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 / IVP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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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세계의 정리 후에야 가능한 영적성장

 

 

종교인이 저술했거나 종교적인 입장에서 씌워진 책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읽혀지기 어렵다. 반대의 경우로 특정부류나 계층들 내에서 너무 쉽게 두 경우 모두 종교관련 서적으로 분류되어 선입견을 가지게 되거나 그 가치가 부풀려지거나 평가절하되면서 저자의 의도와 달리 해석되고 내용들이 왜곡되어 알려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필자가 많은 독서량에도 불구하고 종교관련 출판물의 선택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아직 이들 서적의 가치를 올바르게 알아볼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아 선 듯 서가에서 꺼내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연간 독서 목록을 중에 한 권씩 포함되는 이유는 이 책들이 가진 순기능 때문이다. 종교서적은 저술 목적의 특수성(?) 때문에 정독하는 이로 하여금 도덕적인 각성과 일정 이상의 치유효과를 가져다 준다. 필자가 과중한 업무와 책임감에 힘들어 하던 시기에 마음에 담아둔 무거운 것들을 의식적으로 버리게 도와준 '내려놓음' 같은 책들이 그 예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교회나 세속의 삶에서 많은 의무로 마음에 힘들 사람들에게 위안과 도전 그리고 지침이 될 만한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의 의지가 아닌 명령에 순종(?)하는 심정으로 읽었던 책이다. 요즘 업무, 가정생활, 종교생활 그리고 젊은 시절 무척 열심이던 것들에 대해 부담감을 많이 털어내고 살아가는 필자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내용이지만 일단 읽고 나서 얻은 바가 있었다.

 

책의 구성과 몇몇 페이지들을 무작위로 읽고 난 후 첫 인상은 마치 세속적인 자기 계발서처럼 콘텍스트 부분 마지막에 내용의 요약과 스스로 확인하라고 몇 가지 숙제를 내어주는 것이 그 구성에서 다소 세속적인 냄새가 나서 거부감이 들었다 내용에서는 자기의 경험담 위주로 이야기를구성하다보니 주관적인 주장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 즉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빠지기 쉬운 문제의 정확한 지적은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저자는 그가 한때 스스로 빠졌던 오류와 그 오류로 인해 겪었던 영육간의 고통을 고백하고 그 나락 같은 시기를 잘 빠져 나온 간증을 통해 독자들, 특히 교회의 일을 하면서 더욱 빠지기 쉬운 오류와 고통을 예방하거나 좀 더 쉽게 빠져 나오길 방법을 제시한다. (필자의 생각 : 내 스스로 피해갈 수 있냐고 질문하면 너무나 어려운 도전이 될까?)

 

 

 

마리아와 마르타

 

성경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에피소드는 저자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나타낸다. 두 자매는 예수님이 무척 사랑하셨다고 전해지며 친히 죽은 자들 가운데 살리신 나사로의 동생들이며 특히 마리아는 전에 향유 옥합을 깼던 바로 그 여자이다. 예수께서 베다니 마을의 이 남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한다. 성경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예수님와 제자들을 대접하고자 몹시 분주했던 마르다가 주님 곁에서 좀체 자리를 뜨지 않고 언니를 전혀 돕지않는 동생에 대해 예수께 하소연을 하자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좀 더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하신다. 그 말씀에서 여수는 자신과 제자의 접대에 정성을 드리는 마르다, 주님 곁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행동 모두에 대해 상식적인 가치 판단을 하지 않으셨다. 마르다가 하는 일이나 마리아가 했던 행동 모두 중요하고 가치있는 행위지만 분주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마르다의 모습을 안스럽게 생각하신다. 마리아의 선택이 좀 더 좋다고 하신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것이 육신에 편한 일이어서도 아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선택한 그 상태에 매우 만족을 하고 있었고 반면 마르다는 그 상태가 불만스러워했기 때문에 그런 그들 각자의 상태에서 평안한 마리아의 상태가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성취와 성과를 무척 중시한다. 큰 일에서 작은 일,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 그 것이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 분석과 가치판단을 하며 그 성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것은 영에 속한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세기 교회는 그 크기는 키우고 신도수를 늘리는 일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자들의 순수한 노력과 그 열성은 무조건 부인하거나 평가 절하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지금의 교회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과도한 열심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도 세속의 기업들처럼 성과를 중시하다 보니 목자나 신자나 할 것 없이 정작 중요한 것인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깊은 만남보다는 수치와 외향적인 것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외적성과나 성장을 통해 개인이나 교회에 도움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예전이 방법이 영원이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밖으로 보여주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성경은 늘 주의하라고 한다. 밖으로 보여지고 남이 그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 의지의 개입여지가 많아 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하기 시작하면 그 분의 영역은 줄어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어느 것 하나도 쉽게 행동할 것이 없다.

