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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9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평점 :

일평생 자신이 추구해 온 문학 전집의 형태인 '인간극'에 심혈을 기울였던 발자크가 죽기 3년 전에 발표된 작품-
총 두 권의 두꺼운 분량 속에 1부에서 4부까지 이어진 내용들은 19세기 매음이 유행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인간군상들을 다룬다.
91편의 인간극 중에서 피날레에 속하는 이번 국내 최초 번역작이란 점과 발자크가 방대한 자신의 작품 세계관 속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을 통해 전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주. 조연들이 출연하는, 그래서 273명이란 등장인물들과 50여 편의 전작들이 연결고리를 맺는다.
이번 작품에서 주요한 인물인 범죄자 보트랭은 카를로 에레라로 불리는 사제로 등장하면서 시인인 뤼시앵을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계약으로 파리의 사교계에 재등장시킨다.
여기에 뤼시앵과 사랑하는 여인으로 등장하는 고급창녀 에스테르가 보트랭의 사주로 뤼시앵을 귀족 가문의 여인과 결혼시키기 위해 그녀를 한눈에 본 순간 사랑에 빠진 늙은 은행가 뉘싱겐에게 접근하도록 모종의 계략을 짜는 흐름이 이어진다.
자신의 영혼과 신체적 과오를 신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란 괴로움과 루시앵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마음에도 없는 뉘싱겐에게 자신을 허락한 에스테르의 죽음은 이후 돈에 영악한 뉘싱겐의 신고로 뤼시앵과 보트랭이 감옥에 갇히면서 급물살을 탄다.
이들의 이야기를 두 권에 담아낸 작품 속에 창녀란 의미를 지닌 코르티잔이란 용어에서 발자크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의미 이상으로 19세기 만연했던 고위 계급부터 하위 신분에 이르기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회상을 폭로한다.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에스테라는 여인이 갖고 있던 코르티잔은 어쩌면 정작 이들 등장인물 가운데서 그나마 가장 진실된 모습처럼 보이는 것은 돈을 올바른 방법으로 성취하지 않고 부를 이룬 뉘싱겐, 그녀가 죽은 그 현장에서 돈을 먼저 생각한 것을 보면 영락없는 돈이 주는 향락과 쾌락, 그럼으로써 자신이 이루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이룰 수 있다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뤼시앵은 순수한가?
그 또한 보트랭이 지시한 대로 따르는 인형처럼 에스테르를 이용해 갈취한 돈을 통해 귀족 계급과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쓰는 젊은이요, 귀족부인들 또한 신분적인 체면 뒤에 가려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고 뤼시앵에게 보낸 편지(연서)에 대한 차후 몰려올 사태를 걱정하는 모습 또한 코르티잔과 무엇과 다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9세기 정권이 번번이 바뀌는 과정에서 범법자이자 사제로서 뤼시앵을 향한 동성애를 느껴볼 수 있는 부분적인 뉘앙스를 담아낸 보트랭을 통한 저자의 이러한 방대한 시류 흐름들은 만연체 문장으로 이뤄진 곳곳의 긴 문장 설명으로 인해 쉽게 넘어가는 구성들은 아니나, 그가 그토록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면 파리 사교계란 화려한 명칭 뒤에 온갖 군상들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때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사리욕심을 채우고 자신의 신분을 보전키 위해 서로 결탁하거나 화해하는 모습처럼 이어지는 실상은 웃픈 현실로 느껴진다.
에밀졸라가 보인 자연주의 문학과 대두되는 파리라는 도시 안에서 인간들의 삶을 담아낸 발자크의 인간극 시리즈는 이처럼 귀족부터 도형수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넘나들면서 모든 이들이 성공이란 이름으로 취한 상태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들이 사실적이다.
특히 4부에서 보트랭의 변신은 이것이 추리소설로 변형된 것인가로 생각될 만큼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현 파리의 법이란 권력의 자리에 있는 귀족들을 상대로 통렬히 비판을 쏟아내는 문장들은 서늘함마저 느끼게 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보트랭의 이러한 행보는 사회악의 대표인 그 자신이 사법부를 대표로 한 검사장과 귀족을 대표로 한 코랑탱과의 대립을 통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다는 설정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허술한 점과 귀족들이 한 여인의 생사 여부를 두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 과정 자체를 조소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발자크가 그린 이러한 파리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사교계에서 그들 안으로 침투해 귀족들의 허울로 뒤덮인 겉모습 뒤에 감춰진 은밀한 코르티잔 성격의 모습과 사법부 체계를 농락하는 과정은 다양한 인물의 등장을 통해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과정이 실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번역가의 말처럼 각주 해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원제와는 다른 '사교계'란 말로 바꾸게 된 경위들을 읽는 뒷 편의 해설을 통해 앞으로 미처 출간되지 못한 발자크의 인간극 작품 세계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그나저나 파리 사교계의 난잡한 사랑타령은 진짜 복잡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