업의 형태이다.
사회적 기업은 명백히 기업이다 보니 어떤 사업을 한 후 손해가 나면 안된다.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는 복지나 자선단체와는 다르다 적자가 지속되면 회사는 파산을 해야 한다. 이익이 난다고 해도 투자자나 임직원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수익 배당이 되지 않는다. 아직 사회적 기업의 주식을 거래할 시장은 없지만 만일 주식 거래가 된다면 주주들은 배당금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일정 기간내에 투자 원금을 돌려 받게 된다. 수익의 대부분은 자사에 사업에 재투자되거나 다른 사회적기업에 투자가 된다.  

사회적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목적 달성이기 때문에 잉여수익은 다른 사업을 위한 재원일 뿐이다.
이 기업은 수익구조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다. 따라서 이익 발생을 위한 노력을 하기 떄문에 장기적으로 자체 재원을 확보할 수 없어 기부금과 외부 지원금에 의존해야 하는 자선단체와는 다르다. 사회적 기업이 어느 정도 기간을 살아남게 되면 자생력을 가지게 된다.
자체에서 발생한 수익은 사업의 유지와 확대를 가져오고 결국 그들 스스로가 다른 사회적 사업의 재원을 제공하는 투자자가 된다.
 

 

이 책은 서두에서 유누스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프랑스 다농 그룹과의 공동 프로젝트는 그가 꿈꾸던 기존 기업이 공익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 가능하다는 믿음을 실현한 한 예이다. 다농 그룹은 미네랄의 풍부한 물을 마치 만병통치약 처럼 팔기 시작하여 부자가된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경영진이 방글라데시의 어린이 건강을 위한 사업적 프로젝트에 전격적으로 참여하고 최대의 지원으로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례인 것이다.

그 들의 진짜 목적이 어떤 것이던 간에 그라민-다농은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성공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다농의 지원으로 그라민 그룹과 방글라데시는 최선의 목적을 이루어 가고 있고 다농도 이 프로젝트에서 얻은 노우하우를 다른 생산기지에서 적용하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유누스 박사는
그라민 은행을 통해 그가 생각한 인류공영의 이상을 조금이나마 실현했고 그 것의 성공에 힘입어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제 인류는 온난화라는 커다란 재앙앞에 서 있다. 온난화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대표적인 재앙이다. 전 인류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공동대응인데 지금 인류들의 행태를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그런데 유누스는 그의 행적과 그의 사회적 기업 모델이 인류의 화합에도 기여하여야 한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의 말대로 서로에게 조금만 손을 내민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꺼라고 주창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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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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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넘었다.
퇴임 후 한 달도 안되 불거진 각종 조사들은 그를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의 퇴임후 생활은 그 해 여름을 넘지 못했다.

비서가 조성했다는 12억, 자녀들의 생활비로 썼다는 얼마의 돈, 12억의 비자금만 보자면 정말 큰 돈이다. 서민들에게는 큰 돈임에 틀림없고 나에게 그 돈이 있다면 팔자를 고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만한 돈이다. 그런데 12억이면 강남에서도 소위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지도 못하는 돈이다. 비서가 노무현의 퇴임 후 활동을 위해 만들었다는 12억, 자녀들의 생활비조로 권명숙 여사가 받아서 썼다는 돈을 모두 합쳐야 강남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이다. 필자가 찌질하고 장황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가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썼다는 돈의 실체는 강남의 부자들에게는 집 한채 밖에 안되는 돈이다.

또 현재 직업 정치인중에 가장 돈이 많다는 뭐같은 당의 박모 의원은 자산이 몇십 조 단위이다.
나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단위이다. 개인 자산 뿐 아니라 대표나 이사장으로 운영하는 각 재단의 영향력까지 치면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데 이 돈은 어찌 벌었을까? 뻔한 그림이다. 박위원의 아버지는 유명한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시절 박의원은 서거한 육여사의 몫을 맡아 정무를 도왔고 아버지 사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와 가족의 영향에 있던 것들을 모두 물려 받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것에 대해 파헤치고 들어내었다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대통령 임기 후 비리에 열루되어 고초(?)을 겪은 전직 대통령들은 많다. 오히려 조용히 넘어간 대통령이 희귀하여 윤보선, 최규하 두 분 정도이다. 이 두분의 자취는 너무나 초라하니 파헤칠 것도 없을 듯하지만...가장 큰 사건은 역시나 27만원 밖에 없는 거지 전임 대통령인  전두환 일것이다. 이 분에 대해서는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전히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아직 다 못자란 분이시니...뭐~ 더 말할 것이 무엇인다?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모두 비리 문제로 임기 후 잠시 시끄러웠다. 두 김씨들은 아들들을 희생양으로 감옥 보내고 모면했다.

