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영조를 가르치다 - 개천에서 용상으로
신창호 지음 / 써네스트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MBC의 인기드라마 '동이'를 통해 조선시대 3대 성군이라고 칭해지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숙종의 40여년의 긴 재위기간 중 역사적으로, 조선 정치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남긴 왕이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황후 민씨, 첫 번째 후궁인 희빈 장씨 그리고 이 책에서 교육적 귀감으로 삼은 두 번째 후궁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이라도 쓸 정도로 매우 드라마틱하였다. 거기에 숙종의 네 번째 왕자인 연잉군은 훗날 역시 드라마틱한 사건과 조선의 후기 르네상스를 만든 성군 영조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후대에 두고 두고 희자되며 문학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

저자는 이 드라마틱한 시기의 인물인 경종과 영조 두 왕의 두 어머니와 아버지 숙종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교육학적으로 접근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버지 숙종은 그의 정치적 수완처럼 이율배반적으로 매우 복잡다단한 행동으로 자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존재였을 것으로 본다. 경종은 배다른 아우 연잉군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연잉군이 태어나자 그 사랑은 연잉군에게 옮겨진다. 그 것은 어머니 희빈 장씨에게 대한 사랑이 숙빈 최씨에게 옮겨지면서 둘 사이에 매우 냉냉해진 것과 동일했다. 연잉군의 경우도 배다른 동생이 태어나자 아버지의 사랑의 겨두어짐을 겪었다. 숙종은 왕비와 빈들과의 관계도 정칙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 왕도 정치적은 싸움으로 그 존위가 위태로와 진다는 것을 경험한 탓으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은 왕이 된 것이다. 숙종 재위기간 중에 일어난 풍당과 각종 숙청에서 숙종은 불리해진 세력이라면 가차 없이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왕과 비 그리고 왕자들에게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어려운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지만 두 아들이 걸어간 길은 달랐다.
경종은 어려서 총명하고 성품이 인자하였고 이를 숙종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왕세자 기간 동안 그리고 대리청정 기간동안 경종은 병약한 모습을 보여며 실제로 왕세자 기간 동안 병명이 정확치 않은 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에 오른 후 4년 만에 죽게된다. 이에 반해 영조는 경종 재위기간 중에는 사사되는 위험에까지 처하는데 재위 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치적을 쌓는다. 이 중에는 아버지 숙종에 마련한 기틀위에 이룬 것도 있지만 즉위 이전에 겪고 배운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저자는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훈육 방법의 차이로 보고 있다.
희빈 장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양인 출신으로 무역으로 부자가된 친척과 남인이 결탁하여 왕을 만들고자 궁에 들어온 경우이다. 희빈 장씨 뒤에는 이런 이권 세력이 있었고 장씨 본인도 출세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 것은 결국 자신을 제외한 세력을 적으로 여기는 강박증과 아들에게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여린 경종은 이런 어머니 밑에서 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아버지의 사랑마저 잃고 나자 병을 얹을 것으로 보인다. 숙빈 최씨에 대해서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관노가 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왔는지 그녀가 무수리였는지 인현왕후의 종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상전에 대한 충절을 보고 숙종이 반해서 잉태를 하고 빈이 된다. 숙빈은 이런 입지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늘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궁의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나인들 사이에서 까지 숙빈의 이런 겸손한 태도는 칭찬이 자자했고 숙종도 이런 숙빈의 행동을 아꼈다고 한다. 자신에게 충절을 보이고 인품까지 단아한 숙빈 최씨를 인현왕후도 당연히 아꼈고 이에 따라 인현왕후의 배후 세력들이 이후 영조의 뒷 세력이 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연잉군은 늘 조심하고 겸손하며 신중할 것을 훈육 받았다. 왕자 이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는 교육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숙빈 최씨는 연잉군에서 왕가의 업격한 법도 이외에도 어머니의 사랑과 인간으로 써 가져야 할 그런 것들을 가른친 것으로 보인다. 연잉군이 숙종의 병환 중에 매일 숙종 곁에서 병수발을 한 것과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형, 경종에게 매일 문안을 드리러 간 것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마음 안에 따스한 인간미가 넘쳤던 것으로 보인다.

