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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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학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무겁고 진중한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거장으로서의 토마스 만의 작품만 하더라도 토스토예프스키 못지 않은 진중함과 어렵다는 느낌에 읽는 속도도 독자 나름대로 끈기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문학적인 흐름은 추리 스릴러로서도 유명세를 타는 젊은 작가의 작품들도 많다는 데서 독일다운 문학이 주는 맛에 길들여진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나로서도 처음 접하는 W.G 제발트 작품이다.

국내에선 이미 몇 작품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처음 접어든 이 책만으로도 그가 어떤 느낌의 문학을 쓰는지에 대한 윤곽을 잡아가는 데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흔히 접하는 문학의 종류 중에는 여행에 관한 전문적인 가이드 성격의 책이 있고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단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글이 적힌 에세이를 접할 수가 있는데 이 책은 저자 자신이 겪는 여행과 기억에 대한 느낌을 독특한 필치로 적어 놓은 책이다.

 

총 4개의 이야기 구성으로 이어지는 책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탕달, 카프카, 그리고 그 외에  단테와 발저,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2세, 그릴파르처, 카사노바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흐름을 유지한다.

 

1800년 5월의 한 가운데에 나폴레옹이 지휘한 전쟁에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스탕달이라고 알려진,  본명은 앙리 벨의 이야기인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이 첫 장부터 등장하고 그 안에서 스탕달은 그가 지은 '사랑에 대하여'란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일련의 여인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로 인한 상으로(?) 받은 평생지기 매독과 함께 한 여정을 그리면서 슬쩍 작가 자신도 그안에서 함께 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어서 '외국에서', 그리고 뒷이어지는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 그리고 마지막 '귀향'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이 스탕달, 카프카의 발자취,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를 기억하며 오랜 만에 고향을 찾아가 자신이 살았던 여관, 바로 그 거실에서 투숙하며 지나온 세월의 흔적과 기억에대한 회상을 반추하며 그린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흔히 남미의 문학을 마술의 리얼리즘이 가미된 특징들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들 가운데 이렇게 현실과 환상속에서 자유자재로 자신을 들어가게 하고 빠져나오고, 그러면서 독자들은 읽으면서 여전히 과거와 현재의 분명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이건 현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작가의  그 만의 글 방식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시간으로 다시 그 장소를 방문했을 때의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 머릿 속에서 간직되어 온 기억이 확실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님과 동시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를 생각나게 한다.)남미의 문학처럼 이미 죽은 사람들의 환영을 보게됨으로써 느끼게 되는 현기증, 그리고 그 감정들에 대한 충실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낸 걸작이란 생각이든다.

 

 내 경우엔 마지막 장인 귀향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작가의 자전적인 것들이 들어가서 그런진 몰라도 앞 장의 스탕달, 그리고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들이 거쳐간 여행지와 자신이 1980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그 당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하게 하는...) 달리 방문한 장소에 대한 기억도 좋았지만 귀향 편은 어린 시절의 뭔지 몰랐던 ,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죽은 이들의 모습,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에서 나온 「사냥꾼 그라쿠스」를 제대로 보여준 현실 세계의 실존 인물의 등장은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과도 비슷하다는 연상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어느 책은 읽더라도 끝까지 읽는데 힘이 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웬지 모르게 어려우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저자의 하나하나 문장에서도 어느 것 하나 메모를 하지 않을 수없는 단조로우면서도 그 안에서 맞다는 광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글의 흐름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제발디언'을 양산해 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은 다른 종류의 많은 문명의 혜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성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더 간절하게 갈망할 수밖에 없는 키마이라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오직 타인의 육신에서 본성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결국 그것과 멀어지게 될 뿐인데, 왜냐하면 사랑은 스스로 만들어낸 통화에 의해서만 부채 상환이 가능한 열정, 즉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허상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_「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 P27

 

한 편의 명화 소개코너로도 자릴 잡을 수있는 그림에 대한 설명부분과 함께 실제 작가는 스탕달과 카프카 사이를 오고가면서 자신이 접한 환영과 그 안에서 한없이 흘러가는 기억의 파편들, 그리고 다시 현실의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 답다라는 말 밖엔 형용할 수없는 한계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전체 4개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지어서 생각될 수있는 글의 구성은 여행문학의 진수라고도 할 수있겠단 생각과 함께  사고로 너무나도 우리 곁을 떠나가버린 그의 자취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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