 

 

 

기대기에 족한 큰 기둥

 

자기에게 족한 일을 택한 마리아가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세상의 잣대로 보면 손님을 접대하느라 분주한 언니를 두고 손님 옆에 앉아만 있는 동생 마리아의 행동은 욕을 들은 정도는 아니어도 결코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행동에도 예수의 말씀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리아는 이전에 예수님의 영광을 높이는데 일조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한 바리세인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인이 와서 향유 옥합을 깬 후 그 기름으로 예수님의 말을 씻기고 눈물을 흐르며 머리채로 닦은 일이 있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마리아가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큰 죄를 지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녀의 가족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나사로 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 매우 가난한 고을인 베다니 마을에서도 유난히 어려운 가정이었고 나사로가 죽었던 이유도 영양실조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고 보면 마리아가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죄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마리아는 그 사건을 통해 죄를 고백하고 향유와 눈물을 통해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격이 되었다. 이 사건은 마리아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나사로 집에 오셨을 때 곁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어떤 상태인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볼 때 당시에 마리아는 평온함과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옥합사건(?)을 통해 마리아는 죄의식, 걱정 등으로 채워진 혼돈스러운 마음이 정리되어 평온해졌고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기대어 있었던 것 같다.

 

마리아와 같은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마르다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시중드는 일에 열심이었지만 그 순간에도 몸과 마음이 분주하여 불안을 겪었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겪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수준 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동생 마리아의 상태와 비교해 보면 그 정도에 상관없이 결코 우리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상태이다.

 

 

후유증

 

저자는 자신의 철저한 무너짐을 통해 내적평형 상태를 포함한 내적성장 없이는 아무리 크고 완벽한 외적성장도 헛된 것이라며 책의 중반부 이후 계속 역설한다. 특히 개신교 목사들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입장 때문에 외적성장에 대한 욕심과 자기 힘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욕망에 노출 될 위험이 더욱 크다.

 

그리고 그 후유증도 무척 위험한데 저자처럼 그 피해가 스스로를 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로 볼 수 있다. 그 피해가 가족과 공동체에도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 날 아침 겪은 상태는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병리학적으로는 신경증의 일종이었을 추측된다. 그 중에 남자들에게 더 많이 발견되는 불안증세였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저자에게는 그런 상황이 그날 찾아온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 특별한 일은 매우 적절치 못한 시기에 더욱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적균형과 영적성장

 

외적성장은 그에 상응하는 무게(중압감, 스트레스, 시험)를 동반하는데 이 외적 무게를 지탱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내적인 균형이다 큰 나무는 작은 바람에는 미동도 하지 않지만 엄청난 바람 앞에서는 뿌리 채 뽑힌다. 겉으로 보이는 강건함만 믿고 있다가는 더 큰 바람이 올 때 무방비 상태로 넘어질 수 있다. 강한 도전의 시기나 시련의 시기에 우리는 잡아 줄 내부의 기둥은 늘 만들고 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마음에 중심 기둥을 세우는 방법을 찾고 그 것을 키우는 대신 쉬운 방법인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외적 기둥을 세운다. 그것들은 우리가 세속의 유혹이라 부르는 돈, 명예 등을 포함한 일련의 욕망과 욕구들이다. 이것들은 영원하지도 않고 가벼운 돌풍에도 쓰러져 버릴 수 있어서 기대지 않는 것이 낳을 것 같은 것들이다.

 

영원이 쓰러지지 않는 기둥은 크신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또 지속적인 교재를 통해 그것을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사족 정리되는 않은 생각의 잔뿌리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책의 논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가 겪은 그날 아침의 일은 필자의 경험과 어느 정도 일치하여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필자처럼 치열하지 않게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있던 내용들이었지만. 교회 활동에 열심인 분들과 목회와 교회 사무 등으로 무척 바쁜 목회자들에게는 이 내용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분명 도전이 될 책이다. 당연하게 해야 할 일 못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한 고민도 해보았다. 결론이 날 것도 아니지만 계속 생각해보고 곧 행동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내적균형이라는 문제는 종교를 아직 가지지 않는 분들 특히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들에게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밖으로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고 소비적인 생활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를 가져온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가 쇠하였다는 말은 에너지의 균형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미로 갈수록 점점 자기개발서 같이 되어가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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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 Edition 2
현대카드 외 지음 / 이야기나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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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실 돈 주고 사보기 좀 그렇다고 느낄만하다. 왜냐하면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의 직원 교육용으로 제작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과 후기에도 이야기 되었듯이 직원들만 보려고 만들었다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된 것이다. 