그런데 노무현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액수나 돈을 모으고 받아 쓴 것 사실이 아니라. 그 스스로 직업 정치이나 기존의 부패한 정치와 결별을 선언하고 거침없이 기득권을 들이 박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냥 적당히 공격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그는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희대의 코미디도 없을 것이고 대통령이 정치인들에게 보수 언론과 늘상 싸우는 민망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 비리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하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면 일년이 지난 후까지 울어야 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그가 자란 김해 봉하 마을은 지금도 가난한 동네이고 그의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일부 언론에서 친 개구라 처럼 그의 선조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봉하로 쫒겨온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부일장학금이 아니었지만 다닐 수 없었다. 시험 운은 좋아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 부터 불만이 가득하였다. 그런 그의 인생이 꽃을 핀 것은  사법고시 합격을 했을때이다. 상고 졸업자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그의 집안 뿐아니라 봉하마을 전체의 경사였지만 고집스런 그에게 판사생활을 감옥 같았다고 한다. 늘 하는 단순한 업무처리, 청탁과 봐주기로 점철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판사 생활은 몇 년가지 못하고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한다. 조세부분에서 두 각을 나타내던 그가 어느날 부림사건의 민선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최우선이었건 그는 민선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겯다리로 시작한 민선 변호사 생활이 어느 때 부터인가 그의 주 업을 되었다. 사무실 운영도 동료에게 맡기고 노동현장이나 학생운동 사건의 현장을 뛰어다니고 검찰청 조사실을 들락거리게 되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노동운동의 인권변호사, 청문회 스타 국회위원 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힘든 길을 가고 있었다. 당선이 유력한 호남지역이 아닌 부산지역 출마하여 낙방을 수차례.. 보다 좋은 정치기반을 닦게될  종로구을 버리고 다시 부산행...그리고 낙선.

김대중과의 만남으로 그의 정치 역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당에서는 늘 비주류였고 비타협 세력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김대중은 이후에도 그로 인해 곤란한 일을 많이 겪는다. 김대중 역시 노무현이 비판하던 노쇠한 정치인 중에 하나였고 좌충우돌하는 노무현을 주변에 둔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대통령 감이 전혀 아니었던 노무현이 어느날 우리 앞에 대통령 후보로 나타났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마당에 뭐 안되겠냐 할지 몰라고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는데 그의 반평생과 목숨까지도 내 놓아야 했다.그런데 정치 경력도 짧고 배후 세력도 없는 노무현이 민주당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 기간 중의 수 많은 공격과 경제적 압박에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 대해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무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거의 포기한 당내 경선,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들어 올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노사모'이다. 노사모는 일종의 팬모임이다. 노무현이라는 개혁적인 정치인과 그의 생각과 행동과 정책이 좋아 모인 동아리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를 두고 사모임이니 불법 정치 단체니 하는데 이것은 말그대로 똥찬 머리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이전 정치에서는 소위 후원금이나 뒷돈을 데주고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큰 어른(?)이 될 만한 정치인들과 그가 밀어주는 어린 정치인에게 미리 기름을 발라두는 것이 신상에 좋아고 기업들은 이를 위해 늘 정치 비자금을 만들어 두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예전에는 기업은 정치 권력에 보살핌(?) 없이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정치인들은 그들이 받은 그 비자금에 목이 메어 기업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될성구른 정치인에게 양분을 주어 키웠고 그렇게 자란 정치인은 더 많은 자양분을 빨아 드렸다.이 공생관계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 관계를 끊고 싶었다.
이 관계가 끊어지는 않는 한 신념도 배알도 없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 배신하고 오늘은 싸우다가 내일은 얼싸 않고 다시 또 싸우며 오늘 뱉는 말을 내일 주어서 입에 넣는 그런 정치인들이 얼굴에 스마일 가면을 쓰고 국민들 앞에서 연극을 할 것이기 떄문이다.

