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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도쿄 도심의 그늘, 신주쿠에 위치한 허름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는 전직 건축가이자 지금은 노숙자인 마스다 게이조란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기다린 한 의뢰인으로부터 부탁받은 명함을 내민다.
의뢰인의 이름은 전 고교야구선수였던 우즈미 아키라-
자신의 의붓누나가 죽은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정말 자살로 죽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내내 갖고 있던 차에 자신 마저도 괴한에게 테러를 당하고 위험한 뇌 수술을 거친 후 사와자키에게 본격적인 의뢰겸 수사를 맡기게된다.
자신의 동료 파트너였던 와타나베가 일억 엔이란 돈과 마약을 훔쳐 달아났고 이를 잡기위해 사와자키를 주시하던 신주쿠 니시고리 경부, 조직 폭력배인 하시즈메의 눈길에도 아랑곳 없이 사와자키는 당시의 사건을 거슬러 발로 뛰기 시작한다. (대단한 집요함과 체력의 소유자일세!)
사건의 발단은 아키라가 다니던 미타타 상고 야구부에 투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졸지에 투수로 경기를 치르게 된 아키라가 뜻밖에도 경기를 잘 치러 우승 대상으로 지목되던 학교와 맞붙으면서다.
누나로부터 일부러 져달라는 승부조작의 권유, 이렇다 할 말도없이 (거의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임) 경기는 졌고 라커 룸에서 아키라 가방에 들어있던 돈이 발견이 되면서 사건이 커지고 다행히도 무혐의로 벗어났지만 누나는 그 후에 자살, 병마에 든 엄마의 죽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여전히 아키라의 머리에 떠나질 않는 숙제였다.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사와자키는 누나의 자살을 목격한 사람들을 수소문하면서 자살이라고 증언했던 사람들의 말 속에 뭔가 일치하지 못한 헛점을 알게되고 누나가 사귀었던 사람이 일본의 전통예술 노의 종가로 일컬어지는 오쓰키류 집안의 오쓰키 유리란 여성이 있었단 사실을 알게된다.
거듭된 눈에 보이지 않는 육체적인 협박을 당하고도 냉철한 사와자키는 두 여인의 뒤바뀐 운명과 죽음을 밝혀내는 과정이 하드보일드의 거장답다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흠뻑 빠져 읽은 책이다.
시니컬하고 냉철하고 담배를 물면서 때론 짐승의 눈길로, 때론 차분하고 친절한 이웃 집 아저씨 처럼 가끔 터져주는 바람빠진 유머를 날리는 시와자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싶다.
흔히 소재로 채택이 되는 스포츠계의 승부조작, 그 뒤에 숨겨진 도박으로 인한 빚으로 인해 빠져나올 수 없었던 아키라 아버지의 한과 뉘우침, 고모부로서 몰상식한 행동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신조유스케, 그리고 수 많은 승부와 명성을 한 순간에 모두 잃게 된 후지사키 겐지로 전 감독, 동성애, 폭력배들과 와타나베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딸의 죽음을 감춰야만 했던 오쓰키 가문 사람들의 이중성들이 사와자키란 인물 하나로 인해서 모두 드러난 정황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역시 사와자키야~ 란 말이 나오게 만든 플롯의 촘촘하게 짜인 망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다시 한 번 들게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여기서 밝힌다면 읽는 맛이 떨어지기에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린다. )
물론 이 구상을 하고 글을 써내기까지 작가는 머리가 터질지경이었을진 몰라도 그런 노력으로 독자들은 이 맛에 읽는 것이 아닌가?
서로 다른 사연으로 죽은 두 여인인 유키와 유리-
두 사람의 인생의 종말이 끝내 모두가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죽음이 아닌 (죽음 자체를 생각한다면 모두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 눈 감고도 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긴 잠을 잘 수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안타까움도 있다.
진실을 밝히고자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위축되며 살아 온 아키라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서의 후련함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인생의 양면의 동전이 던지는 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우오즈미 아키라는 가까운 곳에 있는 절실한 하나의 '왜'에 얽매어 십일 년을 살아왔고, 결국은 더 많은 '왜'를 떠맡아버린 모양이다. 젊은이들이 걷는 길은 늘 그렇다. 살아 숨쉬는 인간에게 생기는 수수께끼는 답이 하나뿐인 책상 위의 수수께끼가 아니기 때문이다. -p557~558
두 전작(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내가 죽인 소녀)에 이어서 오랜 만에 출간된 책이라서 그런지 한국의 사와자키를 기다린 독자들에겐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챈들러만의 느낌이 나면서도 사와자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와 느낌을 이번에 다시 한 번 느낀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가려진 두 집안 사람들의 한 순간의 결정으로 인해 오랜 세월을 자신의 자리에서 편히 눕지 못했던 두 여인은 이제 정말로 안녕~ 기나긴 잠이여를 할 것 같다.
*** 후기를 대신하여 쓴 작가의 센스있는 짧은 글!
역시 제 버릇 못주는 직업병을 가진 사와자키를 보는 단시간의 즐거움도 꼭 누려보시길...
물론 다음 작품도 손꼽아 기다려지게 하는것도 당연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