전혀 눈에 안뜨는 소박한 사이즈와  'PRIDE'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박힌 책, 자세히 들여다 보여야 보이는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 라는 문구로 이 책이 무슨 책인지 알 수 있다.


내용을 현대카드가 어떤 정신과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하는가? 직원들이 지켜야 할 의무와 태도 그런 것들을 나열한 직원 교육용 도덕교과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왜 외부인들이 찾게 되는지 알 수 있다.

현대카드는 일반인들오 우리나라 회사 중에서 꽤 독특한 회사라고 알려있다. 현대카드 스스로 자기들이 좀 괴짜라고 엄청나게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의 겉모양만 보더라도 다니고 싶어질 만큼 부러운 시설과 복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제품에서는 카드 디자인 하나 하나에 엄청난 정성을 드리고 남들과 다른 디자인, 남들과 다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꽤 재미있는 짓들을 하는 회사라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실상 현대카드는 직원들은 꽤 힘든 회사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부심을 갖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일하게 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한다.




'자부심 = 격' 


회사의 수준은 결코 매출액, 직원수, 직원들의 평균 연봉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직원과 사회와 그리고 회사가 공존하면서 진정 상생하는 '기업문화 = 회사의 격'이 있어서 오래가는 회사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격있는 회사, 그리고 그 들의 자부심을 보면 마음껏 부러워 하자.


자기 회사(결국 주주와 사주 가족)만 배불리자며 협력사를 착취하는 대기업, 일가 친척들이 작당하여 빵, 순대같은 사업에서 서민들과 경쟁하는 사업가와 그 가족들이 만연한 우리 기업문화에서 이들의 희안한 짓거리는 고무적이다. 무지 무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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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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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 이민자의 고단한 삶에서 세계인의 문화가 되다.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아이러니가 참 많다인생 자체가 미스터리 한 것이니 인생사에서 겪는 소소한 아이러니들 하나 하나에 일일이 가치를 부여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이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을 환상적으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것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 해왔다.

여기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찾은 먼 이국 땅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과 덤으로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려는 몸부림이 한 세기가 지난 후 고급스러운 예술이 된 사연이다그 사연은 이렇다.




외로움이 사무쳤던 남자들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탱고는 원래 남자들끼리 추던 춤이었다우리가 아는 탱고는 남녀가 꼭 끌어안고 추는 형이하학적으로 보면 다소 선정적인 춤이다.그런데 이런 춤을 남자들끼리 끌어안고 추었다면 언뜻 이상한 상상부터 하게 된다그냥 그 장면 자체만 생각하면 우스꽝스러운데 그렇게라도 해야 했던 그 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런 상상은 사려져 버릴 것이다.

탱고그들의 발음으로 땅고는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 유럽의 빈민들이 일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 노동을 하는데 아르헨티나도 미국 못지않게 많은 이주가 이루어진다특히 신대륙에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홀로 온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고된 노동과 적은 임금 그리고 외로움의 삼중고를 겪게 된다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이해가 좀 더 빠를 것이다. 

특히 홀로 건너온 남자 노동자들은 그저 돈을 벌자고 온 이국 땅에서의 외로움이 더 컷을 것이다탱고의 처음은 남자 노동자들이 서로 부둥켜 앉고 춤을 추며 서로의 외로움을 공감하던 모습이었다그러다가 그 상대가 유곽의 여성들이 되면서 연애(?)의 행복(?)과 유흥가 여성과의 연애에서는 거의 필수 코스인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 지금 우리가 아는 탱고의 다소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강해진다처음에는 춤과 그 춤을 위한 음악이던 것이 애잔한 가사가 붙여져서 노래가 된다초기 탱고의 가사를 보면 대부분 위험한(?) 사랑과 실연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심지어 하룻밤 사랑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그 배경에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그 상대가 대부분 유흥가 여성이거나 정상적인 연애와 결혼 상대가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층민에게서 발생했고 그 내용에서는 사회의 평균적인 도덕성을 밑돌았(?)기 때문에 한동안 탱고는 중상층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여전히 노동자들 유흥가 주변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춤이고 노래였다그런데 탱고는 엉뚱한 곳에서 꽃을 피운다.


