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노무현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넘었다.
퇴임 후 한 달도 안되 불거진 각종 조사들은 그를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의 퇴임후 생활은 그 해 여름을 넘지 못했다.

비서가 조성했다는 12억, 자녀들의 생활비로 썼다는 얼마의 돈, 12억의 비자금만 보자면 정말 큰 돈이다. 서민들에게는 큰 돈임에 틀림없고 나에게 그 돈이 있다면 팔자를 고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만한 돈이다. 그런데 12억이면 강남에서도 소위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지도 못하는 돈이다. 비서가 노무현의 퇴임 후 활동을 위해 만들었다는 12억, 자녀들의 생활비조로 권명숙 여사가 받아서 썼다는 돈을 모두 합쳐야 강남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이다. 필자가 찌질하고 장황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가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썼다는 돈의 실체는 강남의 부자들에게는 집 한채 밖에 안되는 돈이다.

또 현재 직업 정치인중에 가장 돈이 많다는 뭐같은 당의 박모 의원은 자산이 몇십 조 단위이다.
나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단위이다. 개인 자산 뿐 아니라 대표나 이사장으로 운영하는 각 재단의 영향력까지 치면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데 이 돈은 어찌 벌었을까? 뻔한 그림이다. 박위원의 아버지는 유명한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시절 박의원은 서거한 육여사의 몫을 맡아 정무를 도왔고 아버지 사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와 가족의 영향에 있던 것들을 모두 물려 받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것에 대해 파헤치고 들어내었다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대통령 임기 후 비리에 열루되어 고초(?)을 겪은 전직 대통령들은 많다. 오히려 조용히 넘어간 대통령이 희귀하여 윤보선, 최규하 두 분 정도이다. 이 두분의 자취는 너무나 초라하니 파헤칠 것도 없을 듯하지만...가장 큰 사건은 역시나 27만원 밖에 없는 거지 전임 대통령인  전두환 일것이다. 이 분에 대해서는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전히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아직 다 못자란 분이시니...뭐~ 더 말할 것이 무엇인다?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모두 비리 문제로 임기 후 잠시 시끄러웠다. 두 김씨들은 아들들을 희생양으로 감옥 보내고 모면했다.

그런데 노무현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액수나 돈을 모으고 받아 쓴 것 사실이 아니라. 그 스스로 직업 정치이나 기존의 부패한 정치와 결별을 선언하고 거침없이 기득권을 들이 박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냥 적당히 공격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그는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희대의 코미디도 없을 것이고 대통령이 정치인들에게 보수 언론과 늘상 싸우는 민망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 비리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하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면 일년이 지난 후까지 울어야 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그가 자란 김해 봉하 마을은 지금도 가난한 동네이고 그의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일부 언론에서 친 개구라 처럼 그의 선조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봉하로 쫒겨온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부일장학금이 아니었지만 다닐 수 없었다. 시험 운은 좋아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 부터 불만이 가득하였다. 그런 그의 인생이 꽃을 핀 것은  사법고시 합격을 했을때이다. 상고 졸업자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그의 집안 뿐아니라 봉하마을 전체의 경사였지만 고집스런 그에게 판사생활을 감옥 같았다고 한다. 늘 하는 단순한 업무처리, 청탁과 봐주기로 점철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판사 생활은 몇 년가지 못하고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한다. 조세부분에서 두 각을 나타내던 그가 어느날 부림사건의 민선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최우선이었건 그는 민선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겯다리로 시작한 민선 변호사 생활이 어느 때 부터인가 그의 주 업을 되었다. 사무실 운영도 동료에게 맡기고 노동현장이나 학생운동 사건의 현장을 뛰어다니고 검찰청 조사실을 들락거리게 되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노동운동의 인권변호사, 청문회 스타 국회위원 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힘든 길을 가고 있었다. 당선이 유력한 호남지역이 아닌 부산지역 출마하여 낙방을 수차례.. 보다 좋은 정치기반을 닦게될  종로구을 버리고 다시 부산행...그리고 낙선.

김대중과의 만남으로 그의 정치 역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당에서는 늘 비주류였고 비타협 세력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 김대중은 이후에도 그로 인해 곤란한 일을 많이 겪는다. 김대중 역시 노무현이 비판하던 노쇠한 정치인 중에 하나였고 좌충우돌하는 노무현을 주변에 둔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대통령 감이 전혀 아니었던 노무현이 어느날 우리 앞에 대통령 후보로 나타났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마당에 뭐 안되겠냐 할지 몰라고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는데 그의 반평생과 목숨까지도 내 놓아야 했다.그런데 정치 경력도 짧고 배후 세력도 없는 노무현이 민주당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 기간 중의 수 많은 공격과 경제적 압박에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 대해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무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거의 포기한 당내 경선,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들어 올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노사모'이다. 노사모는 일종의 팬모임이다. 노무현이라는 개혁적인 정치인과 그의 생각과 행동과 정책이 좋아 모인 동아리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를 두고 사모임이니 불법 정치 단체니 하는데 이것은 말그대로 똥찬 머리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이전 정치에서는 소위 후원금이나 뒷돈을 데주고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큰 어른(?)이 될 만한 정치인들과 그가 밀어주는 어린 정치인에게 미리 기름을 발라두는 것이 신상에 좋아고 기업들은 이를 위해 늘 정치 비자금을 만들어 두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예전에는 기업은 정치 권력에 보살핌(?) 없이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정치인들은 그들이 받은 그 비자금에 목이 메어 기업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될성구른 정치인에게 양분을 주어 키웠고 그렇게 자란 정치인은 더 많은 자양분을 빨아 드렸다.이 공생관계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 관계를 끊고 싶었다.
이 관계가 끊어지는 않는 한 신념도 배알도 없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 배신하고 오늘은 싸우다가 내일은 얼싸 않고 다시 또 싸우며 오늘 뱉는 말을 내일 주어서 입에 넣는 그런 정치인들이 얼굴에 스마일 가면을 쓰고 국민들 앞에서 연극을 할 것이기 떄문이다.

