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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책을 읽다보면 인연이란 것이 있긴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때가 많다.
우연히도 어느 한 구절을 읽었는데, 이에 연관된 책을 곧이어서 접하게 될 때나, 지금처럼 작년 이 시기에 우연찮게 다시 읽어보게 된 책을 만나게 되는 인연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면서도 아마 나와는 무척 연대가 깊은 책이 아닌가 싶은 맘이 드는 것이 또 이상하리만치 여전히 읽어서 기억에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설렘을 던져준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책은 작년 이 시기에 조카에게 선물해 주려다가 내가 먼저 읽게 되면서 시작된 우연은 알다시피 그레고리 팩의 주연으로 더욱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원작에 버금가는 영화란 것이 사실은 쉽지만은 않은데도 남주인공의 잘생긴 외모와 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소설을 끝으로 은둔에 접어든다.
더 이상의 좋은 소설을 쓸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마침 이번에 전 세계에 동시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그녀가 고령임을 고려해 볼 때 엄청난 용기와 필치에 대한 기대감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흔히 말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와 다른 피부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는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냐에 따른 사회적인 비판과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자화상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스카웃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여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그려진 이 소설은 변호사 일을 하는 아빠와 그녀 위로 오빠인 젬, 그리고 이웃 친구 딜과 함께 겪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회상의 형식이기에 작은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와 은둔하면서 살다시피 하는 이웃인 브래들리란 백인을 두고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순진무구한 그들만의 세계가 가슴 깊은 감동을 준다.
시대적인 배경 자체가 현재와는 다른 1930년대의 미국의 남부 앨라배마 주의 작은 도읍인 메이콤이란 장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필력은 지금에 비교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느낄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여전히 편견과 흑. 백의 갈등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내재된 용광로 같은 미국의 현 시점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 준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P 174
다시 읽어도 찡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 대목 하나만으로도 저자가 무엇을 드러내놓고 싶어 했는지, 오히려 편견의 눈으로 바라만 보던 사람들을 도우려했던 흑인 톰 래빈슨과 아서 브래들리란 존재는 피해를 주지 않는, 오히려 앵무새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아빠의 말처럼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한 글귀는 시대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만의 독선과 사회적인 공감대에 편승해 나조차도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흐려질 때마다 되새겨보면 좋을 글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아빠의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이 고른 균형감각을 유지해나가면서 소신 있는 행동과 말들은 저자가 그려온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니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파수꾼’이란 신작으로 곧 만나보게 될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주인공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뭣보다 앵무새 죽이기와는 또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줄 지에 대한 궁금증이 오랜 공백을 깨고 신작을 발표하기까지 고심했을 저자의 의도가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타 출판사에서 읽었던 문장이 어린 소녀의 고백처럼 ~다로 끝나는 문체의 여운으로 바뀐 만큼 새롭게 읽어볼 독자라면 고전이 주는 맛을 느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