 

영,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전 시대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서 많은 노력을 보인 이 시기를 연 영조을 있게 한 것은 획일화되고 정체된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과 인간미를 살리는 교육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예로 든 이야기로 긴 길을 마칠까 한다.
알코홀 중독과 가정 폭력속에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가 있다.
한 형제는 폭력 전과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냐고 한다.' 그런데 그의 다른 형제를 찾아보니 그는 대학교수에 목회자로도 활동 중었다. 그 형제에게 물으니 '그런 가정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라고 했단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더블어 희빈 장씨가 보여준 경종에 대한 집착과 교육 그리고 숙종의 무관심은 마치 오늘 날  어머니들의 과잉 교육과 흡사하다. 요즘 하는 말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 이 필요하단다.
이 무슨 망국적인 상황인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고사는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여 요즘 교육에서 경전처럼 생각되어 진다. 일류대를 보내려면 강남의 어디, 양천구의 어디로, 강북의 어디로 이사해야 하며 어떤 아파트에 살아야 하며 어떤 유치원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 부모의 스케쥴이 획일화된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 낸다. 다행히(?) 잘 버티어 낸다고 해도 그냥 일반화된 사람이 만들어진다. 창의적인 신인류를 기대하기 어렵고 못 버티어내어 경종 처럼 된다면.... 그 때는 어찌 할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과연? 사람은 기계다 아니다 가슴을 가진 존재이다. 내 아이가 몇시간 공부하는 계산하기 전에 아이와 몇 시간이 대화하는지 계산해 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악마의 자식들... 국제 금융재벌에 손에 좌지우지 되는 세계 경제...
미연방준비위원회와 연방준비은행에 대해 알것이다. 연준위라 불리는 이 기관은 미달러화와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기관이 미연방 기관이 아닌 사기업인것을 아는가? 100명 중에 한 명이 알까 말까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연준위는 뉴욕은행, 록펠러 소속의 씨티은행, 로스차일드 가문의 하노버방크 등이 주주로 있는 사기업이다. 미연방정부는 단지 20%의 의결권을 가지지만 그것 마다도 허수아비에게 씌어진 모자 일뿐이다. 미달러는 국민에게서 걷을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개인은행에 채무를 지고 그것을 담보로 찍어낸 돈, 즉 채무화페,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채무 증서이다. 미국은 국민의 미래 세금을 몇 십년 당겨서 담보로 잡히고 그 돈을 찍어내 흥청망청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환영해 마지 않은 달러도 미국 국채도 사실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 쓰레기 조각인 것이다.
  



미국의 근세에 새로 독립한 국가중에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런 미국이 속으로 썩어 들어가 지금 처럼 세계 최대의 군사국가, 최대의 채무국가가 된 배경에는 유럽의 금융재벌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금융재벌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치가 떨리는 계획에 의한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이들은 유럽금융의 중심 런던시티를 주무르고 이어 미국까지도 자신들의 손에 넣고 주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스라엘 건국의 큰 공(?)을 세우고 세계 양대 대전과 미국과 유럽의 대공항의 배후 인물로 지목 받고 있다. 
또 하나의 암적인 존재인 영국과 미국의 엘리트들이 그들 금융재벌 세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다.
록펠러등의 부호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정치인들 학자들이 의심스런 커넥션과 관계를 맺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이 이들의 비호 아래 대통령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신경제학파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공격을 받고 있다. 신경제학파가 공격 당한다면 가장 먼저 돌을 맞을 인물은 케인즈다. 그의 학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마치 공상소설 같은데도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그를 따르는 신경제학파가 20세기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의 어떤 나라는 아직도 그들의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그의 득세에도 구린내가 나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는 어떤 모임 소속으로 알려져있다. 이 조직은 '사도회'라 불리면 회원들은 천사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조직원 중에는 한 때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라는 여자도 있다. 미국에도 이런 조직이 다수 있는데 그 조직에는 록펠러, 로스차일드 등등의 지원을 받는 젋은 정치인, 경제인등이 가입되어 있다. 클린턴, 카터, 케네디 등도 이들 조직원이 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지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을 만들기도 맘에 안든다고 죽이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며 건실한 나라를 통째로 집어 삼키기도 하는 이 거대하고 사악한 무리들은 이제 세계를 하나의 경제 체제하에 두고 그 뒤에서 자신들의 터질 것 같은 배를 또 채우려고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이 방법은 스스로 양털깍기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일본, 한국에서 그 행태를 보았다. 이 방법에 의해 남미의 나라들이 헤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장 나쁜 경우를 멕시코에서 볼 수 있고 일본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거의 유일하게 한국만이 그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IMF는 자신들이 운영이 성공적이라는 홍보를 위한 우리나라의 경우를 선전하고 다닌다.

