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채선
이정규 지음 / 밝은세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진채선이란 여인은 무녀인 엄마 금산댁과 염전에서 일하는 전문 소리꾼이 아닌 그저 동네에서 흔하디 흔한 흥을 돋아줄 수 있는 판소리 몇 소절 할 수 있는 사람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자란 그녀는 아버지가 어느 날 집을 나가고 홀로 소리를 깨치다가 당시 이방의 신분으로 천석꾼인 신재효란 인물이 자신처럼 소리에 뜻을 품은 사람을 거둔단 소리를 듣고 동리정사로 향한다.  

동리정사란 신재효가 살고 있는 집으로 양반이건 상놈이건 간에 그가 가꾸어놓은 포도덩굴을 거치지 않고는 안으로 드나들 수없을 모습으로 갖춘 집이었다.  

일찍이 이른 나이에 20살 차이나는 첫 부인과의 사별을 하고 있던 차에 채선이 들어 온 순간 사랑에 빠진 그는 같이 시험을 보러 온 광현은 받아들이나 채선은 여자 소리꾼은 없다는 말로 거두길 거절한다. (사실은 이미 그녀의 모습에 죽은 부인의 모습을 보았고 나이차가 무려 35살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 싫은 부분과 거절 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리기를 거부한 것이다. ) 

하지만 득음을 위한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았던 그녀는 주위의 사람들의 충고대로 그녀를 받아들인 신재효의 집에서 광현과 같이 수업을 받게된다. 

폭포수 앞에서 두 사람을 같이 생활하게 한 신재효는 채선의 각고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광현은 득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꾸짖고 채선만 데리고 온다. (실은 광현의 득음을 인정했지만 채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욕심에 한 순간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이 후에 채선의 기량은 일취월장하고 그 동네의 권세가들 사이엣도 이름을 날리던 차 그녀의 재주를 썩이기 아까운 신재효는 광현을 불러서 그의 소리를 접게 하고 채선의 고수가 되어서 한양을 다녀올 것을 명한다. 채선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순간도 표현 못하고 오로지 오빠로서만 존재했던 광현은 그런 채선의 곁에 있는다면 좋다는 생각에 자신의 소리를 접고 고수로서 채선과 함께하게 된다.  

경복궁 낙성식 축하연에서 남장을 하고 나타난 채선은 그 자리에 온 대원군의 눈에 들게되고 70이 넘은 나이에도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 대원군은 평소 저자거리에서 왈패로 지내는 형.동생사이로 지내는 이춘구를 시켜 그녀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첩으로 운현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신재효를 불러서, 그것도 잠깐 보게 할 뿐 오로지 자신만 보기만 원하는 대원군 앞에서 채선의 스승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간다.  

결국 몰래 스승을 찾아나선 그녀의 행방은  남아있는 광현으로 하여금 뒤를 쫓게 하는 수법으로 그녀가 스승이 아파 누워있는 스승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체포해서 끌고오게 된다. 가던 도중 대원군 정책에 반대하는 건궁청 소속의 무사들에게 일격을 당하게 되고  이춘구는 상처입은 몸으로 도망, 신재효는 그들에게 대원군에게 갈 것을 명령하고 그 둘은 건궁청소속의 무사로 부터 대원군을 암살하라는 명으로 비상약을 받아들게 된다.  

한편 대원군은 돌아온 채선에 대한 원망과 이 기회에 혼을 내준다는 구실하에 감옥에 가두고  이춘구의 등장으로 비상약 출처 때문에 고문을 받고 있던 채선을 본 광현은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 쓴 채 두 눈과 두 손을 잘리게 되어 내버려진다 . (이후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이춘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

죽은 줄로 알고 있는 채선에게 대원군은 자신이 청으로 끌려가게 될 때 같이 갈 것을 청에게 부탁했으나, 거절당하고 이를 틈타서 채선을 스승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신재효의 채선에 대한 사랑은 점점 기력이 다해감을 느끼는 가운데 절실해지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채선을 본 그는 광현이 소리를 접은 까닭을 말해주며 숨을 놓는다.  