 

우리의 정치에는 정책이 없다.
정책은 그 때 그 떄의 시류에 맞게 메뉴얼에서 짜깁기 하면 된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다보면 안될 수도 있고 그냥 안해도 말로 떼우면 되는 그런 분위기에서는 '정책정치'라는 것은 그냥 중국 고서에서 나올 법한 사장성어일 뿐이다. 국민이 뭐라하는지 몰라도 국민의 뜻이니 민심이라는 단어를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국민들은 그 들의 꼬라지가 싫어 점점 정치 스위치를 끄는데 그들은 여전히 '국민을 위하며 민심에 따른다' 말하고 적에게 국민 앞에 부끄럽다니 뭐라니 하는 가식의 적인 말을 한다. 그냥 눈치 잘보고 자리 보전하다보면 계단 올라가듯이 올라가면 된다. 특권을 누리고 싶어하지 힘들게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고 싶지 않다. 정책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생각하고 몸으로는 뛰어 일을 하면서 실패와 그에 따른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비난? 가만히 있으면 세비 꼬박 꼬박나오고 각종 특권을 누르는데 왜 사서 비난을 받아?

노무현은 사서 비난을 받는 사람이었다.
조중동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방씨, 김씨, 이씨 불러다가 궁중요리 먹이며 잘해 봅시다! 했으면 조용해졌을 것이다. 옛날 식으로 방이김씨을 안가로 불러다가 몇일 철야 시키면 해결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시대를 역생하고 싶지 않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민주화지 일사천리의 독재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그는 자신이 아는 바와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중동이 비난하면 그대로 두었다 떠들다가 말겠지 했다. 그렇게 맞다가 멍들어 버렸다.

그가 입안한 정책들 중에는 진보한 것도 있고 진보했으나 오도된 것도 있고 그저 그런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다.
전체적인 성적은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어찌 보면 그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부분 때문에 그의 전체 점수는 F가 되 버렸다.
바로 언론과 싸운 것이다. 언론은 그의 모든 것을 깍고 깍고 깍아 버렸다. 작은 것은 부풀리고 애매한 것은 사실처럼 보도했다. 한 번 오도된 것은 정정한다고 해도 쉽게 수정되지 않는 법이다. - 그는 점수는 F다.

보수 꼴통들에게는...

 

노무현이 자살했다고 하던 날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는 맘에 드는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죽은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봐야 할 문제지 감정적으로 변화가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스타 국회의원이었고  어디서 툭 떨어져 우리 구의 국회의원이 되고 내가 다니는 동선 안에 사무실을 차린 그냥 국회위원중에 하나였다, 평생에 본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생각이 좋은 사람이었고 신선한 사람이구나 했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대한문 앞에 분향소에 들렀다.
그의 영정앞에 서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그 눈물은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도 나지 않던 눈물이다.
그 눈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는 일년 동안 그의 이름만 들으면 그 눈물이 다시 났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참 곤란했다. 어느날 출근 길에 도종환 시인이 라디오 CM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또 눈물이 나서 버스에서 내려 근처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어야 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이렇다.

노무현,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이제 국민이 서는 나라가 되겠구나 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는 좌충우돌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돌을 맞았고 늘 싸웠다. 나중에는 그 싸움이 보기 싫어졌다.
그랬다 내가 생각하던 민주주의니 정의구현이니 부의 분배 하는 것은 역시나 그저 머리속에서만 생각한 이론일 뿐이었다.
실제 그런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가 겪었건 그런 더러운 과정이 몇 번에 몇 십배 또 몇 배가 더 일어나고 일어나야 겨우 한 걸음 내딜 수 있을지 모르는 그런 생각이라는 것을... 내 눈물은 미안함 이었다. 나는 그를 좋아했지만 지켜낼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아니 더 가증스러운 것은 작은 실천 하나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한 유시민은 책 머리에서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은 노무현을 놓아주련다고... 그리고 노무현을 못 잊고 슬퍼하는 분들도 이제 그를 놓아주라고...

