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평점 :

전쟁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것이 사람의 힘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역사적인 사실 속엔 힘없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견뎌내고 살아오면서 잊고자 하나 잊히질 않는 깊은 상처들, 아쉬움 들, 우연적인 일들까지 모두 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겪었던 시대적인 아픔을 대신 경험할 수는 있지만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에 공감을 할 수 있어도 실제적인 체감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기나긴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전쟁이란 소재는 여러 가지 변형된 주제로서 단골 소재다.
그런 만큼 같은 시대를 겪었더라도 같은 공간이 아닌 저 너머의 그 누군가는 나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의 10년간의 노고를 바탕으로 엮어 낸 작품, 올 2015년도 퓰리처상 수상작을 따끈하게 읽었다.
뭐랄까, 읽고 나서는 생말로를 문득 가보고 싶어졌다.
바다의 조수 간만의 차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겠지만 당시의 시대를 겪어 낸 마리로르의 삶과 베르너의 삶이 머리에 떠나질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은 총 2권으로 나왔다.
1934년을 기점으로 주된 이야기는 전쟁 막바지였던 1944~1945년, 그 사이에 드문드문 다른 연도가 섞이는 형식, 다시 1975년도와 2014년으로 끝을 맺는, 과거의 회상과 기억,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인해 눈이 보이질 않게 된 소녀 마리로르는 194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 있는 박물관에 근무하고 있는 자물쇠 장인인 아빠와 살고 있다.
딸의 눈이 멀게 되자 아빠는 그들의 행동반경을 위주로 작은 모형의 거리와 집들을 만들어 내고 딸과 함께 매일 박물관에 출. 퇴근을 한다.
그냥 출. 퇴근이 아닌 몇 발자국 가면 어디, 다시 왼쪽, 오른쪽 몇 발자국...이런 식으로 딸의 머리에 혼자서도 자립 할 수 있도록 지형을 머리와 손에 익히도록 돕는다.
독일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기운이 돌자 박물관장은 전설적인 133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일명 ‘불꽃의 바다’라 불리는 보석을 보호하기 위해 마리로르 아빠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 손에 모조품을 만들어 분산 시킨다.
독일 군을 피하기 위해 간 곳은 에티엔 작은 할아버지 댁-
할아버지 또한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바 출입은 한 발자국도 못하는 신세, 오로지 가정부 마네크 부인의 차려준 것에 의존하는 상태다.
그곳 거리 또한 딸에게 익혀 줄 심산으로 같은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거리를 헤매는 아빠, 그를 타깃으로 삼아 밀고한 자 때문에 아빠는 박물관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고 딸에게 집 모형과 그 집안에 소중한 모조품을 숨겨두고 떠나지만 강제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된다.
남겨진 이들의 삶은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
여기 또 한 소년이 있다.
독일 탄광지대에서 일하다 숨진 아버지로 인해 여동생 유타와 '어린이들의 집'에서 자라는 베르너 -
그들이 정해진 길은 한정된 탄광으로 가는 길 외엔 그 어떤 희망조차 보이질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해 낸 라디오를 수리하면서 듣게 된 프랑스 말로 된 어떤 남자의 과학적인 상식,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지만 그 근원지는 오리무중이다.
특출한 머리로 눈에 띄게 된 베르너는 곧 우수학생으로 차출이 되고 연이어 교수의 배신으로 어린 나이에 통신병으로 전장을 누비다 생말로 지역까지 오게 된다.
그야말로 한 편의 어떤 인생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전장의 피해 속에서 한편은 그 피해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자의 모습, 한편은 전쟁 당사자국 국민으로서 자신의 삶 자체를 벗어나기 위해 알고도 모른 척, 오로지 목표만을 지향해 온 삶의 모습이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 현장 속으로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안내한다.
여기엔 '붉꽃 바다'라 불리는 보석을 찾아 헤매는 나치 협력자 룸펠이 등장함으로써 또 다른 위기감을 조성해 주는데, 전쟁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투영이 된다.
그 둘을 이어주는 라디오가 있었기에 단 한 순간의 만남을 갖지만 그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아련함과 쓸쓸함, 왠지 모를 지워지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전해준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 레지스탕스 역할을 자처했던 사람들의 단합, 그리고 그 소녀의 위급함을 구해 준 소년, 전쟁이 끝난 후 22년이 흐른 뒤의 남겨진 사람들의 생활은 전쟁이 주는 트라우마를 숨기고 살아가는 아픈 사람들의 모습과 심경, 그리고 남 일 같지 않게 여겨지는 한 시대를 관통했던 세계전쟁의 잔상이 남긴 일들을 저자는 때론 상상의 날개를, 때론 현실적인 삶에 대한 모습을 교차해주면서 보여준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모두 피해를 입는다는 '붉은 바다'란 이름을 지닌 보석에 대한 의미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소설 속의 한 시대를 음미해주는 것은 아닌지, 18살이 되도록 자신의 뜻에 의한 대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베르너가 단 한 순간 그것을 저버리게 된 결단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전쟁 속에서 피어난 한순간의 인연을 그린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결정해 버린 빛 이외에도 수많은 보이지 않는 빛이 있음을, 그 빛은 어느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그 빛 자체만의 의미가 있음을, 그렇기에 그 의미를 알아버린 베르너는 그것을 따라 가지 않았나 싶다.


아픈 사람들의 고통과 사연, 그 모든 것을 겪고 살아감에도 여전히 과거는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여전히 떠나질 않게 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내야만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