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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평점 :
인간은 역사의 한 굴레속에서 삶을 살다간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세상에서 살다 가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역사란 것이 인간끼리의 서로의 이익과 상호 다툼 속에 결코 순탄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나온 사실을 토대로 배운다.
2001년 5월 4일-
나의 아버지 안토니오가 살던 양로원에서 아버지가 자살로 마감했단 통보를 받는다.
양로원 사용료 일수 초과로 34유로를 더 내란 소리와 함께-
그 때부터 저자인 나는 아버지 안토니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내 자신과 하나가 된 아버지의 모습으로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안토니오(아버지)는 땅뙈기 하나라도 더 내 땅으로 만들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담을 쌓고 둘레를 쳐서 내 땅임을 표시하는 동네 사람들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농사에 매달리지만 이런 삶을 원한것은 아니었다.
부모 몰래 돈을 가지고 도시로 나오게되고 운전면허증까지 따지만 도시는 도시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에 의해 실망, 연이어서 군대 영장으로 인한 입대를 거치고 스페인이란 나라의 온갖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역사적인 용광로 속에 한 삶을 살아낸다.
살아낸다는 말 자체가 수동적이긴 하지만 안토니오가 어떤 대야망의 이상을 가지고 '아나키스트'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의 왕정폐지와 제 1공화국 수립, 다시 제 2공화국 수립에 이은 프랑코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에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되는 삶에 염증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의 뜻과 부합된 동료들과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생활을 거쳐서 삶의 현실에 안주 할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되자 끝내는 세상에 타협이란 명목하에 다시 프랑코 정권이 있는 고국, 스페인에 돌아오지만 그 곳에서의 삶이 고단한 것은 예전의 과정과 마찬가지였다.
한 때 자신과 같은 동료애와 형제 이상으로 다져진 사람들 중에도 이런 자신들이 갖고 있던 아나키스트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고 프랑코정권에 돌아선 그들을 보는 느낌, 그리고 자신의 신념자체를 드러내지 않길 원하며 지금의 삶이라도 만족해야 함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토니오는 더욱 삶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자신의 결혼생활의 불행과 더불어 양심에 가책이 되는 직업에서 오는 그릇된 행동에 괴로워 하던 끝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로 결심한다.
아내와의 헤어짐, 그리고 스스로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그 곳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마저 하나 둘씩 세상을 버리면서 안토니오는 더 이상 삶에 대한 애착과 그 동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행동에 나선다.
스페인의 복잡한 현대사를 거쳐간 안토니오, 즉 저자의 아버지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역사와 많이 겹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역사 한 가운데도 이런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한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란 내력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려한 한 소박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뿌리를 내리고, 그 여파가 끝내는 자살을 함으로써 자유로워짐을 느껴가는 안토니오란 인물을 통해서 저자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념과 경제의 고통 속에 살다간 것처럼 자신 또한 비록 민주주의란 체제로 온 시대를 살아가지만 이 민주주의란 체제가 갖고있는 하나의 모순에 자신도 당하면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에필로그에 적어놓는다.
15년간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의 죽여주길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던 아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내가 아버지가 되어 그린 이 무명의 아나키스트의 삶을 통해서 비록 자유로운 삶을 살기위해 자살을 한 안토니오를 바라보는 입장이 그 자신에겐 하나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한다.
때로는 긴 글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지는 짧은 장면이 오히려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픽 노블 형태로 만들어져 2010년도 스페인에서 상을 받은 이 책은 온갖 다양한 채색이 두드러진 다른 컬러플 만화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세세한 당시의 시대상 변화의 모습, 나무로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 양로원의 동료가 뚝딱하면서 아기자기하게 방 안을 꾸며놓는 모습등은 친밀감은 물론이요, 아픔의강도, 인생의 쓸쓸함, 이념이 인간에게 어떻게 삶의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수작이다.
그 어느 누가 안토니오의 삶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저자는 "하나의 존재와 다른 하나는 으스러지게 껴안는 형태인 '융해'의 생각으로 이 책을 만화와 글이 섞인 형태로 내게 됬다고 썼다.
분명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삶과 내가 아버지 주체가 되어 바라보는 삶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시종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려나간 한 인간의 삶 투영의 모습은 역사를 관통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깊은 심금을 울려줄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어보면 후회하지 않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