IMF의 임무는 국제금융재벌의 공격(헤지펀드나 선물옵션 거래등등...)을 받아 갈증에 허덕이는 양들에게 약간의 물과 풀을 주면서 그들의 털을 깡그리 깍아버리는 역할이다. 그런 목적으로 경제 원조라는 명분으로 감추고 헐값이 된 피핵국의 중요 자산과 기업을 사들여 국제금융재벌들에게 팔아 넘긴다.

  



이들 사탄의 자식들에게 국가도 도덕도 인류도 없다. 돈만 벌면 그만이다. 규모를 산정하기 불가능한 재산을 가지고 200년 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면서도 아직 도 배가 고픈 그들은 세계의 모든 돈을 달러 처럼 채무화페로 만들고 세계공용의 은행시스템을 만들어 전세계인을 노예화하려고 한다. 참, 암담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대출을 하거나 신용카드를 쓰거나 주식을 하거나 선물옵션, 또는 모기론을 빌릴 때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계획을 보기 좋게 물리쳐서 국내 은행이 아직 우리 정부의 통제에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에서 화페의 유통이 증가한다는 것은 채무가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화페는 채무에 따른 이행보증서이기 때문이다. 그 국민들이 하루 하루의 생활과 유흥을 위해 쓰는 달러가 그들의 자녀 또는 손자들이 벌어서 국가에 낼 세금을 미리 담보 잡혀서 나온 돈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소비를 하는 미국인들은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타산지석이 필요하다.
바다 건너 미국인들의 비극은 결코 그 들만의 비극이 아니다. 어떤 세계 인도 우물안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거리가 멀다 뿐이지 세계인은 모두 지구라는 좁은 세계안에 산다. 옆집에 불이나면 꺼지지 않은 그 불은 언젠가는 우리집에 찾아온다.
아~ 그 보다 더 일본의 검은 돈이 들어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차인표는 약 16년전 MBC의 인기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로 유명해진 배우이다.

차인표는 한지붕세가족으로 방송에 대뷰했지만 유명해진 것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서의 카리스마 작열하는 주인공 역활을 하면서 부터이다. 그 후 여러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연기보다는 다른 곳에 더 관심이 많다. 2008년 탈북자 문제를 다른  '크로싱'과 작년의 '돌멩이의 꿈' 등 문제작에 가끔 출연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개신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컴패션과 컴패션 밴드에서 활동중이다. 필자도 TV나 스크린에서 보다 컴패션 행사에서 그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차인표의 첫 소설 '잘가요 언덕'은 10년 전 '훈'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고 느낀 감정에서 시작한 습작으로 부터 시작한다. 당시의 감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몇 번의 수정과 수정가운데 그 열정은 식고 10년이 지나서야 탈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감정만 가지고 쓰기에는 어려운 문제였고 탈북자, 위안부 할머니 등과의 만남 후에야 집필이 가능했다. 