유럽으로 건너간 탱고

앞에서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 하면서 유럽의 하층민들이 당시 부유한 나라였던 아르헨티나로 노동 이주를 했다고 이야기 했다필자와 같은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기억하는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엄마찾아 삼만리’에서도 이 시대적 배경이 나온다그런데 이 교류는 유럽의 인력이 남아메리카로 일방적ㅇ로 흘러가는 형태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이주 노동자들 중에는 일부는 유럽을 돌아가고 이런 인적 교류의 배경에는 아르헨티나의 축산물과 가죽제품 등이 유럽을 수출되던 상황도 일조한 것이다문화적으로 앞섰던 유럽이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목축업으로 인해 질이 우수한 아르헨티나의 가죽제품은 유럽 멋쟁이들에게는 인기 상품이었다아르헨티나의 제품을 소비하던 이들에게 남미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탱고는 유행이라면 내가 선도한다!’는 사람들에 의해 서유럽에서 유행을 하게 된다서유럽은 문화적으로 자부심이 강한 곳이지만 근세 들어 타 지역에서 수입된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소위 명품 브랜드 중에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디자인은 일본 에도시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당시에 가장 비싼 수입품 중에 하나였던 일본산 도자기의 속 포장지에서 모티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용 가치가 낮아서 도자기가 깨지지 않게 상자 안에 완충제로 사용한 휴지가 세계 여성이 그토록 원하는 명품의 디자인이 되었다에도 시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인 우타가와 히로시케의 그림이 도자기 포장을 통해 유럽에 알려진 것은 이와 관련한 유명하고 신기한 일화이다.  히로시케의 그림도 정작 일본인들 보다는 유럽의 인상화파 화가들에 의해 재발견 된 경우이다.

 

물론 유럽의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탱고와는 다르게 발전한다그러나 탱고라는 이름으로부터 그 원류의 리듬과 춤사위 그리고 탱고의 밑 바닥에 깔린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이민자빈민층이 즐기던 저급한 문화라고 꺼리던 아르헨티나의 중상류층은 파리로부터 돌아온 탱고를 보고서야 자신들 주위 이미 퍼져있던 문화탱고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춤에서 문화로


탱고는 부두 노동자들이 외로움에 서로 부둥켜 안고 추던 춤이지만 이제 탱고는 단순히 춤이라고 부를 수 없다대중가요로 이미 유행을 했었고 탱고를 소재로 한 문학이나 영화도 유행을 했다기존 작품들의 연주로는 더 이상 지속이 어렵게 된 클래식계가 탱고를 돌파구의 하나로 선택을 했다우리가 잘 아는 피아졸라는 탱고가 단순히 대중적인 문화가 아닌 소위 격(?)이 있는 문화에 편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아이러니 하게도 탱고를 길거리 음악 이상으로 변화시킨 주역들은 순수한 남미 인들은 아니었다남미출신 이기는 하지만 유럽에서 배우고 자랐다거나 주요 활동을 유럽에서 한 이들이 이런 활동의 주역 이었다앞에서 탱고가 아르헨티나의 주류문화에 편입된 계기에서도 보듯이 탱고를 만들어낸 하층민들은 정작 탱고의 고급화(?)을 주도하지 못했고 탱고의 세계화에 따른 어떠한 반대급부도 챙기지 못했다그 들은 그 들의 선조가 그랬듯이 그저 탱고를 생활의 하나로 즐길 뿐이다.

 


 

문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우리는 이 책(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들의 삶에 중요한 문화인 탱고를 다시금 재조명하게 된다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밖으로 보이는 것 하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화려한 사람이라면 화려함을 부러워하고 불행한 사람이라면 불행한 부분 하나로 그 사람을 통해 좀 더 가진 자가 누리는 일종의 안도감을 얻는다문화에 있어서도 얕은 지식 하나로 그 나라민족의 문화를 싸잡아서 평가한다사람마다 호불호(好不好)는 있을 수 있지만 자신만의 잣대를 대고 이리저리 잘라 대는 평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는 활동인데 그 것은 어떤 사람이나 문화가 한 가지 특화된 내용 하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이 책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하여 세계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탱고를 알아가지만 이 책이 탱고에 대한 책 임에도 탱고만을 다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삶은 탱고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들은 문학을 즐겨서 많은 서점이 운영되고 대화와 모임을 즐겨서 카페가 발달되어 있다유럽의 파리를 사모하여 도시를 파리처럼 개발하였다그들의 삶에는 과거 목측으로 부유했던 시절의 문화와 독재 시절의 아픔도 남아있다탱고가 가난한 이민자들의 외로움의 몸부림에서 시작된 처럼 명과 암이 공존한다우리는 타 문화를 이해 할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냥 좋아서 즐기는 것도 진지하게 공부하여 몸과 마음 모두로 받아 들이는 것도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어떤 문화를 바라볼 때 어떤 시선을 가지느냐는 결국 개인의 취향이다그러나 단지 귀나 눈의 즐거움을 따라 가기 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며 좀 더 나아가 머리로 이해한다면 어떤 문화 현상도 가볍게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탱고의 본고장까지 답사하며 또 그것을 정리하여 남들과 나누는 저자의 부지런함과 무모함이 무척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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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권오섭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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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당시 국민학생이라 불리던 10세 전후에는 동요 이외에 딱히 알던 노래가 없었다. 가끔 TV에서 듣게 되는 유행가는 있었지만 즐겨 부를 만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까지 아직 음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음악 때문에 충격을 받은 일이 생겼다. 6학년 가을 운동회 때 여자애들이 준비하던 매스게임(단체로 리본을 들고 율동을 하는 것이었다.)에 사용된 음악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어서 너무 놀랬다.

