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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평점 :
왕의 길이란, 생사의 경계, 그 칼날 위라는 것, 이었다. - p 11
권력이란 무엇인가? 를 놓고 볼 때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고 그 미래까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적이 곧 동지가 되며 동지라도 뜻만 달리한다면 바로 적으로 변해버리게 만드는 그 권력이 무엇이건대, 역사를 통해서도 친 혈육, 부자지간이라도 그 매몰찬 비정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있을까 싶다.
역사에서 기록되는 영조와 사도세자인 이선(李渲)의 부자간의 사이는 불행했다고 할 수가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멀리하고 툭하면 선위를 양위하겠다는 발언에 모든 신하들과 왕세자 자신은 엎드려 물리시길 원하게끔 만드는 영조의 정치적인 노련미는 젊디젊고 아버지의 뜻에 거슬리지 않고 사그라들어 살아야했던 강인했지만 당파와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을 물리칠 힘이 없는 시대의 불운아, 바로 사도세자였다.
이 책은 사도세자가 1762년, 조선을 뒤흔든 왕실 최대의 비극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있기 2년 전, 장헌세자(훗날 사도세자)가 온천 행궁 중 장마로 인해 한강을 건널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을 보러 나온 백성들의 물밀듯이 밀려오는 형상은 강변을 길게 따라 길게 누워있는 거대한 용, 임금의 용, 교룡(蛟龍)이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p24
노론의 힘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영조로서는 노론의 무시못할 힘을 제어할 수없었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사도세자는 온천행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제왕의 길이 무엇임을 깨닫게 되면서 장인이자 노론이 실세로 대두되는 홍봉한과 대척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저 밖에서 백성들의 거대한 용을 보았습니다. 그 용은 임금도 세자도 노론도 소론도 관심이 없습니다. 진정한 정치는 그 용을 두려워하고 그 용을 안온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 하나 죽고 사는 것으로 바뀌는 건 없습니다. 노론과 타협한다고 바뀌는 건 없습니다. 하루가 뜨겁고 하루가 차가운 것으로 바뀌는 건 없습니다. 그 용을 증명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이며 정도(正道)입니다. 저는 이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것이 저의 정치입니다.” -p212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사도세자인 사위를 두고 오로지 당파의 이익과 자신들의 지위보장유지에 우선시한 당 시대의 사대부들의 그룻된 권력욕은 끝내 혜경궁 홍씨와 , 그리고 다른 뜻 있는 세력들의 음모 앞에서 결국 죽게되고 마는 비운은 사도세자의 삶이 실존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인 살인을 업으로하는 광백과 을수, 소내시로 등장하게 됨을 알리는 갑수, 비운의 무장 황율과 그가 사랑한 여자 개울의 인물등장까지, 크게는 궐 내에서의 핵심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궐 밖에서는 이에 영향을 미치는 백성들의 한(恨)까지 모두 곁들여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1) 뱀과 같고 몸의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넓적한 네발이 있다는 상상의 동물. 가슴은 붉고 등에 푸른 무늬가 있으며 옆구리와 배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눈썹으로 교미하여 알을 낳는다고 한다.
(2)
때를 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교룡에 대한 뜻이다.
일찍이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무엇인가에 눈을 뜬 사도세자가 노론,소론에 모두 휩쓸리지 않는 정조대에 이른 탕평책에 대한 뜻을 굳힌것을 물고기가 제 물 만나듯 그런 정치실현을 했더라면 정조대에 와서는 그런 짧은 정치생활과 인생을 좀 더 누리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백성의 뜻을 알고는 있었으되, 그 교룡이 펼치는 세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죽은 사도세자의 안타까운 삶이 다시금 이 책을 통해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역린([逆鱗]..영조에게 있어서의 약점을 빌미로 아버지가 제 손으로 자식을 죽게까지 만든 이 소설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역린"의 시점인 정유역변(정조 암살 시도)가 일어나기까지 전의 상황을 그린 책이다.
저자가 영화 역린의 시나리오로 작가로서 우선 제 1권이 나온 것이고 영화에서 보여질 이야기들은 제 2권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빠르게 읽히는 호흡에 따라서 2권도 같이 출간이 되었더라면 책 속의 내용과 영상미의 비교를 해 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왕이 되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
그때 이산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p 301
어린 나이에 제 눈으로 아비가 스스로 당신을 버려야만 네가 살 수있단 말을 듣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엄마,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를 모두 용서할 수없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혼돈 속에 눈에 비치는 것만이 다가 아닌 어두운 궁궐 내의 보이지 않게 조여오는 살수들의 물리침을 영화 "역린"에선 과연 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