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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오랜만에 정통 범죄추리물로 돌아온 작가의 신작, 책표지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내용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그 의미를 알아가며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홍콩 구식 아파트에 속하는 단칭맨션에서 41세의 셰바이천이란 남성이 숯을 피워놓은 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고 방을 수사했을 당시 별다른 정황이 없던 관계로 자살로 마무리될 뻔했으나 무심코 장을 열어본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은 20개의 유리병-
그저 유리병이 아닌 보존액과 함께 신체 절단 부분들이 나뉘어 보관된 두 남녀의 시신으로 밝혀진 사건으로 인해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밀실살인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진실을 향해간다.
20여 년간 방 밖에 나오지 않았던 은둔형 셰바스천, 그가 당연히 범인으로 주목받지만 그의 동창이자 이웃인 추리 소설가 칸즈위안은 극구 친구의 범행을 부인하는데 경찰은 이 내막을 밝힐 수 있을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보이는 작품 속 내용은 망자(죽은 셰바스천의 시선), 소설가 칸즈위안이 쓰고 있는 소설내용, 그리고 현재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여러 정황들을 추적하는 경찰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주요 용의자로 지목된 칸즈위안의 행동을 주시하던 경찰들의 모습과 그런 와중에 칸즈위안의 설득력 있는 범죄의 구성과 추리력은 되려 경찰들의 역할이 그보다 뒤떨어진다는 느낌과 함께 누구도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여러 밑밥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고독과 외로움'이다.
현대사회에서 고독이란 말은 흔하게 다가오는 말이지만 그런 가운데 바쁜 삶 외에도 현재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둔형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자의건 타의로 인한 것이든 간에 그들에겐 현재보단 가상의 세계에서 비대면으로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얘기가 오히려 더욱 믿음이 갔으며 나를 이해하고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작품 배경이 코로나 시대와 그 이후의 변화된 모습에서 갇혀있던 이들의 각자 다른 모습들을 통해 범죄의 발단이 소재로 사용된다는 점은 씁쓸했다.
온라인 만남을 통해 데이트 만남을 갖고 돈을 버는 행위들, 누군가는 세상에 알려진 채로 이름을 남기고 떠나지만 고독을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무명의 사람들의 존재는 세상사람들에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 그렇게 때문에 뒤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의 결과물은 허를 제대로 찔렀다.
알고 보면 등장인물들 모두가 고독한 사람이었고 그들이 서로를 알아봤기에 존재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우정의 모습이 이렇게도 흘러갈 수 있구나를 생각해 보면서 느낀 점들이 많은 것들을 비교해 보는 시간이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칸즈위안의 발언은 현재 법 체계와 사건을 받아들이는 체계와 차별적인 다룸, 법망 안에서 진심으로 법의 해석에 따른 올바른 판단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건을 통해 재판하는 과정에서는 어떻게 발언하느냐와 사건의 정황 관점을 어떻게 달리 바라보게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들이 의미 깊게 다가왔다.

범인의 실체를 쫓아 끝까지 추적한 경찰의 책임감도 그렇고 마지막 진실을 듣는 과정에서 몰려온 여러 가지 감정들은 통쾌감이 있는 반면 그 이면에 감춰진 아픈 이들의 존재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홍콩의 무대로 타살흔적에 대한 반증과 그 뒤에 진실들이 몰아치는 반전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 라는 작품과 함께 읽어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