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호순은 이상한 결혼식을 했다.

24살의 나이에 만난 유부남과는 근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만남을 가져오면서,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방여사가 병으로 별세하자, 절에서 초대한 사람없이 콩볶듯이 한복차람으로 서로 간략하게 치른 식이었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들어간 날-

그녀는 정말로 내가 사랑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를 의심하게되는 한 남자를 보게된다.

 

첩첩히 쌓인 이중, 삼중으로 된 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그 문을 들어갈 때마다 남자는 열쇠를 가져와 열어준다. 그리곤 집 안에 채광이란 채광은 모두 차단한 채,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그의 첫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다섯 자식들에게 제대로 소개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아버지의 여자로 데면데면, 아니면 모른 채로 넘어가는 세월이 시작된다.

 

 집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오랜 세월 당신이 가꿔어 온 모든 것을 도둑맞을까, 도우미 아주머니 외에 잠을 자지 않고 집을 지키는 아주머니까지 두는 그의 전혀 이해하지 못할 행동 속에 그녀는 그와의 부부로서의 인연을 하나의 운명이란 생각에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이 쉽사리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스란히 다섯아이를 거둬들였던 두 번째 부인, 또한 유부녀 상태에서  어렵사리 결혼생활을 하던 차에 이 둘의 관계를 알게되면서 두 여자사이는 미묘한 어떤 기류가 흐르게된다.

 

하지만 남자는 말한다.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해라." -p68

 

그래서 그녀는 3년 간의 짧은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모든 활동을 하고 싶고 나가고 싶은 맘에도 여전히 자신을 구속하고 관찰하는 남편 곁에서 자신의 결혼관을 굳히며 살아간다.

 

오로지 정원의 나무와 잡초들을 뽑아내는 일과를 거치면서...

 

한편으론 그토록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아가고 싶었던 남편의 인색한 돈 씀씀이와 나이차가 많은 것에서 오는 타인의 시선과 자신과의 괴리를 여실히 느낀다.

 

- 삼십 년의 나이 차이는 일상 깊은한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녀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하지만, 남편 앞에 놓인 시간은 '무엇을 하기에도 아까워,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할 만큼' 절박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시간을 '둘로 허리 내어' 남편이 아까워하지 않을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p240

 

우리나라의 많은 작품을 남기고 타계한 김동리와 서영은 작가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신문에서 봤던 기사도 생각나고, 많은 나이 차를 넘어서 문학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간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었던 이야기의 기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서영은 작가가 남편이 타계하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 철저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있는 느낌을 써 내려간 자전적인 소설이다.

 

자전적이라고 한 만큼 솔직한 그녀 자신의 결혼생활을 글을 통해서 풀어나간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두 남녀 주인공의 뜨거운 사랑의 대사가 아닌 묵직한 사랑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묵직한 사랑도 세월의 흐름과 두 번째 부인과 자신과의 어쩌면 모녀지간이라고 생각될 만큼 서로간의 생각과 미안함, 그리고 남편에 대한 부인의 생각을 그녀 자신이 듣게 되면서 같은 처지이되 또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그와의 결혼생활을 펼쳐보인다.

 

 근 짧은 3년의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뇌졸증은 그녀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보이고 만다.

 

의식잃은 남편 곁에서 얼굴을 처음 본 친척들, 자식들, 의사들, 그런자들의 결정으로 남편의 치료와 간호가 결정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소리없는 외침으로 말한다.

 

-당신이 자식들에게 비겁했던 만큼, 세상에 비겁했던 남큼, 당신 인생에 있어 가장 위급한 때에 당신 곁을 아내란 이름으로, 불꽃같은 의지와 사랑으로, 지켜줘야 할 아내의 입지ㅏ 참으로 구차스러워졌다는 사실을?-p281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은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여러 번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말 할것도 없거니와 부부간의 인연도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나이 차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한 때는 그의 곁을 떠날 결심을 하고 연락을 두절한 상태에서 찾아 온 그에게 따귀를 맞으면서 그녀는 사랑의 확인이 아닌 운명임을 깨닫고 그와의 사랑을 이어가지만 현실 속의 그는 완고하면서도 나약하며, 인색한 남자이면서 그녀의 자리를 확신시켜주지 못한 유연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운명적인 사랑을 짊어지고 갈 것을 결심, 모든 것을 그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지만 사랑이란 둘레에는 이마저도 허락지 않은 채, 그 찬란했던 꽃들은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인의 눈으로 보게 되는 시선까지 흘러내렸다.

 

시종 담담하다 못해 남의 일 보듯 그려나간 이야기 자체가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해도 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작가의 감정을 배제한 채 최대한 그려낸 이야기여서 그런지  더욱 사랑이란 말과 부부간의 사랑, 운명, 주위의 시선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그 모든 긴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왔던 결혼생활을 통해 작가의 작지만 소리없는 강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사랑은 밖에서 찾아오는 길과 안에서 찾아나가는 두 길이 있다. 안에서 찾아나가는 사람은 절대로, 밖에서 찾아오는 길을 걸어나갈 수 없는 것이다.’ -p205

 

스스로 책임진 사랑의 결실을 담담히 내뱉은 말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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