이 후 그의 삼년상을 치른 채선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으며, 가끔 스승의 무덤에 얼굴을 가린 남정네의 구슬픈 판소리가 매년 같은 때에 들릴 뿐 , 청에서 4년만에 풀려난 대원군의 채선에 대한 사랑은 끝내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그 또한 숨을 놓는다.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판소리는 조선시대에는 하찮은 신분의 사람들이 , 그것도 천한 계급에 속하는 광대가 하는 짓으로 분류가 되어왔다.  

 주로 남성들을 위주로 하여 그 계보를 이어간 점에 비추어  볼 때 진채선이란 여 판소리의 출현은 그 당시만 해도 상상도 하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문헌에만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질 뿐 자세한 행적은 기록이 되어있지 않는 이 여인의 일생을 역사소설이란 테두리 안에서 글을 써 내놓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 한층 그녀의 존재를 빛나게 한다.  

누구도 안된다고 생각한 여 판소리의 세계를 자신이 개척하면 될 것 아니냐는 당돌한 주장과 의지는 그 시대만 아니었다면 크게 명성을 떨치고 신분과 권력의 힘에 의해 무너지는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광대는 첫째가 인물이요, 둘째는 사설이요, 셋째는 득음이요, 넷째는 너름새라 한다. 이 판소리 이론을 채선은 ‘광대가’라는 단가로 익혀내는 과정을 책에선 보여주고 있다. 이미 빼어난 미모로 인해서 결국은 대원군의 눈에 드는 행운아닌 새 장에 갇힌 신세로 전락을 하고 맘껏 소리를 지르고자 했던 자신의 꿈이 접힌 원인을 제공했지만 판소리에 대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모습은 오늘 날에도 많은 판소리 명창들의 계보를 잇게 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어긋난 사랑에 대한 행보에 발맞춰 각  인물들의 사랑의 대상에 대한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채선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 사랑조차도 표현하기 어려워 앓아야 했던 광현은 자신의 소리를 접는 과감한 행동까지 해 가며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끝내는 그녀를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행동을 보인다. 또 그 사랑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오직 제자로서만 봐 오길 애썼던 스승에 대한 채선의 사랑, 스승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때문에 권력가인 대원군 앞에서 차마 밝힐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않아야 했던 채선의 사랑, 그런 채선을 오로지 권력의 힘으로 자신의 폭에 감싸안고 자신만 봐 주길 바랐던 노회하고 질투에 사로 잡힌  대원군의 모습에선 여러가지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단 말이 있지만 여기선 스승 신재효가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거두어 자신의 부인을 삼고자 하는 맘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제자로서 그 제자의 탁월한 능력을 더욱 알리기 위해 한양으로 갈 것을 결정한 여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이 지닌 재능을 만개할 수 있도록 결정한 신재효란 인물의  감정과 고뇌의 폭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판소리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빵보단 밥이 더 좋고 (일단 빵으로 요기를 했더라도 밥 한술 정도는 먹어야 든든함을 느끼게 된 요즘)  신나는 댄스 음악과 발라드도 좋지만 우리의 흔한 말인 트로트가 가슴에 화~악 와 닿는다는 것, 그리고 얼쑤! 그렇지! 지화자! 하는 고수의 추임새와 껄죽한 탁한 막걸리처럼  내뿜는 판소리의 목청의 묘미가 좀 더 친근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것이 좋은 것이여! 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핏줄속에 흐르는 민족 감성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저 그런 흥겨운 판소리의 세계를 단순히 서편제, 동편제로만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에서 다룬 판소리의 흐름은 우리네 조상들의 체계적인 발성법과 그 방법을 터득함에 있어서의 부단한 보전 노력이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러기에 안타까운 광현의 행보는 자신의 재능을 버려야만 했던 피 끊는 청년의 한이 세월이 지난 후에  더 이상은 고수로서 나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스승의 무덤 앞에서 한 곡조 불러낸다는 장면에선 애처롭고 그래서 사랑의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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