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사가 사랑한 수식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평점 :

기초학문 중에 아직까지도 친해지지 못한 것이 있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하는 수~학!
학창시절 수(數)에 약했던 나에겐 수학시간은 그야말로 천년의 시간으로 비교될 만큼 싫었다.
미적분이니, 기학이니, 루트, 로그함수, .....
그 시간만큼은 빨리 지나가길 빌었던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숫자에 약하다.
그런만큼 수를 다룬 책이란 점에서 오래 전 알고는 있었지만 언젠간 읽겠지 하고, 머리 한 곳에 저장시켜둔 책을 읽게됬다.
조카의 선생님이 극찬하며 꼭 읽어보라고 했다는 말을 서점에 같이 갔을 때, 이 기회를 놓치면 기약없이 흘려보낼 것 같단 생각으로 잠자코 있었던 느긋함이 돌연 조바심으로 변해버린다.
세 사람의 삼각형태를 유지하며 그려내가는 이 이야기는 특이한 소재로서 아마 많이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한 때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교수까지 지냈던 박사의 집에 '나'가 일명 가사 도우미로 집 안일을 도우러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60을 넘긴 듯한 박사는 특이한 병을 가지고 있다.
형수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뇌의 손상을 입어 기억에 대한 장애가 있는 것.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란 메모를 양복에 붙여놓고 지내는 그는 80분이 지나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가령 매일 같은 시간 방문을 해도 처음 본 사람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재에 틀어박혀 온통 수학에 대한 생각만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내는 그-
그가 오로지 표현해내는 의사 소통 방식은 수식(數式)을 이용해서 말 할 때뿐이다.
미혼모인 자신과 자신의 아들(박사는 아들의 머리모양을 보고 루트란 이름을 붙여준다.)과 함께 보내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을 통해 수(數)에 대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정답이야. 자 보라고,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매사를 이런 식으로 리셋으로 변해 가기 전에 대화를 통해서 우정과 배려, 그리고 박사와 같이 할 수있는 것을 모색해나가는 모자간의 행동들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박사 자신이 알던 시절로만 기억되는 야구선수의 등판번호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 만드는 작가의 수에 대한 인식이 놀랍기만 하고 아마도 생각컨대 수학을 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않고서야 이렇게 수(數)를 통해 그저 소수, 정수, 무한수로만 알던 수에 대한 정의를 완전수라든가 소수, 우애수란 이름으로 붙여가며 또 다른 수학에 대한 것을 달리 생각해보게 하기란 어려울테니 말이다.
2004년 제1회 일본서점대상과 제55회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일본을 휩쓸고, 다시 개정판으로 만나게 된 이 소설을 통해 박사는 모자를 통해서 또 다른 수의 개념과 확신을, 모자는 박사를 통해 수(數)가 지닌 많은 의미있는 뜻과 그 안에 숨어있는 무한대의 기쁨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어떤 큰 틀의 사건없이 잔잔하게 흘러가게 만든 작가의 글 솜씨에 왜 진작 읽어보지 못했을까 하는 시간상의 아쉬움을 던져 준 책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잔잔한 동화같기도 하고 만남과 이별을 하는 과정을 끝내는 글이 참으로 감동으로 꽉 차게 만들어 준 소설이다.
박사를 내가 만났더라면 혹시 모르겠다.
수학에 관한 거부감으로 꽉 차있었던 내게 사랑스런 편지처럼 들릴 수도 있었을 학문이 되었을텐데 하고도 말이다.
겉으로 보기만 판단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식의 배려와 행동이 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있는지 등에 대한 인간관계를 수학이란 학문이 지닌 속 깊은 의미를 통해 보다 넓게 포용할 수있는 기회를 준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