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키 바트만 - 19세기 인종주의가 발명한 신화
레이철 홈스 지음, 이석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1789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르키 바트만- 

사르키란 뜻은 작고 귀여운사람이란 뜻이다.  

그녀는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오빠 넷, 언니 둘인 형제를 둔 막내였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소몰이꾼, 가축지기였다.  

때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이권경쟁에 희생이 되던 시기를 틈타서 그 곳에 살고 있던 코이코이인들은 호텐토트라 불리면서 낙동.목축에 종사를하던 종족으로  산인이라 불린 부시맨으로 수렵과 유목생활을 하던 종족으로 같이 살고 있던 시기였다.  

식민주의 쟁탈전에 희생이 되면서 종족들의 생존은 그들의 터전을 벗어나 백인들 밑으로 농사를 짓거나 사르키의 아버지처럼 사냥안내지기가 되어서 일을 해 근근이 벌어먹고 살던 시기에 사르키는 솔카르란 약혼자와 약혼식을 올리던 때 백인정찰대에 약혼자가 죽고 아버지마저 일하던 중 죽게되면서 끌려가게된다.  

그녀는 같은 흑인으로서 자유을 얻은 , 그러면서 던롭이란 영국의사 군인의 밑에서 일하고 있던 피터 세자르손에 넘어가고 그의 남동생부부의 입양아를 돌볼 보모로서 노예처럼 일하는 시종으로 살아가게된다.  

영국군대가 있던 술집에서 자신만의 고유의 음색과 악기연주, 춤으로 뭇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되던 중 군악대 대원과 사랑에 빠져서 그와 동거를 하게되고 이어서 아이를 낳게되지만  아기는 운명을 달리하게되고 남자도 떠나게된다.  

던롭이 상사와의 불협으로 영국으로 발령이 나자 던롭은 세자르에게 사르키를 이용해서 돈 벌 결심을 하게되고 서류조작으로 밀항에 성공,영국에 입성하게된다.  

 당시 영국의 피커딜리의 유행풍조는 기형인간을 다루는 오락사업으로서 실물인간전시가 유행하던 곳이었기에 자신과는 다른 피부색을 지닌 흑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때였다.  

이를 노린 던롭에 의해서 아프리카적인 치장으로 무대에 서게 된 사르키는 일약 유명한 인사가 되고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음악과 춤,악기공연을 선보이는 생활을 하게된다.  

 이에 노예폐지제를 주장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재커리 매콜리는 그녀가 자의에 의한 선택으로 이 일을 하게 된 것인지, 노예제에 묶여서 이 일을 강제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법정소송을 걸게된다.  

던롭과 세자르의 약삭빠른 대처에 법원은 그녀와의 대화에서 그녀가 그들과 동등한 계약에 의해서 일정한 계악금과 고향에 돌아갈 돈을 주겠다는 계약을 했고 자신도 이 곳에 남길 원한다는 말에 매컬리의 패소를 인정하게된다.  

 이후 던롭은 죽게되고 마지막까지 고향에 가게될 희망의 보루였던 그가 죽자 사르키는 실망에 쌓이던 중 세자르와 파리에 가게된다.

 그 곳에서도 역시 열광적인 호응으로 일약 유명한 사람이 되지만 이미 몸은 술에 절고 세자르가 고향에 빨리 갈 목적으로 공연 시간을 연장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그 곳에서 사르키를 유심히 보던 레오란 박제사겸 공연기획자는 세라르에게 그녀를 자신에게 팔 것을 제의하고 세자르는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서 사르키는 이국에서 철저히 혼자의 몸이 된다.  

 악독한 레오의 치밀한 계산하에 연신 술을 마시게 되고 공연의 시간도 늘어나던 차에 레오는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그녀의 전시조건을 제시하게 되면서 그녀는 사흘간 그들 앞에서 누드로 서게되는 수모를 겪게된다.  

 그 동안 유럽탐험가들에 의해서 탐미의 대상이었던 소문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거대한 소음순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고자 했던 그 사람들은 강한 거부를 내보인 사르키에 의해서 외면당하고 그런 수모를 겪은 후의 사르키는 시름앓다 1815년 12월 29일에 사망한다.  