바로 아바의 'Super Trooper'였다. 아바의 곡의 사촌 형의 LP판으로 한 번 들었었지만 기억하기 있지 못하다가 운동회 준비를 통해 이 후 계속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련하게 처음 들었던 때의 느낌이 기억난다. 나중에 당시 친구들의 많은 수가 여러 경로로 아바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필자가 소유한 최초의 것은 LP도 아닌 새것도 아닌 중고 테이프였다. Super Trooper’와 ‘Honey Honey’가 포함된 아바의 앨범이었다. 이 테이프가 늘어나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까지 들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퀸이 대세였던 것 같다. 필자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오신 소니 공 테이프를 하나를 주는 조건으로 퀸을 녹음해준다는 친구에 말에 필자는 또한 번 벽을 느끼게 되었다. ‘퀀이 뭐냐?’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이 ‘포터블카세트’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음향기기를 사면 데모용 매체를 하나씩 주었는데 당시 금성사는 척 멘지오니의 ‘Feel So Good’를 대우전자는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 포함된 데모 테이프를 주었다. 이 두 테이프를 시작으로 필자는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중학교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다. 좀 빠르게 팝을 듣기 시작한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것이었는데 일단 늦게 시작한 만큼 흡수는 빨랐다. 우리 세대라면 거의가 해보았을 일들 예를 들면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주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나만의 앨범 만들기. 레코드 점에 원하는 곡을 적어서 테이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 등등… 

대학생이 되어서야 집에 LP가 생겼다. 동생이 직장에 다니면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도 중고앨범을 몇 장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기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더 좋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의 첫 LP는 정작 선배가 사주었다. 척 멘지오니의 ‘Children of Sanchez’ 앨범이었다. 그 형은 군대가 가기 전날에 이걸 사주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또 당시에는 CD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플레이어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역시 테이프 구입이 더 많았다. 필자가 처음 구입한 CD는 수전 베가의 ‘Tom Dinner’였다. 플레이어가 없어서 4년 후에야 들어볼 수 있었다.

둘째 동생이 음반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집에는 음반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CD는 물론이고 LP도 많이 늘었다. 필자도 직장에서 월급날 팀 동료들과 음반을 하나씩 사서 돌려 듣는 습관이 생겼고 집의 한쪽 벽에는 아예 CD LP만 놓는 장이 들어섰다. 동생은 잠깐 플로스레시브와 해비메탈 담당을 한 후에는 앨범의 대부분이 이들 장르였다. 대부분의 난해한 음악이었고 뉴트롤스, 쉐이드를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재즈음반도 꽤 수집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동생의 재즈 음반중에서 괜찮은 곡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GRP(데이브그루신, 리리트너, 펫메시지) 레이블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필자는 클래식, OST, , 가요를 주로 수집했는데 말랑 말랑한 음악을 싫어하는 동생이 본의 아니게 음반을 정리하면서 내 OST들을 팔아 버리기도 해서 약간의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자의 책은 사실 이전에 몇 권의 입문학과 정치 관련 책을 읽고 나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든 책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책 구성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뭐하기 좋은 음악 100선’ 이런 식의 선곡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 없이 잡아든 책이다.

 

저자는 소위 486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아날로그 문화의 전성기를 겪은 분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요즘 20대는 알 수도 없는 정치적인 격동기를 겪었고 경제적으로는 늘 부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혜택을 충분히 겪은 세대이다.

