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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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다들 삶의 의미만 궁금해할 뿐, 아무도 죽음의 의미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평범한 금요일 보그스타바이엔 가에 있는 은행에 복면을 한 강도가 침입, 여자 은행원인 스티네 그레터가 있는 곳으로 가, 현금을 요구한다.

은행지점장이 현금을 주게 되지만 범인은 스티네 가까이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그 곳을 유유히 빠져 나간다.

은행에 녹화된 CCTV와 앞의 편의점 CCTV에 녹화된 것을 토대로 범인의 행방을 쫓는 가운데, 해리는 연인인 라켈이 자신의 아들과 친부 사이에 양육소송권에 대한 싸움을 위해 모스크바로 날아간 가운데 전 여친인 안나의 전화를 받는다.

예술활동을 하는 그녀와의 만남을 꺼려했지만 그녀의 초대를 받게 되고 그녀의 부탁으로 공용주택 키의 복사를 부탁한 것이 있으니 올 때 해리의 이름으로 신청했으므로 갖다 줄 것을 부탁 받는다.

하지만 안나가 초대한 만남 후의 기억은  해리 그 자신의 기억속에 희미한 상태로, 마치 숙취에 젖은 현상을 보이며 고민하고 있을 때 안나가 죽은 채로 발견이 된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지만 해리는 왼손잡이인 안나가 오른손에 권총이 쥐어진 상태, 구두 뒷축에 감춰진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자살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면서 홀로 사건에 뛰어든다.

한편 여전히 용의자 수색에 실패를 하던 경찰은 1980년대 오슬로의 은행강도와 현금수송탈취에관여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태인 집시출신의 라스콜 바제트를 만나러 그가 자수하고 현재 수감중인 감옥으로 , 그의 도움을 얻고자 가게 된다.

 체스와 손자병법에 통달한 듯이 보이는 그에게 된통 당한 심리의사와 경찰과는 달리 해리는 그가 안나의 삼촌이란 사실을 토대로 그와 정보교환을 제시하면서, 해리는 안나의 살인용의자에 대한 것을, 라스콜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게임을 시작한다.

안나의 또 다른 연인이었던 기업가 알르네 알부를 용의자로 점찍은 해리의 집요한 수사과정은 뜻하지 않게 라스콜이 지목한 범인이 자살이란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해리는 이제 라스콜에게 안나를 죽인 살인범의 이름을 대줘야만 하는 상태인데

 너무나도 기다렸던 요 뇌스뵈의 신작인 네메시스”-

제목이 의미하는 바처럼 복수의 여신을 뜻한다.

사건의 진행상황이 긴박 그 자체로 흐르고 이 책엔 이 사건 외에 전 작품에서 나왔던 파트너 엘렌의 죽음의 배후 범인색출에 따른 또 다른 사건을 갖고 모든 상황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하려는 열성파의 모습을 시종 긴장감을 조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책을 놓게 하지 않는다,(역시 요 뇌스뵈이다.)

복수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부여하길래 이렇듯 죽길 원했던 사람이나 그에 해당하는 앙심의 대상이 된 사람들조차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서 의미상 복수겠지만 말이다.

 총 세 개의 사건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복수심이 맞물리는 교묘한 설정은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사람들인데도 이런 인연으로 엮이고, 거기에 따른 각자의 복수행태가 드러난다.

(진짜 롤로코스터를 보는 듯 하다.)

집시라는 민족이 갖는 떠돌이생활의 뒤엔 인종차별적인 멸시와 그들의 역사가 말해주듯, 그들 나름대로의 몸부림에 찬 역사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드조(집시 외의 일반인을 지칭)와 어울리지 못하는 세상, 거기서 뛰쳐나와 사랑을 갈구했지만 참된 사랑를 얻지 못한 안나의 삶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복수의 여신, 그러고 보니 복수도 자살의 흔한 동기라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누군가의 탓이고, 그러니 자살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거지…. P 131

그렇다면 라스콜에 대한 해리의 동료이자 비디오 감식관인 베아테는 복수의 또 다른 행보를 보인다.

자신의 아버지 죽음과 연관이 있는 라스콜에 대한 복수심은 복수의 그 이상을 넘어서 용서라는 것을 한다.