 

용서

수니 할머니는 60여녀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 마을을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자취만이라도 볼 생각에 백두산을 찾았다. 그 곳에는 그녀가 돌봐주던 아기 샘물이가 자신과 같은 노인이 되어 반겨주었다. 그리고 용이가 남겨 주었다는 샘물이를 업고 있는 자신을 새긴 목각상을 받는다. 용이도 엄마별에 가서 엄마와 같이 살고 있을까? 


호랑이 마을은 백두산 자락에 소박하게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여느 마을과는 다른 점이 있다. 호랑이 마을은 호랑이가 많이 산다는 호랑이 산으로 가는 길목이고 밤이 되면 호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아주 예전에는 호랑이가 사람이나 가축을 물어가는 일은 아주 가끔있는 일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대책없이 도 잘 살았다. 하지만 최근에 일본인들이 재미삼아 또 호피를 얹을 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면서 호랑이들이 마을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마을에 나타난다.  차인표의 소설, 잘가요 언덕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엄마와 동생을 물어간 백호에 대한 용서가 있어야 엄마별을 만날 수 있다는 순이에 말에 용이는 처음으로 용서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엄마가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백호를 죽여야 한다며 어른 나이 부터 호랑이 사냥을 한 그이다.

자신의 강제로 끌어가 타국에서 몹쓸짓을 한 일본군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수니 할머니도 아마 용서의 마음으로 살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앤드류 머레이의 하늘문을 여는 기도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프리셉트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초 그러니까 1900년 초반이 씌어진 책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검색한 정보에 의하면 19c말~ 20c초반 영국출신 기독교 영성 활동가이며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직접 대화를 강조한 인물이다. 1900년으로 접어들면서 서구 기독교가 쇠락하기 시작한다. 1800년대 있었던 각종 집회, 세미나를 통해 기독교의 부흥와 초기 교회의 신실함으로 돌아가는 그의 생각이 정리된다. 

저자 앤드류 머레이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는 1828년 남아프리카의 그라프 라이넛에서 출생했다. 스코틀랜드의 에버진대학교와 네덜란드의 우드레이드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184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개혁교회의 지도자로 남아프리카 선교에 힘썼다. 그는 1877년에 웰링턴 선교대학을 세워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주력하는 한편, 1895년의 케직 사경회와 노스필드 사경회 등의 강의로 영국과 미국의 많은 성도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9세기 네덜란드개혁교회의 가장 유력한 인물로서 국제적인 신망을 얻은 복음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개혁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성령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신학은 장로교와 감리교, 오순절 교회 등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약 240편의 주옥 같은 글들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과 기도에 관한 내용이다. 그의 저서는 신앙의 정수(精髓)를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앤드류 머레이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더욱 깊이가 있다. 당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앤드류 머레이의 삶과 그가 남긴 저서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책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4753785'


 

필자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불교같은 타 종교에 비해 대다수의 비기독교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 남들에게 보이는 행동과 눈에 띄게 팽창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으로 생각했다. 특히나 같은 기독교 종파(개신교중에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인 천주교와 비교해서도 거의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 신자나 종교지도자 중에 밖으로 보이는 교회의 규모 공동체의 건물, 교회의 크기나 디자인에 신경쓰는 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런 왜곡된 생각들이 그대로 신자들 사이에 공공연히 전파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과연 밖으로 보이는 집회나. 공동체의 크기가 부흥을 증거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자라면 개인 각자가 부활을 꿈을 꾸며 사는 것이 본질이 아닐까?

하느님을 믿고 부활을 위해 우리가 할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교류가 아닌가? 나와 주님과의 끊임없는 교류, 그것을 통해 늘 새로운 믿음과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독교인의 자세이다. 그리고 자신의 구한 후 주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주님과의 교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늘 하느님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그 분의 뜻이 무엇인가 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대화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뭔가 이루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위급의 상황에서 나를 구할 수 있지만 하느님와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 이기적(?)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본질적인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기도이다.  무엇을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기도와는 달리 그분과의 진지한 대화를 위해 기도한다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도는 대와 그 분과의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다. 기도를 위해 여럿이 모일 필요도 없고 남에 대 기도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기도는 골방에서 하는 것이다.   

