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책 중에서 시보다는 문장이 길게 흐르는 글을 많이 접한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나 산문집 같은것들, 그리고 짧은 글 속에 모든 것을 소설 이상의 글 흐름으로 내포하고 있는 시집을 많이 접하진 않았다.

 

 요절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시로 유명한 류근 시인이 오랜 공백을 깨고 나온 산문집을 냈다.

 

그런데 이 산문집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처음엔 막막했다.

순수하다 못해 깨끗하고 여린 시를 생각한 시인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면 시종 조낸과 시바의 말 연발이다.

 

 배가 고파서도 술 먹고 가까운 지인들과 어울리면서 술 먹고(마시고의 개념이 아닌 먹고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 , 후배들, 그리고 술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 들비와의 생활도 별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 어찌보면 나태하고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는 책이다.

 

자신이 뜻하고자 하는 문장의 의미를 잘못 알아들은 하숙집 아주머니 때문에 질리도록 시래기와 생활해나가는 일상 속에서도 가까운 문인들의 도움과 체질적인 신체적인 아픔 속에 책 읽기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 현 시대을 살아가는 정신적인 배고픔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시인들의 통합적인 모습을 볼 수있는 책이다.

 

 그나마 해학적으로 픽픽 웃음이 유발되는 것은 동화작가를 꿈꾸는 집 주인 아저씨와의 대화이리라.

 

 온전한 삶 속에서 각기 다른 고통을 자신만의 단어로 해소하려한 시인의 글은 도대체 뭘 의미하면서 읽어야하나를 연발하면서도 책을 놓지 못한 것은 간간이 보여주는 사진과 시 때문이었다.

 

 제목에서처럼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걸기를 바라는 것처럼 , 류 시인도 자신을 둘러싼 고통과 해학, 이해할 수없는 정치세계의 모습 속에서 그나마 다가올 희망을 붙들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글 전체 중 하나라도 빠뜨릴 수없었던 조낸과 시바는 책 편집과정에서 원문을 쓸 당시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살리기 위해 저자와의 협약 아래 최소한의 범위에서 의도적으로 허용한 것임을  밝혔다는 문맥에서 알 수있듯이 , 실은 심성은 여리고 나약한 본인 스스로가 세상의 둘레에 휘둘리지 않으려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마음의 문을 걸어잠근 것은 아닐런지...

 

 불안을 극복하고, 공포를 극복하고 오늘날 바야흐로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람들 보면 킥, 웃음이 난다. 우울을 극복하고, 절망을 극복하고 날마다 바야흐로 새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 보면 캑, 목이 막힌다.

 그들이 극복한 것은 불안도 공포도 우울도 절망도 뭣도 아니다. 그들은 다만 가벼운 핑계들을 잠시 알고 있었을 뿐이다. 가벼운 느낌들을 잠시 붙들고 있었을 뿐이다. 

 불안과 공포, 우울과 절망 같은 것들은 극복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과 불안을 깨닫는 것은 다르다. 공포를 느끼는 것과 공포를 깨닫는 것은 다르다. 

 우울과 절망이 느낌이라면 그것은 곧 지나간다. 하지만 불안을, 공포를, 우울을, 절망을 깨달아버린 거라면 그것들은 절대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불안과 공포, 진정한 우울과 절망은 깨달음의 세계다. 가벼운 느낌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한 번 깨달은 것이 무슨 수로 극복될 수 있겠는가.

 극복된 깨달음은 가짜다.- 본문 중에서

 

그럼에도 시종 언어가 가지는 찬미를 반역하면서까지 조낸과 시바를 둘러대는 시인은 밉지가 않다.

 

속 반가사유

 

 

아주 쓸쓸한 여자와 만나서

뒷골목에 내리는 눈을 바라봐야지

옛날 영화의 제목과 먼 나라와 그때 빛나던 입술과

작은 떨림으로 길 잃던 밤들을

기억해야지

 

 

김 서린 창을 조금만 닦고

쓸쓸한 여자의 이름을 한 번 그려줘야지

저물지 않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난을 저주하는 일 따윈 하지 않으리

아주 쓸쓸한 여자의 술잔에 눈송이를 띄워주고

푸른 손등을 바라보리

여자는 조금 야위고

나는 조금씩 흩어져야지

흰벽에 아직 남은 체온을 기대며 뒷골목을 바라봐야지

내리는 눈과 지워진 길들과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의 검은 칼자국

 

 

아주 쓸쓸한 여자와 만나서

조금은 쓸쓸한 인생을 고백해야지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그 모든 것이어서 슬펐던 날들을

기억해야지

쓸쓸함 아니고선 아무것도 가릴 것 없는

아주 쓸쓸한 여자의 눈빛을

 

 

한 번 오래도록 바라봐야지

뒷골목 몹시 서성거린 내 눈빛

누군가 쓸쓸히 바라봐야지

아,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그 만의 독특한 시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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