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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
헤르만 헤세 지음, 구기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2월
평점 :
데미안은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 때의 추천 도서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평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인지 대부분의 추천도서를 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읽을 생각도 안했다. 그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권장도서를 읽는 것보다는 그림, 당시 어른들의 용어로는 낙서를 하며 공상을 하면서 지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불리는 명작들은 30대에 읽었고 일부는 40살이 넘어서 읽고있다. 늦은(?)나이에 읽은 이들 권장도서는 왜 권장도서인지 이해가 안간다. 청소년 시절에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너무 길고 등장인물의 수도 많아서 따로 메모를 하면서 읽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를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에코의 작품들은 등장하는 명사들을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장면을 그려내기 어렵다. 그런 예들은 좀 더 많은데 열거해봐야 소용없는 짓이고 오늘 소개할 데미안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젋은 세대가 했던 고민들과 소위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의 끝을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 성장기적(Enneagram) 소설로 주인공이 자주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내부에는 꽤 복잡한 사상이 심어진 작품이다. 단순히 성장기적 소설로 간주하고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싱클레어가 말하는 내용들을 살펴봐야 한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아프락사스."
신은 바로 나이다. 라고 싱겁게 내린 결론은 필자를 불쾌하게 한다.
아프락사스라 명명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신이 결국 나였다라고 하는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불러낸 것도 아프락사스라는 신, 자신이 날아갈 결국에 대해 고민했던 과정 역시도 그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왜 애써 아름다운 시절의 종말의 시점에서 굳이 '자신인 신'을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소위 지성의 시대요 후기 산업혁명 시기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 세계대전 이전 세대의 문제인 지나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면서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의 가치로 다시 자기의 이성에 기대는 것일까?
헤세같은 지성이 인간이 가진 한계을 이해 못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자신의 그의 성장과정에서 싱클레어 같은 과정들을 겪었을 것이다. 사실 싱클레어가 카톨릭의 전통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간다는 전개과정이 헤세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헤세는 가족의 전통에 의하면 아버지를 따라 개신교 목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경에 반발하여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청년 시절에 인도를 다녀온 후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프락사스라는 자기 자신'이 인도의 신관과 닮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헤세가 불교도 였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는 것이고 데미안에 불교적 세계관이 녹아들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게 본다면 싱클레어의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때로는 대리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이상한 존재, 데미안은 누구인가? 결국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바로 자신임을 암시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완성된 모습인 데미안을 미완성의 싱클레어가 쫒아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원한 해탈의 존재 즉 성불의 모습이 데미안인것이다. 필자는 데미안을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는 없다. 기독교도로써 해석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는 두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의 주장의 요점은 데미안을 단순히 애니어그램으로 보기에는 헤세의 사상 세계가 보다 고차원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데미안을 출판 당시의 사람들의 인지 상황이나 수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읽히기 전에 부모세대가 좀더 넓은 시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는 책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