 

우리의 정치에는 정책이 없다.
정책은 그 때 그 떄의 시류에 맞게 메뉴얼에서 짜깁기 하면 된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다보면 안될 수도 있고 그냥 안해도 말로 떼우면 되는 그런 분위기에서는 '정책정치'라는 것은 그냥 중국 고서에서 나올 법한 사장성어일 뿐이다. 국민이 뭐라하는지 몰라도 국민의 뜻이니 민심이라는 단어를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국민들은 그 들의 꼬라지가 싫어 점점 정치 스위치를 끄는데 그들은 여전히 '국민을 위하며 민심에 따른다' 말하고 적에게 국민 앞에 부끄럽다니 뭐라니 하는 가식의 적인 말을 한다. 그냥 눈치 잘보고 자리 보전하다보면 계단 올라가듯이 올라가면 된다. 특권을 누리고 싶어하지 힘들게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고 싶지 않다. 정책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생각하고 몸으로는 뛰어 일을 하면서 실패와 그에 따른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비난? 가만히 있으면 세비 꼬박 꼬박나오고 각종 특권을 누르는데 왜 사서 비난을 받아?

노무현은 사서 비난을 받는 사람이었다.
조중동하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방씨, 김씨, 이씨 불러다가 궁중요리 먹이며 잘해 봅시다! 했으면 조용해졌을 것이다. 옛날 식으로 방이김씨을 안가로 불러다가 몇일 철야 시키면 해결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시대를 역생하고 싶지 않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민주화지 일사천리의 독재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그는 자신이 아는 바와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중동이 비난하면 그대로 두었다 떠들다가 말겠지 했다. 그렇게 맞다가 멍들어 버렸다.

그가 입안한 정책들 중에는 진보한 것도 있고 진보했으나 오도된 것도 있고 그저 그런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다.
전체적인 성적은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어찌 보면 그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부분 때문에 그의 전체 점수는 F가 되 버렸다.
바로 언론과 싸운 것이다. 언론은 그의 모든 것을 깍고 깍고 깍아 버렸다. 작은 것은 부풀리고 애매한 것은 사실처럼 보도했다. 한 번 오도된 것은 정정한다고 해도 쉽게 수정되지 않는 법이다. - 그는 점수는 F다.

보수 꼴통들에게는...

 

노무현이 자살했다고 하던 날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는 맘에 드는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죽은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봐야 할 문제지 감정적으로 변화가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스타 국회의원이었고  어디서 툭 떨어져 우리 구의 국회의원이 되고 내가 다니는 동선 안에 사무실을 차린 그냥 국회위원중에 하나였다, 평생에 본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생각이 좋은 사람이었고 신선한 사람이구나 했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대한문 앞에 분향소에 들렀다.
그의 영정앞에 서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그 눈물은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도 나지 않던 눈물이다.
그 눈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는 일년 동안 그의 이름만 들으면 그 눈물이 다시 났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참 곤란했다. 어느날 출근 길에 도종환 시인이 라디오 CM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또 눈물이 나서 버스에서 내려 근처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어야 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이렇다.

노무현,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이제 국민이 서는 나라가 되겠구나 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는 좌충우돌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돌을 맞았고 늘 싸웠다. 나중에는 그 싸움이 보기 싫어졌다.
그랬다 내가 생각하던 민주주의니 정의구현이니 부의 분배 하는 것은 역시나 그저 머리속에서만 생각한 이론일 뿐이었다.
실제 그런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가 겪었건 그런 더러운 과정이 몇 번에 몇 십배 또 몇 배가 더 일어나고 일어나야 겨우 한 걸음 내딜 수 있을지 모르는 그런 생각이라는 것을... 내 눈물은 미안함 이었다. 나는 그를 좋아했지만 지켜낼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아니 더 가증스러운 것은 작은 실천 하나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한 유시민은 책 머리에서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은 노무현을 놓아주련다고... 그리고 노무현을 못 잊고 슬퍼하는 분들도 이제 그를 놓아주라고...

나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의 이름만 들어도 나오는 눈물이 줄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는 곧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이에게는 보다 낳은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 아이를 더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지금 부터라도 실천해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