나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의 이름만 들어도 나오는 눈물이 줄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는 곧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이에게는 보다 낳은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 아이를 더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지금 부터라도 실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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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Make Big Money - 아기곰의 재테크 고수 만들기
아기곰 지음 / 아라크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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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이란 필명으로 온라인 상에서 재테크 관련 유명한 포스팅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2년 후반에 정리된 글로 지금 보면 몇 가지 시대적인 배경이 달라 아무 생각없이 책을 잡은 필자는 초반 부에 약간 당황을 했다.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 초반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아주 자세히 소개하고 그 허와 실도 자세히 논하고 있어 지난 7년간의 변화를 아는 필자에게는 오히려 이해가 쉬운 부분이었다.

필자는 재테크의 정의와 재테크를 한다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 부터 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마치 도덕교과서의 이야기 처럼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그런 조건들이다.
 
 


실현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목표의 설정 

돈을 버는 사람은 반드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낭비를 하면 안된다. 목표가 허항되어서도 안되고 너무 작아서 아무런 고통의 동반없이 이룰 것이라면 목표라고 볼 수 없다. 1년 후에 얼마를 모으고 2년 후에는 그것으로 얼마를 모으고 또 3년 후에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구입한다.  
이런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면 아무리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도 재테크라는 것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보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가 없이 무작정 아끼고 모으는 행위는 마치 돈이 생길 때 마다 장농 아래에 밀어 넣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목표가 없이 모으기만 한다면 

필자의 본가, 앞집의 공사 때 일이다. 
앞 집의 주인은 한국전쟁때 평안도에서 피난을 내려와 구멍가게로 돈을 꽤 모은 분이다. 동네 은행에 다니던 동생의 말에 의하면 이 분은 은행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집의 공사를 위해 짐을 빼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이 분의 안방 장농 아래에서 돈 다발이 발견이 되었는데 대략 천만원 가령의 현금이 나왔다고 한다. 몇 년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많은 수의 돈이 썩어서 반 이상 삮아버린 돈 더미도 상당 수 나왔다고 한다.

이 돈들을 은행에 가져가는 동안 그 냄새가 대단했다고 한다. 
이 처럼 장농 밑에 돈을 모아두는 것과 아무 계획 없이 모으기만 하는 것이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비유가 있다. 주인이 하인 3명에게 같은 돈을 주고 1년 동안 이 돈을 사용하고 결과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1년 후 세 명의 하인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한 명은 두 배로 불려왔고 한 명은 손해를  보아 왔다, 다른 한 명은 주인이 준 돈을 그대로 들고왔다.주인이 각각의 하인에게 어떻게 운용했는지를 물었고 두 배를 불려온 하인과 손해를 본 하인은 그 돈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는 등으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주인이 준 돈 그대로 가져온 하인은 그 돈을 잃고 주인에게 혼날까 무서워 그 돈을 독에 넣어 땅에 묻어 두었다. 이 때 주인에게 혼이 난 하인은 손해를 본 하인이 아니었다. 돈을 땅에 묻어 둔 하인이었다.  

있는 돈 마저 잃을까 무서워 하는 태도로는 가지고 있는 돈의 유지도 어려운 것이 오늘 날 돈의 가치이다.
매년 물가는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20년 전에 땅에 묻어둔 100만원은 지금은 50만원의 가치 밖에 안된다.
20년 동안 물가가 2배가 되었다. 만일 이 돈을 10년 짜리 국채에 넣어 두 번 운용했다면 어떨까? 약 1.5배 정도로 불어 났을 것이다.


 

재테크의 목적 

제테크를 해서 돈을 번다고 하자. 돈이 많아지면 과연 좋기만 할까?
왜 이런 질문을 하자면 내 주위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의 그 가게 주인 부부의 노년은 살짝 불행했다. 바깥 주인은 암 합병증으로 누워서 노년을 보냈고 안 주인은 정든 집을 떠나 아파트에서 갇혀 살았다. 돈은 많았지만 병이 나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않아 결국 병을 얹었다. 필자의 친구 중에 부모님 덕에 생활고 없이 사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이 친구의 소원은 로또 대박이다. 필자의 친척 중에는 선대로 부터 물려 받은 땅이 천평이 넘는 분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100평 정도만 남아있다. 그런데도 맨날 삶에 재미없고 매일 매일 힘들게 일을 하며 산다. 

