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자, 아얀 히르시 알리
아얀 히르시 알리 지음, 추선영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 11월 어느 날 아침 

테오 반 고흐는 자전거를 타고 영화사로 출근하던 중 무함마드 부예리란 사람의 총으로 그의 가슴에 4발, 푸주간 칼로 그의 목이 잘리고 또 다른 푸주간 칼은 5장 짜리 편지와 함께 꽃히면서 발견이 된다. 수신인은 바로 나 _

그녀의 본명은 아얀 히르시 마간이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 부터 외할머나가 수시로 확인하는 외가와 친가의 몇 대조에 이르는 조상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며 살아가야 했고 이런 현실은 소말리아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의 방식이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으로 인해서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요구하며 타국에 갈 정도로 자신의 의지가 확실한 여성이다.  

사촌 이모의 소개로 부유한 경제여건에 힘입어 미국 유명 대학에 부인과 유학한 아버지를 만난 엄마는 첫 부인과 이혼하고 엄마와 결혼을 한다. 그 사이에 오빠, 자신, 여동생이 태어나지만 소말리아의 뿌리깊은 가문간의 알력과 독재자의 광기에 이르는 불안이 겹쳐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에디오피아,케냐, 소말리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유년시절을 점령하게 된다   

소말리아의 독립을 위해서 신경만 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가정에 소홀함의 분노 대상이 자연자신에게 쏟아지고 동생과는 달리 고스란히 엄마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자국인 소말리아에서완 또 다른 이슬람의 가혹하리만치 전통성에 의한 생활을 , 에디오피아에선 자신들을 키리스탄(기독교도)라 불르는 데서 충격받은 일, 자신들과는 다른 개방적인 성적인 행동이 용납되는 환경에서 오는 충격을 받고, 케냐에선 가문의 일가 도움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그런 와중에 더욱 절실하게 알라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 그녀는 이슬람형제단이 운영하는 토론에도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한편 아버지가 케냐에 머물던 중 혈족을 거슬러 올라가 사촌관계임을 알게된 캐나다 이민출신인 남자와 결혼을 정한 것을 알게 되고 반항하게 되지만 그가 보낸 비자문제가 해결되어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가게된 그 때, 그녀는 캐나다를 버리고 주위 도움으로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에 망명신청을 하게 된다.  

망명국에서의 유리한 조건을 얻고자, 자신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 생년월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아얀 히르시 알리로 바꾸는 일을 감행한다.   

난민 캠프에서 일정 조건을 채우면서 신청이 받아들여져 네덜란드 국민이 된 그녀는 추적해온 가문의 어른들과 남편의 중재로 된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면 비로소 자유인이 되지만 가족으로 부터 버림을 받는다. 

이후 망명신청을 한 여동생이 오게 됨으로써 같이 생활하게 되지만 자유가 뿌리박은 네덜란드의 생활은 그간의 그녀를 다뤄온 종교와 갈등을 일으키고 두 번의 유산이란 무절제한 생활은 정신이상이란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 그녀는 다시 엄마가 있는 케냐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홀로 남은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을 하게 되고 하원의원까지 당선이 되지만 복종이란 영화를 계획하고 방영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 이슬람으로 부터 협박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된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복종 감독이 피살이 되면서 그 일은 더욱 그녀는 숨 쉴 수가 없게되고 그 동안 생각했던 미국에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행을 결심하면서 또 다른 여성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무척 두꺼운 책이지만 한 인생의 여정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이기에 그다지 어렵진않다. 그녀가 무엇보다 분개한 것은 알라가 만든 꾸란의 해석과 그 행동결정에 따른 여성들이 당하고만 있는 가정내의 위치(남편이 원한다면 성 해결을 의무처럼 해 줘야하고 거부할 시 매질도 가능하단 지침),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오빠의 할례장면, 자신과 동생이 할례를 거치는 장면이다.  

어린 가슴에 , 얼마나 그 정신적인 상처가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 소름이 끼치고 이후 그네들이 결혼 첫 날밤에 겪은 것은 토대로 듣는 장면은 여성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아기을 낳는 도구이상밖엔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할례를 함으로써 여성의 성적 욕망을 자제한단 구실은 그렇게 믿어왔던 자신이 케냐의 남학생과의 첫 사랑을 경험 할 당시 짜릿하게 느꼈던 욕망이 되살아난 점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일이나, 네덜란드로 와서 통역사일을 하면서 여성쉼터, 인공수술실에 들어가게 된 여성의 그 부분을 보고 놀란 서양 의사들의 반응은 내내 충격을 준다.  

그녀가 그토록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온 몸을 칭칭감고 다니는 이슬람의 전통을 따를 때에도 꾸라의 해석을 이상하게 생각한 점(이교도가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같은 동참하게 하는 활동을 왜 못하게 하는지...)에선 뛰어난 그녀의 자각의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체제를 겪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구석기 사람이 어느 날 현대 사회로 뚝 떨어져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적응해 가는 노력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그녀를 오늘 날 있게 한 원동력은 이슬람의 전통성에 기반을 둔 할례의 부당성, 무조건 복종만을 강요하고 자신의 의견은 있을 수 없다는 교리에 의거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살아가고자 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는 그녀의 의지와 노력이다.  

난민들이 네덜란드인들과 자신들의 처지를 비유하면서 불만을 토로 할 때 그녀는 스스로 일을 찾고 자신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힘든 대학이란 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 자국내에서도(네덜란드 환경상 서로간의 종교를 터치를 안하고 그네들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을 인정해 주고 살아가기 때문에 근친상간으로 가득한 문화와 여성혐오가 있는 문화를 대안적 생활 방식으로 존중한다는 명목하에 이행의 고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 벌어지고 있는 망명한 이슬람 가족내에서 행하고 있는 할례의 현장을 고발한 점이다.  

9.11 테러 사건으로 인해 무신론자가 된 그녀는 협박에 시달리고 의회내에서 가명으로 망명신청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취소 신청 처분이 내려질 위기 가운데서도 네덜란드가 자신에게 준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이슬람의 가치가 연민, 관용, 자유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기에 힘을 쓴다. 

가장 중요시한 인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서구에서 느낀 그녀가 받은 충격은 알라에게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저 숙여서 듣기만 강요하는 종교를 가졌던 그녀에게 정녕 종교가 인간의 삶을 이토록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 여전히 의견이 분분이 되어오고 있는 신의 존재와 인간사이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한다.  

자신이 수년간 도움을 받은 고마움과 함께 고인이 된 감독의 아들에 대한 미안함은 살아가는 내내 그녀의 짐이자 희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침묵이 불의의 공범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그 문제에 대해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은 <복종>이 영화 치고는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복종에 담긴 이슬람 비판은 분명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견뎌내기 어려울 만큼 큰 고통일 수 있다.  

그렇다면 새장에 갇힌 이슬람 여성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라 

인습과 뿌리 깊은 문화 관습이 인간에게 어떠한 고통을 주는가에 대한 생각과 그릇되다고 믿는 우리들의 생각에 그녀 만큼 이 처럼 용기있게 나설 방법과 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윗 구절의 그녀의 이 말로써 여전히 진행중인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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