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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버스의 극장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하~ 이 작품 속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아니 정도는 어느 정도여야 이해를 하며 읽어나가지, 이겨 뭔 온통 섹스가 거의 대부분 할애를 차지하면서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중도 포기를 해야 하나...
적어도 작품을 접하게 되면 공감이란 감정을 염두에 두고 읽게 된다지만 새버스란 인물의 돌출행동과 예기치 못한 파격적인 행보는 저자의 다른 작품인 '포트노이의 불평'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64세의 인형광대인 새버스, 그는 죽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년의 남성이다.
그가 이런 죽음에 애착(?)을 한쪽 옆구리에 끼고 살아가는 이유의 근저에는 형 모티가 전장에서 전사한 이후부터, 그날 이후 그의 가정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충격받은 엄마와 아버지, 그 자신도 아픔을 뒤로하고자 떠돌다시피 선원으로, 여기저기 떠돌다 손가락을 이용한 인형극 공연자로 살았지만 그놈의 섹스가 발동돼 어린 여대생 추행을 했다는 죄목으로 벌금을 물지 않나, 첫 아내 니키의 행방불명은 그녀를 찾아 헤매는 그의 험난한 정신세계마저 파괴한다.
결국 뉴욕을 떠나 두 번째 아내인 로즈애나와 살기 시작하지만 크로아티아출신 드렌카와 불륜의 행각을 벌이는 행위는 별종의 섹스난장 파티 그 이상을 보인다.
그러던 그녀마저 병으로 죽게 되고 죽음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다시 그녀의 무덤 앞에서 벌인 이상한 형식들은 하!!! 정말이지 못 말릴 익살이자 풍자요 그 외 다른 남성들마저 이런 행동들을 보이니 드렌카의 매력은 죽어서까지 뭇 남성들에겐 화수분이었나?
그러던 차 예전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뉴욕게 가게 된 그, 예전 버릇이 어디 가겠나 싶게 망신당하고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그는 죽을 자로서 묻힐 자리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보인 해학적인 묘사들은 필립로스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글발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 (그나마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 숨통이 열린 듯했다.) 그가 다시 찾아간 집에 도착해 보니 기대했던 아내의 모습은 이내 자신들 부부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모습들을 관찰하면서 더욱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찾은 드렌카의 무덤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그녀의 아들에게 발각되면서 다시 풀어주는 그의 행동에 그 어떤 펄떡이는 강렬한 분노(차라리 나를 유치장에 가둬라는 식)와 여전히 살아있다는 자각이 혼재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7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이 플롯상 간단한 것을 이리저리 많이 들려주는 소설인데 새버스가 겪는 상실감들이 존재한다는, 사랑하는 형, 부모, 첫 아내, 친구, 고발당하는 삶들을 모두 그리면서 보통의 평범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없는 죽음밖에 길이 없다는 자각으로 실천하는 손 관절염에 걸린 노인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다.
그렇기에 새버스란 주인공은 무언가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과 현실에서 함께 살아가기가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가 작품 속에서 내뱉는 날카롭고 통렬한 문장들(일본에 대한 생각들)은 어떤 틀에 맞춰 진행되는 소설형식들이 아니라서 몰입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없었다면 새버스란 인물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작품이 저자 스스로가 살아온 삶을 함께 이해한다면 좀 더 독자의 입장에서 다가가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다.

과감한 변색된 에로티시즘과 염세주의로 가득 찬 새버스가 마지막 문장에서 들려주는 대사는 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과연 그는?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씨발 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가버릴 수 있겠는가? 그가 증오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데. -P723 (갑자기 학~씨~ 부상길이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