저자가 지금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충분히 흡수한 순전히 아날로그적 감성과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하는 앨범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서 이런 문화적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소개된 앨범 중에 딱 만반 좋아한다. 필자는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반 정도는 그냥 기계적으로 읽어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나름 필자도 좋아하는 곡이고 또 그 중에 반은 매우 좋아라 하는 곳이라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느낌이 좀 더 다르다. 또 그 중 반은 본가 CD장에 지금도 있고 CD_R 어딘가에 MP3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은 지금은 거의 안 듣는다. 정확히는 요즘 음악을 잘 안 듣는데 그래도 이 곡명들을 보거나 듣는 것 만으로도 이 곡과 관련된 나의 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최근 요행하는 곡들이 20년 정도 지난 후에 어떤 이들의 추억으로 남고 누군가는 여전히 계속 들으면 꼽십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건 아날로그 감성이 가지는 강점 중에 하나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먹고 자라고 디지털 감성을 만들어온 세대로서 그 문화적 풍부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다아날로그 감성을 모르는 세대라면 선배/부모들이 듣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면서 가슴이 따스했던 그 들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볼 것으로 감히 조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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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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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대륙아프리카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도 우리는 붕어빵 안의 단 팥소를 좋아한다붕어빵 안에는 붕어 내장과 뼈가 들어가야 하겠고 최소한 붕어빵에 조금의 생선살이라도 섞여야 이름에 대한 진실성이 있겠지만 누구도 따지는 사람이 없다‘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라는 말은 그냥 웃자고 나온 말이고 붕어빵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의 모순을 빗대는 말로 사용이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 없다’가 의미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프리카자세히 물어보면 들어나는 실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을 알고 있다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럽 바로 밑의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곳에는 흑인이 살며초원과 밀림 지역에 동물의 왕국(?)이라 말한 것이다좋다 그럼 더 말해보라고 하면 아프리카 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검은 피부를 가졌고 등등… 그럼 됐고 아프리카 나라들을 말해 보라고 하면 ‘케냐가봉이디오피아이집트콩고리비아리비아’을 말한 것이다그런데 나라 이름을 나열하면서 머뭇거리기 시작한다리비아는 얼마 전 시민혁명으로 TV에서 자주 봐서 아는 나라이다그런데 수없이 TV에 나오던 ‘가다피’의 얼굴색을 생각하니 리비아가 아프리카 국가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리비아는 분명 현재의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다그리고 인종적으로는 아랍인으로 본다정확하게는 아랍인과 흑인의 혼혈이지만 문화적으로도 아랍권에 속한다우리가 익히 아는 아프리카 인은 피부가 극도(?)의 검은색이다그런데 리비아 인은 그렇지 않다동양인의 피부와 흑인의 피부 중간 정도에 이목구비가 또렷하다그럼 리비아인은 아프리카 인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혼란은 리비아로 끝이 아니다 바로 이웃 이집트를 보자 이집트는 분명 아프리카에 있다그런데 우리가 잘아는 클레오파트라 영화에 보면 신 이집트 왕조의 후기 권력자인 클레오파트를 연기한 여배우는 서양인이다그리고 왕궁의 고위 관리들도 거의 피부색이 갈색에 가깝다물론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면 미국인 배우를 써야 하니 당연한 거 아니냐아프리카인과 동일한 외모에 연기력을 갖추 배우를 어디 찾겠느냐할 것이다맞는 말이다그러나 만일 클레오파트라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중남부 아프리카인의 모습이었다면 로마의 권력자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 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 관념부터 깨보자

  1. ‘아프리카 관련된 뉴스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들인 이집트나 리비아는 정확하게는 아프리카 인의 나라가 아니다국민의 대다수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면 샘 인종이다아랍계 인종에 속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라는 명칭의 어원은 고대 아랍인들이 ‘태양의 땅’이라는 말하던 지중해 남부 지역즉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국한된 명칭이었다.
  3. 아프리카는 동식물의 천국이다물론 아프리카는 여전히 다른 대륙에 비해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 많아서 동식물의 다양성이 크고 개체수도 상당히 많은 대륙이다그러나 우리가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장면들의 대부분의 중부의 특정지역에서 촬영된 것들이다‘마사이마라’세렝게티’‘오카방고’ 등등 중부 또는 중남부 중에서 특정 지역으로 전체 아프리카 대륙에 10%가 될까 말까 할 정도의 지역이다아프리카에는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는 대륙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크기는 매년이 엄청난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더구나 동물의 왕국도 비가 몇 달 동안 전혀 안 오는 건기에는 제 아무리 사자라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기도 하는 곳이다.
  4. 아프리카에서는 천연자원이 많이 생산된다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긴 하다 대륙자체가 지구상의 다른 대륙보다 오래되고 개발도 최근에 시작해서 매장량은 많다하지만 개발 기술이 전무하여 채굴권은 대부분은 서구국가(이 중 대부분은 과거 그들의 식민지배 국가들)의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어서 생산량 중 매우 작은 부분만 아프리카의 것이 된다.
  5. 흑인들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현실이 어려우니 대다수가 빈민층 이하의 삶인 상황에서 청결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공식 실업률만 20%에 육박하는데 안정적인 취업 상태가 아닌 사람들까지 산정해 본다면 수치는 2~3배가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아프리카 인들이 게으르지 않다고 해도 현실에 위안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몇 가지 나열하고 그 진위에 대해 잠깐 나름의 설을 풀어보았는데 그 진위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들이다인종차체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정치/경제 등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 스스로도 타인들의 선입견에 기여한 바 크다.