대규모 부흥회나 기도회. 예배등은 결국 개인의 영성을 돕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믿지 않는 이들의 구원에 잘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하느님의 대화인 기도를 위한 모임은 결코 아니다. 그런 모임에서 은혜를 받고 하느님과의 대화중에 응답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규모 모임에서 일방적인 기도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분과의 대화가 다 된거란 생각은 문제가 있다.

주일예배나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회에서 몇 시간을 기도한다고 해도 하느님과 나의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집회 중에서도 개인적 대화는 가능하다. 분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골방에서 1:1로 하는 대화와 군중 가운데서 하는 대화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기도하지 않는 죄


저자는 기도에 대해 기도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또 하나의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까지 한다.
아무리 집회에 열심이라도 기도가 빠지고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죄에 대해 속량을 받으러 와서 불경의 죄를 짓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저 우리 뜻을 들어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면 잘못을 따져서 혼을 내는 존재도 아니다. 영생의 단 열매를 주더라도 본인에 맘에 드는 자녀에게만 그 열매를 주시는데 그 뜻은 인간이 바로 알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그 분에게 묻고 답을 얻어야 한다. 묻고 뜻을 듣는 과정이 바로 기도이다. 매우 개인적인 그 분과의 대화 만이 그 분의 뜻을 알고 그분이 주는 열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 리, 열정으로 한 우물을 파라 - CNN 최초의 한국인 앵커 메이 리의 꿈과 도전
메이 리 지음, 박세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90년대 말에 CNN 홍콩 주재원이 되면서 아시아인 최초의 CNN기자로 유명해진 메이 리의 자서전이다. 백인들만 사는(메이 리가 태어나자 지역사회에서는 동양인 아기의 탄생이 화제가 될 정도로...) 동네에서 자란 키작은 동양인 여자아이가 받게 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자란 그녀에게는 늘 남들 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보통은 한국계 아이들은 당연히 잘한다고 알려진 수학과 과학에서 과락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담당교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했고(실제로는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그런 상황은 방송계에 들어와서도 낳아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필자가 추측컨데 그녀는 가정내에서 오빠에 대해 다소간의 열등의식과 애정 결핍이 있었던 같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부모들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성공한 한국인 가정이었다. 웬만한 백인 중상층과 비교해서도 괜찮은 가정이었고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와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럼에도 가정에는 큰 아들을 우대하는 한국인의 전통이 남아있었거 거기에 오빠는 마음만 먹으면 우등생이 되는 실력을 가졌다. 그에 비하면 메이는 공부도 외모도 오빠에 비해 초라했다고 느낀 것 같다.

그녀가 방송계에 몸담은 것도 남 다르게 정열적으로 방송계에서 노력하고 남보다 앞서간 이유를 필자는 여기서 찾았다.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여전히 일에 매달려있고 그녀의 회사는 여전히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투쟁(?)중이고 필자의 눈에는 아직 그녀는 계속 무엇가를 찾고 있고 여전히 애정이 말라있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오빠부부(어린시절 말썽쟁이였던...)가 운영하는 고아원과 직업학교에서의 봉사할동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한 우물을 파라?' 인간? 이 책에서 메이 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가족도 사랑도 일 앞에 우선순위가 앞선적이 없이 일해왔다. 대학 후 오직 방송계에서만 일했고 다른 곳에는 한 눈을 팔지 않았다 방송계에 신물을 느끼면서도 계속 방송일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확실히 한 우물을 팠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한 우물을 파라'는 메시지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살아라' 였다.

ㅋㅋㅋ 건망지게 생각했다. 마케팅적 목적만 가지고 제목을 짓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독자들은 속지 마라~ 이 책에서는 한우물을 파는 것보다. '고난 중에도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해라.' 또한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해라.'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