재테크의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아주 작게는 내가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자는 것이도 좀더 나아가 내 주변과 우리 사회가 행복하게 되는 것. 그것이 재테크의 목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목표가 잘 세워졌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이 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내가 여전히 불행하다면 부의 정도를  떠나서 헛 산 것이다. 헛된 삶이라면 무조건 부질 없는 것이다. 

재테크를 통해 얹은 경제적인 여유로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여유롭고 윤택하며 그 여유로 이웃과 내가 속한 사회와 잘 지내며 남의 어려움까지 도울 수 있는 또 나아가 사회를 더 낳은 방향으로 진보시킬 수 있는 힘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사용되는 부야 말로 재테크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재테크를 하면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재테크의 최종 목적은 나와 사회의 윤택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3년 후 1000만월 모은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10년 후에 1억 모다 이중 1/3은 기부한다. 이런 생각까지 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상상은 하지만 언젠가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건전한 생각 없이 또 목적 없이 돈을 모은다면 그 결과는 아름답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재테크 - 그릇을 키우는 과정

우리가 잘아는 통계중에 하나인 로또 당첨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미국의 로또는 우리나라 복권보다 그 규모가 몇 배가 된다. 한 번 당첨자가 나오면 말 그대로 평생을 돈 쓰면 살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그런데 로또 당첨자의 대부분은 그 돈을 2-3년 안에 탕진하거나 써보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로또 당첨전의 삶으로 계산하면 로또 당첨금으로는 그들 의 자녀대까지 쓸 수 있는 돈인데도 3년 안에 탕진한다. 이 것은 계획없이 갑자기 생긴 돈에 주는 불행이다. 말 그대로 로또 당첨금은 그들에게 허락된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들의 그릇에는 너무 큰 돈이었고 작은 그릇에 갑자기 부어진 돈은 흘러 넘치다 못해 작은 그릇을 깨트려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과 비교하다 보면 재테크 라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인 그릇을 키우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루에 2,000원씩 쓰던 커피를  줄이고 커피 사러 차 몰고 나가는 일 줄이고 여러가지 나쁜 습관을 줄여가며 작은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최적의 조건의 은행이나 증권사에 맞기고 종자돈을 만들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통제 능력이 커져간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이슈이면 지금도 문제꺼리인 강남의 집값에 대해 일목요연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
김대중 정권이 IMF 조기 졸업의 일환으로 부풀려 놓은(IMF 상황에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하향 안정화 시켜야 했던 노무현 정권이 거래세금인 양도세를 높이려는 시점에서 양도세 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거래세인 양도세의 인상은 결과적으로는 1세대 다주택자들이 잉여의 주택을 더 움켜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무주택자들에게 더 고통을 즐 것이라는 것이다. 보유세 개념인 종부세 인상이 반발에 부딪친 것은 종부세가 지방세이다 보니 자치위회가 당연히 반발할 것이고 이는 국가세금으로 대체하여 부과해야 할 문제이지 이를 피하고자 양도세를 인상하므로써 수도권의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가는 것이다.
보유세가 오르지 않는 한 1가구 다주택을 가진 있는 자들은 팔리던 안팔리던 상관이 없다. 하지만 주택을 마련하려라는 이들는 시장에 주택이 나오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10년이 지난 지금 보면 필자의 예상대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재고의 여지 없이 실패하였다. 그냥 실패한 것도 아니고 계속되는 실정으로 누더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양도세를 인하했다고 해도 부동산이 서민들이 원하는 모양세로 돌아설까는 의심이 든다. 이명박 정권에서 바로 양도세 인하를 시행했다. 그 결과 부동산 거래는 다소간 증가했지만 이 것은 서민의 주택마련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재테크 뿐 아니라 부의 분배와 사회정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앞서 필자가 재테크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 추구라고 했듯이 이 책의 저자도 그저 돈만 모으고 앞뒤 안가리고 달려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한다.

  

언제 씌여진 책인지 모르고 읽다가 깜짝 놀라고 책장을 덮을까(10년전 재테크 노우하우가 과연 지금고 유효한가?) 고민도 했지만 결국 원칙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느끼면 끝까지 읽게 되었다. 또 아이러니 하게도 10년전 그처럼 심각하던 부동산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되고 있고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부의 분배 문제-양극화)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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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가게
사회연대은행 무지개가게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회연대은행의 자립기금대출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희망이야기를 모아둔 책이다.

