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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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기억하는가?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이 경악과 분노에 차있던 시절에 마침 출간되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분노에 찬 사회가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불편한 시선을 담고있다. 이 책은 사실 사건, 사고와 직접적으로 나타난 현상들 보다 이것을 두고 양분되어 서로를 할퀴었던 두 집단과 집단내의 반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재난과 사고로 끌어들여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이 책은 에세이였기 때문에 담고 있는 내용의 분량이나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http://fass777.blog.me/1402118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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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필자는 라디오를 통해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솔닛의 책 하나를 알게된다. '이 페허를 응시하라' 이다. 당시에는 이 책이 아직 번역이 안된 것으로 소개를 했는데 최근에 이웃블로거인 그녀생각님과 엘리트 패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생각님이 이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음을 알려주셔서 바로 구매를 했다. 고맙게도 리뷰를 남길 때마다 포인트를 쌓아주시는 반디앤루니스님 덕분에 포인트로 구매를 했다.




 

필자가 이책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사실 엘리트 패닉 때문이었다. 이 개념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면  나오미 클레인의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도 살펴봐야 할 것 같지만 일단 가격부터 부담스러워서 참고 있다. 솔닛의 이책에서도 재난, 재해, 사고시 보여주는 엘리트들의 무능을 넘는 광기를 엘리트 패닉의 한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엘리트들의 부정적인 반응보다는 현장에서 보여지는 재난을 넘어서는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들이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헬리팩스 폭발사고, 멕시코시티 대지진, 911, 뉴올리언스 대홍수 총 5개의 재해와 사고에 대한 소개로 나누어졌지만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이웃 즉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강한 삶의 의지와 이웃에 대한 배려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던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타인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 그리고 그들을 돕기는 커녕 적대시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떤 곳이던 사고가 발생한 후 짧은 기간동안 상호부조와 이타적인 유토피아가 건설되지만 조직이 개입하면 그 유토피아는 깨지는데 어떤 곳에서는 깨진 유토피아로 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역사에서 조차 지워져 버린다.

 

 

 

 

스치듯 지나가는 이런 유토피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는 원인에 대해 저자는 당장에 눈앞에 닥친 생존 문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가족, 동료, 이웃을 보면서 슬프면서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만족하게 되며 가벼운 상처만 입은 자신은 중상을 입은 이웃이나 약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는데 이런 변화자체가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현대인들은 일상의 반복적인 삶에서 파편화되어 삶의 의미를 잊기 마련이고 그것은 늘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재난의 순간 그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고 그일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도 꽤 고무적인 일이다. 

 

가장 불행한 상황앞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이것이 재난과 사건의 현장에서 잠시의 유토피아가 나타는 이유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무서운 병리학적 문제는 돈에 대한 너무나 강한 집착이다. 생존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함 때문에 만들어낸 각종 문명의 이기들, 그것은 반드시 돈이라는 등가물을 요구한다. 그 돈, 그 이기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존에 대한 불안은 끊임없이 내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달리라고 지시한다. 마치 앞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여행쥐 무리같이 말이다. 재해는 이런 행진의 허리를 잘라버린다. 재산이나 권력보다 당장에 삶과 죽음이 중요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그렇게 소중했던 돈보다 시간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답은 의미있는 일들을 하며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한걸음 물러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거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관여한다. 현장의 사람들이 죽음의 기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반면 이들은 오히려 지금 가진 돈과 지금가진 물질적 풍요에 여유를 뺴앗길까봐 전전긍긍한다. 직접 가서본 현장이 아닌 언론에서 편집하고 의미를 부여해 보여주는 소식들은 이런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조직과 군대이다.

 

저자가 예를 들었던 5개의 사건들 뿐 아니라 필자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건, 사고, 재해에서 정부, 언론들이 보여준 대처는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게되는 조직의 문제도 같은 패턴을 가진다. 큰 조직은 어떤 문제에 집중할 자원은 많지만 수시로 변하는 현장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둔하고 경직되어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피해 당사자들, 작은 규모의 비정부기구 그리고 비전문적인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 잦은 상황변화에도 효율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나 군대 등의 대규모 조직은 큰 규모의 질서유지와 보급문제 이외에는 비정부기구나 현장의 공동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자원보급만 잘해주면 현장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나가기 때문인데 문제는 정부는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통제권을 벗어난 다른 조직의 활동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것이 강한 힘을 가진 또다른 조직으로 발전하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를 비롯한 각종 조직과 지역 경제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게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지역 공동체는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 활동에 반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미 2세기도 지난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들 예를 들면 '르봉'의 망령들은 엘리트들에게 피해자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변한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력수단이 있기 때문에 손쉽게 현장에 무력수단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무력수단이야 말로 통제가 쉽지 않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지진, 무기 수송선의 폭발, 비행기와 마천루의 충돌, 허리케인과 홍수은 분명한 재난이었고 많은 인명과 재산을 빼앗아갔다. 그런데 이 고난들은 그냥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과 피해지역에 무엇인가 희망의 씨앗을 남기도 지나갔다. 다만 어떤 곳에서는 잠시 피었다가 짓밟혔고 어떤 곳에서는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저자는 진짜 재해는 엘리트들의 두려움에서 기인했다고 까지만 말했지만 필자는 사실 인간이 지구에서 살면서 만들어내는 많은 것들이 재난 상황에 준한다고 말하고 싶다. 뉴올리언즈에 일어난 재해는 사실 제방이 무너지면서 생긴 홍수로 인한 것이었기 떄문에 자연재해라기 보다는 인재에 가까웠고 해당 지역을 페쇄하고 재난민을 방치하고 지역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방치한 것은 재해/재난이 아닌 범죄였다.  더 나아가 원래부터 단층지대라고 알려진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에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기적인 지진에 노출이 된 것이다. 지진이 나면 냉각기가 고장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사용하던 방식으로 운전하고 지진이 나고 해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면서 원자로 가동을 멈추지 않았기에 일본 동부지역이 피폭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다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도 똑같이 그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런 재난, 재해, 사고의 피해자이면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피해 현장에서 더 다친 이웃을 돕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안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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