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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나니 우선은 머리가 띵해오는 것이 멍한 기분이 든다.
뭐랄까? 어쩔 수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랬을까?
인형 '희'에게만 말을 건네고 사건 그 이후로 변해버린 모든 사람들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잠자리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어떻게 이 글을 써야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대상들이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백지를 연상하게 하는 그네들의 심성에 어른들과 시대의 가혹한 색채 때문에 더렵혀지고 때 묻고 더 이상 순수해질 수만은 없는, 그래도 뭔가가 일어난 것은 알겠는데, 왜 그런 일이 우리에게 해당이 될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어린이의 시선은 때론 읽었다는 것을 후회하게 하기도 하고 다른 느낌을 가지게도 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일련의 일들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 줄 수없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삼악산이라 불리던 곳에 개발로 마을이 들어서며 삼악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 삼악동'이란 원이름보다 '삼벌레고개'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삼악동-
그 곳에는 세 군데로 구분이 지어져 세 분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 ,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들.... 이렇게 불렸고 그 중에서 중턱에 자리잡은 우물 앞에 있어 우물집이라 불리는 '김순분'의 집이 배경이다.
우물집 바깥채에 세들어온 새댁(효경)네 가족들, 세들어온 집에 아이들은 두 딸이며 큰 딸 영(13 살), 막내 원(7살), 그리고 집 주인인 순분네도 같은 동갑의 두 아들인 금철과 은철이 있다.
동네 계주로 사람들을 끌어다가 돈 놀이를 하는 순분네의 사는 모습과 그 주위를 둘러싼 가게사람들, 당시 식모로 불리던 사람들의 생활상들은 어릴 적 익히 들어오던 풍경과도 흡사하게 일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반듯하고 깍듯하게 자신 교육을 시키는 새댁의 교육방침 속에 원이와 은철은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며 일명 스파이 놀이를 하며 지내는 모습들이 유머가 섞이면서 그들 나이또래의 순수함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원이의 아버지가 간첩으로 잡혀가면서 밖엔 신사 입은 두 사람의 감시가 시작되고 이내 새댁의 집은 말할 것도 없고 금철 때문에 사고를 당한 은철의 집까지 모두 마을에서 외면을 당하게 된다.
아버지가 죽은 시체로 돌아오고 아버지가 땅으로 묻힐 때 비로소 사태의 어두운 면을 자각하게 되지만 엄마마저 정신 이상이 오게 되는 막막한 당시의 시대상 모습들은 영, 금철, 원, 은철까지 모두 예전의 모습들이 아닌 모습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책 제목인 토우의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흙으로 만든 인형의 집?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의미로 이렇게 제목을 지었나? 를 생각하며 읽게 되는 이 책은 아픈 시대를 경험해가면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한 성장통을 그려나가고 있다.
아버지가 묻혔을 때 바로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근심 모두 놓아버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는 것인지, 마음이 아픈 엄마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자처함으로써 인간이 아닌 가슴 속의 한 켠에 허물어지다 못해 쓸어담을 수조차 없어진 상처투성이 흙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말처럼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맘 속이 흙으로 변해버린 인형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지...
읽고나서 그 의미의 착찹함과 원이와 은철의 이별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파오는지 작가의 앞.뒤의 연결 문장들이 착착 감기면서 울다 웃다하는 원맨쇼를 하게 한다.
가족 밖에 없고 가족만이 모든 것을 감싸주는 안식처임을, 너무도 어린 원이에겐 이젠 오로지 인형이자 동생인 '희' 밖에 없는데, 어쩌자고 작가는 그렇게 모질게도 슬픔을 넣어주었는지...
부디 언젠가 행복하고 밝은 모습으로 원과 은철이 먼 훗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일텐데 원의 곁엔 그마저도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