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녀의 일기
옥타브 미르보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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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옷, 또는 새하얀 옷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르고, 볼엔 홍조까지 깃들인,,,

아마도 영화에서 나오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하녀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미 국내에 상영된 영화의 원작으로 이번에 국내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온 '하녀의 일기'는 기존에 생각하고 있었던 주인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순종적인 하녀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벨 에포크 시대' 의 하녀란 직업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직업적인 것으로 따지면야 그야말로 말 그대로 집 안의 일들을 하고 주인의 부름에 따라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사람 정도이겠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하녀 셀레스틴은 좀 다르다.

 

그녀의 성장 자체가 우울하고 불행으로 출발했다지만 하녀란 직업으로써 갖게 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나가는 형식으로 그려진 책 속의 내용들은 그 시대를 통찰하고 비꼬면서, 때로는 풍자 속에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민마저 불러일으킨다.

 

여러 군데의 집에서 하녀로서 전전한 그녀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시골 마을 메닐-루아에 랑레르 부부의 집에 취직되어 찾아오면서 시작이 되는 이 소설은 하녀로서 그녀가 겪어왔던 여러 가지 오늘날의 면접처럼 여겨지는 장면들을 회상하는 씬부터 하녀와 하인으로서 갖게 되는 주인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루는지에 대한, 그러면서도 신분의 구별과 계급적인 차별에서 오는 그 시대상을 통해서 인간들의 허상들을 제대로 꼬집는다.

 

남편을 위시해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손안에서 쥐고 흔드는 마님과 그 곁에서 헤어질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남편과의 관계는 겉으로는 격조 높은 고귀한 귀족이고 식탁에서 예의를 갖춘 사람들로 보이지만 민낯의 그들은 여지없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구질함을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한껏 차린 드레스 치마 안에는 불결한 냄새로 가득한 여인상의 모습,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자신을 유혹하는 남자들 속에 인간의 진실된 감정을 가지게 되지 못한 하녀란 직업을 통해서 성장한 셀레스틴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하녀로서 부리려는 술수를 이것저것 트집삼아 월급을 깎아 내리려는 노련한 마님들의 술수, 그리고 여기에 시대적인 배경상 국론을 분열시킨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싼 반유대주의와 애국주의의 광풍까지 겹쳐 보이면서 저자의 손에 그려진 당대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문득 '남아 있는 나날'들의 안소니 홉킨스가 생각났다.

성의 구별을 떠나 직업으로서 갖게 된 하인과 하녀의 차이점은 시대를 제외하더라도 과연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주인을 섬기는 자세와 그 하인이나 하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품성들이 어떤 차별성을 갖게 되는지, 결국엔 갑. 을 간의 관계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진행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비약적인 생각일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하 존속 관계, 겉으론 순종하지만 속내는 집 주인을 대하는 깔보는 심성들이 노련한 하인일수록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생 처세술이라고 할까? 오히려 셀레스틴에게 참고하란 식의 말은 당대의 분위기를 알려 준다.

 

"주인들의 바보짓에 불평을 늘어놔서는 절대 안 돼. 셀레스틴. 오직 그런 바보짓만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니까. 주인들이 어리석을수록 하인들은 더 행복해지는 법이야. -P 496

 

마부인 조제프의 노련한 계획과 인생의 방향 전환에 맞춰 충격을 받은 집주인들의 당황함을 드러내는 대목들이 통쾌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셀레스틴의 인생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이 상실된 듯한 당시대의 분위기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인간 풍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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