우리가 알고 아프리카와 실제 아프리카와는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우리(대부분의 비 아프리카 국가들)가 잘못 알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첫 번째 이유는 지리적 고립성 때문일 것이다사하라 이남 지역은 통과하기에 어려운 거대한 사하라 사막은 물론이고 수면증을 일으키는 흡혈 파리가 창궐하는 밀림 때문에 19세기 말까지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였다두 번째는 노예무역에 대한 정당성 부여를 위해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인에 대한 왜곡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유럽의 노예상과 노예를 사들인 기독 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성기 위해 아프리카 인들에 대한 철저한 왜곡을 해왔기 때문이다세 번째는 바로 아프리카인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는 아랍인과 서구인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지식에 의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에는 진정한 아프리카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지어준 이름 –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그 이름부터 진정 아프리카를 대표할 만한 이름이 아니다. ‘아프리카라는 명칭은 아랍인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어원은 태양의 땅이라는 의미이다아랍인들이 지중해 납부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다필자도 앞에서 아프리카의 지리적 고립성을 이야기 했듯이 수면 병 때문에 사하라 이남 지역으로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다지중해에 접해 있는 북부 아프리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집트가 자리잡고 있었고 알렌산더의 정복시기에는 지금의 리비아에는 마케도니아 인들의 식민지가 있었다현재도 이 지역은 아랍계가 주로 거주한다아랍상인들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궁금해 했고 오래된 아랍의 기록에 현재의 킬리만자로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봐서는 소수의 아랍인이 중부 아프리카지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의 지역에 대한 아랍인들의 관점은 호기심 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미개하고 호전적인 종족어두운 밀림무서운 독충과 괴물들의 땅으로 인지하였다이런 선입견은 서구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계승(?)되어 아프리카의 미개성과 사악한 면을 강조하면서 식민지배의 당위성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수단이라는 명칭은 고대 아랍어로 검은 땅이란 뜻인데 검다는 의미가 단순히 아프리카 인들의 피부색만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구약시대에 아프리카인 들의 조상은 갈색 피부였는데 죄(성교를 너무 좋아해서 아프리카 인들의 성기가 크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강요한 선입견이다.)를 지어 피부가 타 들어 갔다는 설명을 하면서 신에게 죄를 지었고 동물 같은 존재인 아프리카 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에는 정말 아프리카가 있었다아프리카라는 이름부터가 타인들이 붙여진 이름이고 그들의 삶도 타인에 의해 정해진 한계가 많았다심지어 정체성까지는 왜곡되었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여 아프리카인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을 정도이다그런데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현실의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을 과거 식민지배 시기와 식민지배를 한 유럽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자신들이 가난한 이유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모두 식민지 지배 때문이라고 한다그런데 아프리카인 들의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의 문제가 온전히 식민지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그런 시각을 가지고 모든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들을 바라보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된다아프리카의 경우는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 이미 노예사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이 것이 식민지배 보다는 더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고 보는데 남녀 젊은이와 어린아이까지 잡아가는 바람에 사회구성 자체를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노예사냥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아랍과 유럽의 노예상인들 보다는 타 부족즉 아프리카인들 스스로에 의해 자행되었다싸구려 물건으로 유혹한 노예상인들이 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넘어가 전쟁포로를 팔거나 물건과 교환할 욕심에 본격적으로 타 부족을 사냥하기 시작했다경쟁 부족의 씨를 말린다는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생존으로 위한 방편이었지만 오랜 동안 타 지역부족에 대한 불신이 컸던 아프리카 사회의 특성은 노예사냥을 계기로 타 경쟁부족과 한 번도 본적은 없는 잠재적인 경쟁자까지 파괴하는 극단적인 사회 현상을 확대 된다현재 아프리카 사회 전반에 뿌리 박혀 있는 부족 중심주의는 이 사건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의 식민지배를 탓하기 전에 노예사냥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 필요해 보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아프리카인들 대다수이다.문제의 해답을 자신들에게서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식민지배를 했던 유럽국가에 돌리면서 자신들의 문제는 덮어 버리고 있다.