 곧 이은 조치로 인간에 관한 지식축적을 위해서란 핑계로 그녀는 퀴비에에 의해서 생식기와 뇌가 병에 담기는 과정에 처하게 되고 그녀의 유해는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근 100여 년간을 현재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의대상으로서 남게된다.  

 2002년 남아공의 두 지도자의 힘으로 영구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사르키는 이후에도 여전히 갖은 소문과 묘비 근처가 훼손되는 가운데서도 역사적으로도, 그들의 나라사람들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이 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커다란 엉덩이, 이상하리만치 긴 음순을 지녔다고 생각한 사르키에 대한 유럽인들의 당시의 생각은 자신들과는 현저히 다른 동떨어진 어떤 외계인이란 이미지를 갖는다.  

 현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DNA의 발달과 사회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탓에 피부색의 차이는 인종이란 말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그들이 그 당시에 갖고 있었던 그녀의 허벅지 사이의 두툼한 호텐토트족의 여인이라고 상징 될 수있는 음순을 가려주는 앞치마살이라고 불리던 그 신체적인 조건도 허구의 대상임을, 그래서 당시의 무모한 어떤 그릇된 생각때문에 살아서는 전시의 대상으로, 죽어서도 묻히지 못했던 한 비운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그릇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어쩌면 사르키란 여인이 살았던 시대는 그들이 정작 터를 이루고 살았던 진정한 자신들만의 땅에서 이민족들이 쳐들어와 생계가 막연해지자 투쟁내지는 중세의 농노처럼 끝없는 삶의 핍박을 살아가게 만든 식민주의 피해자요, 인종주의란 말의 의미로 자신들과 그들간의 뇌의 차이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한 데서 오는 오만함과 비열함, 그 속에서 속절없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다 간 사르키의 인생여정이 닮겨있기에 읽는 내내 가벼울 수만은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때론 역사의 한 단면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이하다고 해야하나 할 정도로 다른 발전된 면을 보이는 것도 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의 귀족서부터 매춘에 이르기까지 각종 계급에 속한 사람들마저 그녀의 엉덩이를 보면서 내심 관음증같은 현상과 비록 자신들이 드러내놓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의 대상을 시험삼아  탄성, 탄식의 행보를 보인 상반된 행동뒤엔 자신의 옷을 통해서 엉덩이를 도드라져보이게 만드는 일로 변질된 의식의 유행형태나 현대의 엉덩이 흡입술로 인한 도툼한 엉덩이로 새롭게 드러내보이는 시술방법엔 이런 아이러니가 일어날 수도 있구나 하는 씁씁함도 내포한다 

 정작 그녀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애를 쓴 매컬리같은 사람들의 행동조차도 못미더워 영국에 남겠다고 결심한 그녀의 행동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건대 타의건 자의건 간에 그녀 스스로 내린 결정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어느 곳도 믿고 싶지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던 상황에서 그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여전이 영국에 남아서 돈을 모아 언젠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 보게되면  죽어서까지 그녀의 성에 집착한 , 비록 세계적으로 체계적인 학문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퀴비에의 행동엔 진정한 인간의 본성안에 내재된 어떤 사악함을 엿볼 수있었단 생각이 든다.  

그것이 비록 인류의 발전과 인종학자, 과학자, 인류학자, 철학, 심리학자란 명칭을 양상해낸 결과라 해도 같은 인간으로서 나만 아니면 되는 , 자신들의 뛰어난 우월인자를 바탕으로 깐 다른 인종을 인류진화의 잃어버린 한 고리부분으로서 사르키란 여인을 대조삼았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깊이 반성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솔직한 감정표현대로 나오는 노래소리와 함께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들어줄 만큼 유럽인들은 친절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사르키는 영국이나 프랑스란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도 시종이나 노예로 살아갈 사실을 두고서 결정을 내릴 때 일말의 후회없는 결정을 무너뜨리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의 시차를 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무사히 평온의 길로 들어선 그녀의 영혼의 삶에 명복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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