라스콜은 자신과 안나, 그리고 형인 스테판과의 관계를 통해서 복수내지는 속죄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 감옥에 감으로써, 어찌 보면 바깥 세상을 전두 지휘하는 노련함을 보이면서도 집시들 특유의 전통을 거스를 수 없는 결단이 필요함을 해리로부터 듣게 되면서 그 자신 또한 복수라는 무형의 본질을 내려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속죄가 필요해, 베아테. 자네도 마찬가지야. 난 말할 것도 없지. 라스콜도 그렇고. 속죄는 씻는 행위처럼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야. 조화이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적 균형이지. 그 균형을 우리는 도덕성이라 불러.” – P541

그렇다면 엘렌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전 작품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반가웠을 듯) 해리가 취한 유력한 용의자이자 동료인 인종차별주의자인 톰 볼레르에 대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이 책의 끝 말미에 일련의 해결과정을 시작하려는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지만 복수의 여신은 다음을 기다려 달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생각과 인간의 정신상태의 불완전함에서 나오는 갖가지 행동패턴들, 그리고 진정으로 해리의 인생에서 거쳐간 세 여인들 중 비로소 자신이 사랑하는 세 번째 여인인 라켈과의 사랑 만들기 과정이 다음 편에서 희망적인 세레나데를 부를지, 연신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 책이다. (이미 다른 책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둘의 관계를 알 듯,,)

동양에서 말하는 팔자라는 것이 있다는 말에 비쳐볼 때 해리의 팔자는 정말이지 무던히도 있는 고생, 없는 고생을 하는 팔자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자신의 몸이 성치 않을 정도로 개에게 물려 죽을 고생을 하질 않나, 전혀 뜻밖에 독자들의 허를 찌른 범인과의 대면현장에서도 자신의 몸을 스스로 자해하는 그의 불 같은 성격을 보면 , 정말이지, 다음 시리즈에선 이젠 편히 두뇌를 쓰긴 쓰되 읽는 독자들에게 마음을 편하게 해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사건의 핵심이었던 열쇠의 행방과 추적을 통해서 숨통 조였던 사건의 진실을 앞, 뒤 번갈아 가며 다시 한 번 내 나름대로의 추리를 해 보게 만든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 번 쾌감을 느꼈다.

국내 출간의 순서가 약간 변동이 있기에, 요 뇌스뵈의 해리홀레 시리즈를 읽어 본 독자라면 그간 나왔던 인물들의 이름들이 친숙한 면도 있겠고 , 처음 대하는 독자라도 간략한 사건의 개요 정도를 알게 해 주는 문구들이 있기에 별 어색함이 없게 읽을 수도 있다는 점이 요 뇌스뵈의 친절성(?)이 아닐까 싶다.

사회는 우리에게 살아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워주고 따라서 자살을 비난하게 만든다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를 숭배한 것으로 보아 안나는 분명 그리스 철학자들의 의견을 지지했을 거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죽을 때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거든. 니체도 개인은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충분한 도덕적 권리가 있다고 했어. 그리하여 자유죽음이나 자발적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 에우네는 검지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안나는 또 다른 도덕적 딜레마를 대면해야 했어. 복수. 그녀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했는데, 기독교의 윤리는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대변해서 복수해주는 위대한 존재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되리라. 그거야말로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완전한 복수 행위지. 국제사면위원회감이라고. –P596~597

복수에 대한 의미를 위의 말처럼 정면으로 콕 찍어 말한 작가의 의도가 분명한 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이다.

복수를 통해 모든 것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을, 우리 인간들은 사랑하는 그 무언가를 놓아버리고 통곡과 후회, 연민 과거로의 회귀를 다시금 열망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네메시스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여전히 음악이 곁들인 설정의 장면연출은 음악을 하는 작가의 재주를 십분 활용해 다시 독자들에게 그 사건현장으로 빨려 들어가게하는 소용돌이 역할을 함은 물론, 각 차트의 소 제목이 사건구도에 맞아떨어지게 만든 작가의 노고가 엿보인다. 인물들의 이름이나 지역적인 이름들이 낯설게 읽히기는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나도 사건현장이 벌어진 오슬로의 구석구석을 책 속의 지도가 아닌 현장을 누비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뒤의 번역가님의 글을 읽으니 오슬로 3부작 시리즈로 불리는 만큼 다음 책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저버리게 하지 않는 요 뇌스뵈에 중독된 독자인 나는 아직도 읽고 났음에도 목마르다.

 

***** ***** 사족을 붙이자면 여자 은행원의 이름인 스티네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깊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글쎄…..?

레오파드에서도 스티네란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진 몰라도, 이 참에 물어보고 싶다.

스티네란 이름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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