태어난 배경과 성향 그리고 그 동안 살아온 길을 다르지만 저마다 보다 나은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면서 개개인의 고난을 이겨낸 분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이 모두 사회연대은행의 도움을 받았지만 파격적인 대출은 불쌍한 사람 순으로 준 것도 아니거니와 대출을 받았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연대은행에서는 대출 전에 충분한 상담을 거치고 대출 후에는 잘 사용되고 있고 성공을 위한 준비가 되도록 계속적인 지원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대출인 받은 이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다.

이 책은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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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십년 전인가 집 창고에서 68년 판 돈키호테를 찾아내었다.
매우 어려운 구어체로 씌인 책을 감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책장에 고히 모셔 두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달에 시립도서관에서 10년전에 출간된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하였다. 9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량과 구어체로 씌어져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한 주를 더 연장하고도 풍차와 싸우는 장면까지 밖에 읽지 못하고 결국 반납을 했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이 책을 다시 쥐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 답게 문제가 매우 자연스러웠고 고급스런 양장에 중간 중간 삽입된 구스타프 도레의 아홉점의 삽화는 이 책을 매우 빛나게 한다. 이 책을 쥐면서 프로젝트가 난해졌다. 결국  732 페이지를 340여일 걸려서 읽어냈다. 이전와 읽은 철학자 아빠 때 처럼이라면 25일 정도면 읽어낼 분량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돈키호테는 1605년 레판토 해전에서 투르크에 포로로 잡혀가 5년의 포로생활 끝에 돌아온 조국에서 공직생활 중(이중에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본냄) 쓰기 시작한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1605년에 발표한다.

1편은 발표하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비슷한 세대를 산  세익스피어와 동일시 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세르반테스은 자신의 삶을 돈키호테의 이야기내에 많이 반영한다.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주둔군으로 근무하고 이슬람 제국과의 해전에 다수 참여하고 부상도 입고 특히 유럽이 대승을 거둔 레판토 해전에서는 오히려 포로가 되어 5년간의 포로생활 후 후원자들이 몸값을 지불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소설내의 액자소설에서 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귀국 후에는 무적함대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무를 수행하는데 정확한 죄명 없이 여러차례 투옥되고 돈키호테의 초고는 감옥생활에서 작성이 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이야기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많이 피력하는데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화자를 통해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야기 자체가 당시 상황에서는 파격적(자유연애 등등...)이었기 떄문인지 이 작품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작가를 통해 들은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이 것은 당시 합스부르크 왕조의 검열을 흐트리기도 문제가 발생할 당시 회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세르반테스의 후반기 생을 볼 때 그의 이런 소심함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는 라만차의 슬픈얼굴의 기사 돈키호테로 부르면 편력기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라만차의 노 귀족을 통해 그릇된 정보(특히 당시 유행하던 편력기사 소설의 무익함)가 얼마나 큰 문제이며 남녀 차별의 문제, 계급사회의 해악, 제국주위의 병페를 꼬집고 있다. 돈키호테가 활약(?)했다는 시기는 중세의 말엽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르네상스의 여명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고 중세 권위주의가 막바지에 이른 시기이다. 따라서 편력기사의 여행이라는 것은 이미 옛 이야기들로 치부되고 있었고 그런 시기에 돈키호테의 편력기사 수행은 시작부터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또 스스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논리의 비약과 외골 수의 생각으로 인해 실체를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는 그의 행동은 정신병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돈키호테는 시작부터 부조리로 시작한다.

한 편 최근에는 돈키호떼라는 인물의 이상스럽고 너무나 고집스런 행동들이 너무나 개인화되고 획일화 된 사회의 정체성를 깨는 역활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런 분석에 영향을 받아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오늘 날 우리의 상황을 볼 때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그 안에 가두어 보고 헛되이 보면 현실도 왜곡하는 세대와 돈키호테의 광기가 다르지 않다. 또 반대로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고 평균으로 안전되게 살아가려는 세대에 아니라 하고 어뚱한 짓을 하는 돈키호테는 일종의 탈출구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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