예의 바르게(?)도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듯이 아프리카 지역에 막대한 원조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특히 과거 식민지역 국가에는 좀 더 각별한(?) 관계를 가지는 데 이런 각별한 관계 중에는 양국 모두에 나쁜 영향을 주는 나쁜 사적(?) 관계도 있다최근에 이 문제가 불거져 프랑스 정계가 시끄럽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원조는 아프리카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프리카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당장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원조는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인들을 의지 박약으로 만들고 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원조는 아직도 여전하지만 사하라 이남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불행은 독립 직후 보다 더하면 더 했지 나아진 것이 없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아프리카인 들의 뿌리깊은 부족간의 갈등과 바로 뒤에서 이야기할 극도로 타락한 정치상황은 국제적인 지원도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부끄러운 손이고노믹스여전히 어두운 밤.


이고노믹스잘 지은 명칭인 것 같다국가의 경제가 살아야 국민의 삶도 나아지는데…(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경제는 현재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원조는 말 그대로 배고픔을 구제하기 위한 도움이다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원조로 국가 경제를 지탱할 수는 없다또 원조는 타인에 의지에 의한 것이라 언제라도 끊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원조경제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제사회는 어마 어마한 규모의 원조를 아프리카에 하고 있다또 아프리카의 자원을 담보로 큰 규모의 투자와 대출을 하고 있는데도 아프리카의 경제는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있다그 이유는 바로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지배구조에 그 문제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재체제하에 있다최근에 시민혁명으로 독재자가 퇴출된 튀니지리비아 그리고 시민의 불복종 운동으로 다소간 정치적으로 유연해진 이집트 같은 북아프리카 국가도 사실상의 1인 독재정치가 이루어져 왔다아프리카 사회의 특성상 한 부족의 일원이 권력을 잡으면 같은 부족들이 그 밑에서 정권과 경제권을 독점하게 된다심지어 정권을 잡은(?) 부족은 다른 부족의 씨를 말리는 소위 인종청소가 자행 하기도 한다르완다와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국제사회가 경악을 했다.

 

씨족들이 권력과 경제를 장악하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부정부패가 일어난다대통령이 대놓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마당에 장관들은 물론이고 지방에 하급 관리가 집안찬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관청의 경비 하나까지도 부족 사람으로 채우니 비위 사실이 적발이 되도 부족끼리니까 서로 눈감아준다지위가 높으면 높은 만큼 낮으면 낮은 만큼 각자의 분량(?)대로 국가 재산에 손을 대는데 대통령 개인의 부정축제만 해도 웬만한 서구 국가의 일년 예산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이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국제사면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위스 비밀은행 계좌의 예탁금만 산정해도 그 정도인 독재자도 있다고 한다거기다가 아프리카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독재자들의 부정 축재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쯤 되면 오랜 동안의 어마어마한 국제원조와 서방기업들의 투자가 유입되어도 국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구 소련 붕괴 이후 서방사회는 도덕성인권존중투명한 정치를 원조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라에 여전히 원조와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데는 서구 사회내의 어두운 면도 작동하고 있다석유 채굴권만 따내면 되지 그 이익이 유전지역 주민과 생태계 지원을 위해 사용되던 말던 신경을 쓰기 싫어하는 기업들과 부패한 정권이 찔러주는 쌈지 돈 맛에 그들에게 여전히 원조를 하는 정치인은 모두 부패한 아프리카 독재들과 그 부류가 다르지 않다.

 

국제 사회는 아프리카의 저개발 문제에 보다 신중해지고 있다원조 실적 보다는 그 성과 측정을 더 중시하고 던져주는 것보다는 같이 참여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법도 아프리카 인들 스스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아프리카의 문제는 꽤 오랫동안 지속이 될 것이다아니 점점 더 미궁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북아프리카 시민혁명을 보면서 약간의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그 영향을 미미했다재스민 혁명이 성공한 원동력은 학생들이 일으킨 불씨에 시민들이 기름을 지속적으로 부어주었기 때문인데 남아프리카에는 시민계층 즉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 먹고 사는 문제 이외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중산층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아프리카 문제는 우선 국가의 발전과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정치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폭력상황을 타파할 기운이 없다그래서 아프리카 문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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